현실 & 허구 & 이야기
1.
얼마나 다쳤을까. 왜 다쳤을까. 요 몇 년 동안 통 아프다, 다쳤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 아이인데.
*
어디니?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려?
나는 조급하다. 아이가 다쳤다니까. 생각이 마비되는 것 같다.
한 시간 정도 걸려. 8시쯤.. 아니 8시 반쯤 도착..
병원에는 다녀 왔니?
아니.
언제 다쳤는데?
어제 오후에.
뭐라고?
너 정신 나갔어. 그런데 병원에도 안 가고?
‘아 이 미련한 것. 어떻게 하루를 방치해.’
한 시간이 지났다. 그 시간에 우리는 전철역 주변의 병원을 찾았다. 두 군데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저녁 8시까지 진료를 하는 병원은 많지 않다. 대형 병원, 대학 병원을 제외하고. 응급실이 있는 병원도 없을 테다. 어쩌지.
번득 전철역 옆의 건물에 있는 ‘든든한 병원’이 떠올랐다. 몇 년 전에 내가 어깨 수술을 했던 곳. 여기라면 어쩐지 응급 진료를 할 것 같다. 정형외과 분야가 뛰어난 곳이라 알려졌고. 교통 사고 환자들이 많이 올 것도 같으니.
바로 전화를 건다. 9시까지 진료를 한단다. 8시 30분 이전까지는 와야 한단다. 우리는 마음이 급해졌다. 애아빠랑 나는 겉옷만 걸치고 바로 나간다. 우리도 전철을 탄다. 다팽이가 내릴 곳으로 간다. 입구가 두 군데라서 한 군데씩 맡아서 기다린다.
그러고 20여 분 뒤 다팽이가 나온다. 질질 다리를 끈다. 삼색 슬리퍼를 신고 있다. 질질 힘겹게 걷는다.
‘아니, 어떻게 저 지경으로.’
뭐냐. 어떻게 이렇게 다쳤는데. 병원도 안 갔냐. 미쳤냐.
애아빠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찌 저 지경을 보고 화를 안 낼 부모가 있겠는가.
나는 다팽이를 부축해서 걷는다. 천천히 걸음을 늦추며 뒤로 쳐진다. 큰 가방 하나와 다팽이의 백팩을 메고 아빠는 앞서 걷는다.
어디서 다쳤어? 왜 다쳤어?
다롱이한테 물렸어.
뭐라고? 다롱이가? 다롱이가 진짜 물었어?
응...
‘아 다롱이가. 주인이 버렸다고 생각했나?’
나는 별 생각을 다 한다.
다팽이는 다롱이를 또 데리고 왔단다. 그저께 밤에. 그리고 어제 데려다 주기 전에 사단이 벌어졌단다. 그 방에 벽지를 다시 붙일까 하고 도배 관련 아주머니가 오셨단다. 고양이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신다. 그래도 고양이는 호기심을 갖고 다가간다. 못 볼 것을 보았다는 듯이 경악을 하고 고양이를 내치시는 아주머니. 폭언을 마구 쏟아내고. 고양이는 그때 갑자기 돌변. 소리를 갹갹 내지르고 발톱이 뾰족해 지고(그 어린 것이). 다팽이는 무서워서 다롱이를 안고 화장실로 들어가고. 아주머니에게 소리를 지르지 말라고 부탁을 한다. 그런데. 위협을 느낀 다롱이는 본능적으로 변한다. 적으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결국은 다팽이를 공격한다. 팔을 물기도 하고. 걀걀거리며 울부짖고. 아주머니도 폭언을 멈추지 않고. 그러다가 다롱이가 화장실을 뛰쳐나가고. 곧바로 다팽이는 다롱이를 다시 잡으러 따라 나가고. 공포가 극에 달은 다롱이는 날카로운 이빨로 다팽이의 발등을 물어 뜯는다. 그것도 몇 군데를. 그러지말라고 몇 차례 떼어내려다가 그만. 여러 군데를 할퀴고 뜯기고 말았다. 그 사이 아주머니는 폭언을 달고서 그대로 밖으로 나간다. 아주머니가 나간 뒤. 다롱아~ 하고 부르니까. 바로 순한 본성의 다롱이가 된다.
전화를 받고 친구가 왔단다. 원래는 데려다 주었는데. 친구가 데리고 갔다. 친구가 겁 먹을까봐 피를 닦아내고. 연고를 바르고. 괜찮아질거야, 하고 주문을 외웠단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병원을 갈까 했으나 집 근처에 병원도 없으니. 내일 날이 밝으면 집(우리집)에 가서 엄마랑 병원에 가야겠다 생각한다. 그저 괜찮겠지 하고.
나도 여기까지 듣고 그냥 조금 부어서 그러나 보다 했다.
그래도 병원을 찾아서 갔어야지. 그런데 왜 저녁에 온 거야. 아침에 일찍 와야지.
