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두 살 청춘 작은 오빠
저자: 찻잎미경
[출처: 어이딸1, pp. 95-108, 부크크, 2018년 2월]
작은 오빠
- 박옥금 여사는 당신의 둘째 아들의 죽음을 기억하는가?
1.
옥금씨, 윤이가 그렇게 좋아요? 윤이가 왜 좋아요? 엄마... 엄마 아들은 생각이 나고? 그 아들보다도 이 아이가 좋아?
나는 묻는다. 윤이 얼굴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엄마에게 나는 무엇을 묻는다.
"예뻐?"
"예쁘다" ... "예쁘다"
윤이의 얼굴을 계속 쓰다듬으면서 '예쁘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엄마.
엄마는 민준이 오빠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래도 아들인데... 기억하겠지...
윤이만 쳐다보고 있는 엄마를 툭툭 친다. 내 얼굴을 보고 내 말을 똑바로 들어, 라는 나의 무언의 지시이다.
엄마를 툭툭 치는 것. 엄마의 시선을 돌리게 할 때 시행하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이지만 정작 당신은 이 방법을 가장 싫어한다. 당신이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보이게 하는 확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를 툭툭 치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세상에 가장 평온한 표정으로 마치 근심 걱정 따위는 아무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저 어린 아기를 쳐다보고 있는 엄마에게 무슨 심보인지.
오빠 얘기를 꺼낸다.
나는 눈을 감고 베개를 베는 시늉을 하며.
"오빠 알아?"
"오빠 알아."
"오빠 생각나?"
"오빠 생각나."
내 말을 그대로 따라하는 옥금씨. 무슨 일이래.
저럴 때 보면 정말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하는 사람처럼 보여.
...
미친 년.
에이고... 미친 년.
어쩌자고 애 낳고 삼일 만에 집에 와서는 멀쩡하게 잘 지내는 엄마에게 죽은 오빠 얘기를 꺼내는지.
정말 너는 미친 년이다. 무슨 심보니. 아이를 들여다 보는 엄마가 그렇게 싫냐.
엄마가 평온한 게 그렇게 싫은 거냐. 에고 미친 년.
고등학교 2학년 가을, 그 황망하던 시절에도 나는 미친 년이 아니었는데. 맨정신으로 온전하게 오빠를 떠나 보냈는데. 이제 와서 어쩌자고.
"오빠 (눈을 감고 두 손으로 비비면서 우는 듯이) 보고 싶어?
"오빠 보고 싶어."
그리고 나를 멍하니 쳐다 본다. "왜 묻냐"라는 말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냥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아......... 미친 년. 그런 엄마를 보려고 그런 질문을 한 거니. 그래서 기어이 니가 울고 말아야 직성이 풀리니.
정작 엄마는 울지 않고. 또 너만 그렇게 미친 듯이 울거면서.
너는 왜 엄마를 못 쑤셔서 안달이니. 니가 울고 싶으면 그냥 곱게 울 것이지. 왜 엄마를 붙들고 그러니.
미
친
년.
2.
추석 명절 연휴가 끝나는 날이었다.
오늘도 숙영이는 학교에 갔다. 그녀의 책상, 그녀의 자리는 삼 년 동안 딱 그 자리였다.
창가 옆 첫번째 분단, 앞에서 세번 째 자리 바로 창가 옆. 그곳에서 시선을 들면 바로 지리산 덕두봉이 보이는 창가 자리.
덕두봉. 숙영이가 가장 좋아하는 봉우리. 아버지보다 더 크고 엄마보다 더 따뜻한 품이라고 믿는 봉우리 덕두봉.
그 품 아래에서 숙영이는 5년간 울고 웃고 학교 일상을 견뎌내었다.
명절 연휴 끝도 그렇게 지리산 덕두봉을 바라 보며 머엉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데.. 창밖으로 사람이 보인다. 이 시간, 저녁이 다 되어 가는 오후 네 시쯤. 이 시간에 이 곳에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어라... 아저씨네. 사진관 아저씨가 무슨 일이지?
어... 우리집에 무슨 일이 생겼나?
엄마가 누구랑 또 싸웠나.. 아니.. 엄마 일로 저렇게 급하게 나를 찾는 일은 없었는데...
누가 다치셨나? 이상하다... 혹시 오빠?
"아저씨, 무슨 일이세요?"
"숙영아..."
"아저씨, 엄마 다쳤어요?"
"숙영아 저 그게 아니고. 야, 말도 마라. 니네 오빠가... 그냥 술을 마시다가..아니 술도 한잔도 안 마신 것 같은데. 아니 그게 아니고 그냥 그 자리에서 게거품을 물고... 난리났다. 동일의원으로 갔는데... 의식이 없다. 빨리 큰 병원으로 데리고 가라고 뭔가 주사를 놓고 그란디. 정신이 없다. 병원이 발칵 뒤집혔다. 숙영이 니가 있어야 말이 통하지."
"알았어요. 바로 가요."
숙영이는 너무나 침착했다. 놀라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오히려 아저씨가 민망하게 그녀를 쳐다봤다.
"너 혹시 알고 있었냐, 오빠 쓰러진 거?"
"아니요. 금방 아저씨한테 들었잖아요?"
"어.. 그렇지.."
"이제 가요."
가방을 챙겨 들고 나서는 숙영이. 그녀는 앞이 캄캄했다. 이게 또 무슨 일이다냐.
그러나... 그녀는 침착했다.
"아저씨.. 어차피 제가 할 일이에요. 제가 정신을 차려야지요."
"어.. 그렇지. 그건 그렇지. 니네 큰 오빠도 군대에 있고... 근데.. 미안하다.. "
"아저씨가 왜 미안해요? 아저씨 잘못도 아닌데요."
쌀쌀맞은 계집애.
"오빠... 저러다가 죽는데요?"
"어? 그게 무슨 말이냐?"
"동일의원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면서요. 안 그랬어요?"
"어... 그게 뭐... 그냥. 큰일났다고 전주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고만 하는데.. "
"오빠... 말은 하고 있어요?"
"어? 말? 그러고 보니... 쓰러지고 한 마디도 못 들은 것 같다."
"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숙영이는 눈앞이 캄캄했다. 걷는 것 같지가 않았다. 허공에 둥둥 떠서 머릿속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다리도 몸통도 얼굴도 없는 뇌만 둥둥 떠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무슨 일일까. 오빠가 아팠는데. 오빠가 몸이 약했는데.
"오빠 술 마셨어요?"
"아니.. 뭐 글쎄.. 한 잔 마신 것도 같고... 아니다.. 안 마신 것 같고."
미친 놈. 그런 몸으로. 죽을려고 환장을 했구나.
"오빠.. 아팠던 것 아세요? 오빠 아파서 몇 달 전부터 집에 내려와 있는 것 아세요?"
"..."
아무 죄 없는 아저씨에게 뭐라고 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는데. 작은 오빠나 아저씨나 모두 한심하고 정신이 없는 사람들 같았다.
아주 한심한 오빠. 그런 몸으로 술을 마셔?
그런데 왜 그렇게 쓰러져? 술이 독해서야? 술도 못 이길 만큼 몸이 아파서야?
3.
"하민준씨. 결핵 3기입니다. 오빠라고 했나요? 약도 잘 먹고 잘 치료하고. 그리고 집에서도 좋은 음식 잘 먹고 몸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러면 곧 치료될 수 있습니다."
...
숙영이가 3주 전에 의사한테 들은 이야기이다.
숙영이 방에 놓여있던 엑스레이 사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오빠. 나랑 병원 같이 가자. 내가 알아야겠어서."
"숙영아... 오빠 조금 아프다. 그래 같이 가자. 우리 동생이 잘 보살펴주면 오빠 병이 빨리 나을거야"
"그리고 오빠가 미안해. 맨날 말썽만 피우는 것 같아서."
보통 추석 명절 이삼일 전에 내려오던 사람인데. 추석이 한 달도 더 남았는데. 쉰다고 내려왔다.
그날도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었지만. 그런가보다 했다. 쉴 때도 있지. 사람이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 그랬다.
그런데 결핵 3기라니...
별거 아니지, 별거 아닐거야...
약을 잘 먹고 관리만 잘 한다면 낫는다고 했으니까.. 의사 말을 믿는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오빠 얼굴이 좋아진 것도 같다.
"오빠... 잘 먹어야한데요. 맛있는 거 먹고. 그리고 소간도 먹으면 좋다고 하던데."
"그래... 오빠 좋아지고 있어. 괜찮아졌지. 우리 동생 좋은 대학도 가고 변호사 검사 판사 하는 것도 보고. 오빠가 뒷바라지 척척 해 줄 것이니까 걱정하지마."
"오빠는 내가 판사 되는 게 그렇게 소원이야?"
"그럼. 나는 판사가 제일 좋다. 판사가 법정에서 땅땅 재판을 내리는 것이 제일 멋있다."
"오빠... 나는 판사 되기 싫은데..."
"그래도 나는 내 동생이 판사 하면 좋겠다..."
4.
무더운 여름이었다.