어제 놀래서 그랬는지 많이 잤어. 그리고 일어났을 때는 잘 걸을 수가 없었어. 어떡하든 병원에 갔다가 집에 갈려고 했는데. 너무 아팠어. 그리고는 겨우 챙겨서 온 거야.
덜컥 겁이 났다. 파상풍이라도 걸렸으면 어떡하지. 요즘 흉흉한 뉴스가 많았다. 이웃 반려 동물에게 해를 입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겁이 덜컥 났다.
야. 아무리 그래도 어떡하든 병원을 먼저 갔어야지. 생각을 못하는거야? 바보야?
나 아픈데. 뭐라 하지마.
결국 딸은 울먹거리고 만다. 아, 미련한 것.
다롱이는? 그놈 새끼, 내가 데려오지 말랬지? 주인이 저 버렸다고 생각하고 그런 맘이 있어서 물었는지도 몰라.
아냐! 저도 겁이 나서 그런 거야. 다롱이 불쌍해, 뭐라 하지마.
너나... 다롱이나... 정말 어떡하냐.
*
8시 28분. 진료실 도착.
양말 벗어 보세요. 언제 다쳤어요. 병원은 갔어요?
아니요...
왜요?
괜찮아질 줄 알고...
저.. 선생님. 이렇게 하루가 꼬박 지났는데 별일 없을까요?
내가 아주 초조하게 묻는다.
괜찮아요. 이렇게 하루 지난 다음에 오시는 분들 많아요. 자, 벤드 좀 떼어 봅시다.
아... 안 아팠어요?
네... 아팠어요.
‘아니. 저게 뭐야. 어떻게 저럴 수가.’
나는 입을 막았다.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 애아빠가 안 보길 다행이다. 봤으면. 상상하기도 싫다.
발 등이 퉁퉁 부어 있었다. 물 속에 한 이틀은 담겨 있던 것처럼. 진기명기 프로그램에 나온 그 거대 고구마마냥. 생채기가 한 두 군데가 아니다. 깊이 패었다.
환자분 꿰맬게요. 몇 군데 꿰매야겠어요. 흉터가 생겨도 그게 나을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 정말 괜찮을까요? 하도 흉흉한 일이 많아서.
나는 또 끼어들었다.
어머니 괜찮아요.
의사 선생은 아주 가벼운 말투다.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다 한다. 제발 별거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무엇을 과장되게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다. 다만 아이가 걱정이 될 뿐이다. 아픈 것도 그렇지만. 혹시라도 다롱이에 대한 죄책감이 깊어질까 봐. 제발 별일 없기를 바란다.
자 다 꿰맸어요. 항생제 주사 맞고. 약 잘 먹고. 하루 지켜 본 다음에. 이틀 뒤에 다시 병원 나오세요.
네.
딸아이의 한결 가벼운 목소리다. 저도 놀랬을 것이다. 우리에게 제대로 말도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아팠을 그 하루동안. 자신이 가장 두려웠을 것이다.
괜찮아?
응.
너 참 바보 같애.
응.
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딸아이. 덩달아 나도 코끝이 매큼해진다.
2.
실밥 빼는 날.
따끔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꼈단다. 붕대를 감고 있던 며칠보다. 드레싱 후 붙여 놓은 밴드보다. 훨씬 가벼워졌지만. 뭔가 빠져나간 허전함을 느꼈단다.
그렇게 다팽이는 그런대로 괜찮아진 것 같다. 사단이 난 이후로 딱 3주가 지난 오늘. 따끔거리는 통증도 상처도 아물어 간다.
다롱이는 어떻게 지낸대?
잘 지내. 데려간 날에도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평온했대.
주인을 모르나?
아니야. 한 이틀 같이 있으면 금방 알아 봐.
다행이다. 너도 고양이도. 별 탈이 없어서.
그래도 아파.
그래 아프지. 맴도 아프고.
다시 키울거야. 내가 독립해서 꼭 데려 올거야.
그래 그렇게 해. 다롱이랑 함께 살고 싶어서라도 독립을 해라.
그럴거야.
첫정이 무섭다더니. 생애 처음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더니. 생이별로 인한 애잔함이 얼마나 깊을까. 거기다가 부모 몰래 고양이 키웠다고 혼나고. 그 키운 고양이한테 물렸다고 혼나고. 그 맘이 맘이 아닐텐데. 발등에 상처를 입고. 발에 비닐 봉지를 묶고 씻는 날에도. 해맑은 우리 다팽이. 다롱이나 다팽이나 참 해맑은 아이들이다.
그날 이후 아이는 취업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기 부여가 확실히 된 것이다.
과연 이 아이들. 언제쯤 함께 사는 날이 올까?
*
키우던 고양이와 생이별하고. 또 그 아이에게 발을 물리고. 몸과 맘에 상처를 입은 딸아이. 아이를 곁에서 보는데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매일 다롱이 사진을 들여다 보는 딸아이. 나도 어쩌다 따라서 사진을 보게 되고. 결국은 이렇게 ‘다롱이’까지 쓰게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