우리집 뒤뜰에 있는 돼지 우리의 썩은 오물 냄새는 여름 내내 우리집 주변을 떠다녔다.
더러운 돼지 냄새, 오물 냄새, 더러운 냄새...
여름 개구리 소리도 오물 냄새에 죽어 버렸다.
추석 명절도 돼지 오물 냄새에 썩어 버렸다.
"뇌염입니다."
"뇌염이요? 젊은 스물 두 살 청년이 뇌염이요?"
"네. 뇌염입니다. 혹시 집에 돼지 키웁니까?"
"네? 저희가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저희집 뒤뜰에 돼지 우리가 있어요. 그런데 왜 돼지요?"
"아무래도 돼지 오물에서 뇌염이 옮겨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 오빠만요?"
"민준씨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몸이 약해져 있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염이 금방 되었던 것 같구요."
"네... 그럼 뇌염약은 잘 개발 되었지요? 뇌염 예방 접종 받고 그러면 애들은 별 걱정이 없던데."
"아... 그런데요. 아닙니다. 지금까지 개발된 약들이 어린 아이 중심으로 개발된 것이라서, 어른에게는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할 수 있는 처방을 모두 다 해 봅시다."
할 수 있는 처방? 얼어 죽을.
중환자실에서만 딱 일주일. 오빠는 그렇게 딱 일주일을 산소호흡기만 매달고 있다가 떠났다.
추석이 지나고 9월 23일부터 9월 29일까지 오빠는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숨만 쉬었다.
딱 한 번 의식이 돌아왔다.
동일의원에서 조금 큰 남원의료원으로 옮겼을 적 밤에 딱 한 번 의식이 돌아왔다.
"오빠.. 나 알아. 내가 누구야"
"우.... 리... 동... 생..."
"오빠.................... 죽지마."
"나. 안. 죽. 어."
"오빠............................ 죽지마."
"..."
오빠. 오빠 죽지마.
오빠는 동일의원에서 의료원, 의료원에서 대학병원, 대학병원에서 기독병원.
그렇게 병원을 세 차례 옮기면서 또 그렇게 세 차례 병명이 바뀌었다.
결핵에서 늑막염으로. 늑막염에서 뇌수염으로. 뇌수염에서 뇌염으로.
그리고 이렇다 저렇다 한 마디도 남기지 못하고 그냥 그날 아침, 9월 23일 아침 내가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세상을 달리 했다.
오빠는 저 세상으로 떠나고.
우리 가족은 이 세상에 남았다.
아무 것도 어떤 말도 나누지 못하고.
그렇게 사람이 떠나고 그렇게 사람이 남았다.
어제가 오늘이 되고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사람이 떠나고 또 그렇게 사람은 남았다.
오빠... 잘 가....
섬진강 한 줄기... 오빠의 육신과 혼을 싣고 흘러간다.
오빠... 잘 지내나요?
우리도 잘 지내고 있어요. 엄마도... 잘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나의 삶에 가시처럼 박혀버린 시 한 편.
제망매가 (월명사 지음)
생사 길은
예 있으며 머뭇거리고,
나는 간다는 말도
몯다 이르고 어찌 갑니까.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이에 저에 떨어질 잎처럼.
한 가지에 나고
가는 곳 모르온저.
아아, 미타찰에서 만날 나
도(道) 닦아 기다리겠노라
내 생애 몇 안 되는, 가슴에 각인이 되어 있는 시이다.
내 생애 경험한 두 번째 죽음의 기억, 그 하나가 오빠의 죽음이다. 내 나이 열 아홉살 즈음.. 고등학교 때.. 우리 둘째 오빠가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났다.
그때 오빠 나이 스물 두 살. 어찌 눈을 감았을꼬.
방안에 쓰러져서 병원으로 옮겨간 뒤.. 딱 7일 만에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오빠.
꺼질 듯... 소리없이...
내 이름을 부르던 오빠의 모습.
그렇게 오빠를 보내고 돌아온 가을날.
국어시간에 나는 이 시를 만났다.
시를 한 구절 한 구절 읽는데... 가슴으로 읽은 듯하다
눈물만 자꾸자꾸 쏟아지는데...
선생님께서 수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기억.
한 시간 내내 소리 없는 통곡으로 시를 품었던 기억.
오늘 또 나는 이 시를 가슴으로 읽는다.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매..."
오빠는 언제나 스물 두 살.
늘 청춘이다.
그 청춘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
마지막 눈을 감기까지 일주일 간의 모습이 아니라.
젊고 건강한 청춘의 모습이 보고 싶다.
_ 2018년 11월 만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