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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찻잎향기 Jun 14. 2020

책, 한 스푼의 시간

세탁소라는 공간에서 인간의 삶을 배우는 소년 로봇 '은결의 이야기'

책, 한 스푼의 시간


세탁소라는 공간에서 인간의 삶을 배우는 소년 로봇 '은결의 이야기'


한 줄 평: 

은결 - 사람보다 사람에게 더 큰 위로가 되는 감성 로봇!! 친구든 가족이든 연인이든 무엇으로라도 함께 하고 싶다.      



[소설의 기본 줄거리]


<파과>, <아가미>를 통해 예리하게 사회 현실을 묘사한

구병모 작가의 장편소설!     

독특한 판타지 휴먼 소설!!     

얼룩세탁표백건조가 반복되는 삶의 비밀을 배워나가는 (로봇은결의 이야기!     

장편소설 한 스푼의 시간은 세탁소에 살게 된 소년 은결이 유한한 인간의 시간 속 숨겨진 삶의 비밀과 신비함을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을 섬세하면서도 차분하게 그려내면서 새로운 구병모의 세계를 선보인다



[소설을 읽으면서]     



1. 소설 초반부     


구병모 작가의 소설로는 세 번째 맞이하는 소설이다.      


처음에 <파과>를 읽으면서 주인공 '조각'에게 매료되었다. 60대 여성 킬러. 40년간 방역(청부살인)업계에서 단단하게 자기 관리를 하던 사람의 무너지는 듯한 과정. 그러나 지켜야 할 것 앞에서 그간의 단단함에 균열이 생기는 경험을 하는 모습 등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바로 <아가미>를 읽게 되었다. 이것은 판타지를 장착한 현실판 잔혹 동화였다. 아가미를 가진 아름다운 청년 '곤'의 상처, 그에게 '곤'이라는 이름과 생명을 유지하게 한 강하와 할아버지 등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끝내 찾아내서는 청년이 결국 '바다'를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이유를 전달하는 해류. 판타지인 것 같지만 가슴을 아프게 하는 실사판 서사였다.      


그래서 또 바로 구병모 작가의 소설을 탐색한다. 그리고 만난 세 번째 소설 <한 스푼의 시간>. 이 소설의 순서는 의미가 없다. 오로지 예스24 북클럽 eBook 목록에서 닥치는대로 눈에 띄는대로 읽었을 뿐이기에.      


이렇게 맞이한 소설 <한 스푼의 시간>. 여기에서도 매력적인 인물(?) - 과연 인물이라고 해도될까마는 - 로봇 '은결'을 만나게 된다. 인공 지능을 가진 로봇이, 로봇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에 맞게 스스로 학습을 하고 관계를 맺고 언어와 문장을 창출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신비롭다. 아, 이렇게 로봇이 말을 배우고 문장을 만들어 나가는구나.      


각종 다양한 다층의 도시 골목의 사람들이 모여 드는 세탁소라는 공간도 서사적으로 매우 훌륭한 공간이라 여기고. 또한 은결을 바라보는 세탁소 주인 아저씨 '명정'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와 그 안에 내재된 따뜻한 인간미도 좋다.      


이제 겨우 eBook 페이지로 150(총 714페이지 분량에서)정도 읽었지만 (종이책으로는 50여쪽). 세탁소 주인 아저씨 '명정'과 죽은 아들의 유품으로 보내진 '은결'의 토닥토닥거리며 만들어질 뭉클한 이야기는 벌써 감동적이며, 눈물 두 대야 정도 흘릴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할 것 같다.      


한 스푼의 시간 - 어쩌면 일상에서 이후로, 세탁물을 세탁기에 넣고 세제 한 스푼 뜰 때마다, 이 소설의 은결이와 세탁소의 장면 장면들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2. 소설 중반부를 읽으면서     


세탁소 주인 아저씨 '명정'의 죽음. 그리고 홀로 남겨진 인공지능 로봇 '은결'. 

아저씨의 둘째 아들처럼 9년 이상 세탁소의 한 자리를 고요하게 지켜왔던 은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마음과 태도와 시선을 지닌 아들 같은 로봇 은결. 

그의 마지막이 벌써 전기를 맞은 사람처럼 손끝과 온 몸 세포가 저릿하게 아파온다.      


이제 오십 여 쪽(종이책으로는 20여쪽)만 남겨 두고. 그만 읽는다. 

마지막을 맞이하기가 싫다.      


"욕조 옆에 놓인 통일 열고 가루 세제 한 스푼을 뜬다. 푸른빛이 감도는 세제가 흔들리는 물살에 몸을 섞는다. 세제가 완전히 녹아들기까지 순식간이다. 부예지는 물속을 한 발 또 한 발 휘젓자 거품이 몽글거린다. 지금의 장면은 메모리에서 불러낸 드라마 또는 다큐멘터리 영상과의 유사 비율이 비교적 높다. 그러나 다른 점은 마주 보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이며 어쩌면 그것이 전부일지 모른다. 세제는 물속에 녹아들었으나 그의 몸은 용해되지도 발효되지도 않는다.      


- 저렇게 건물이 무너지면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 다치거나 죽겠지, 손쓰지 못하고 숨지는 경우가 많고.     

- 사람이 무너지면 무너진 그 사람이 죽나요. 아니면 옆에 있던 사람이 숨을 거둡니까.      

...     



인공 로봇 은결이... 사람의 생각, 감정, 태도, 일탈, 충동, 변덕을 하게 되는 것은 

그가 남다른 태생을 가졌기 때문일까?

축적된 데이터의 학습과 변형일까?     

위의 부분에서 결국 나는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폭풍 눈물이 될까봐... 잠시 휴대폰 eBook을 닫는다.      


이제 소설의 그 마지막을 읽을 일만 남았다.      


스스로 "무너짐"을 선택한 은결이 .. 그러나 준교와 시호의 도움을 받아서 살아남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저씨와의 추억(기억)을 띄엄띄엄 간직하더라도 말이다.      

그래야 아저씨, 은결의 삶이 허무하지 않을 것 같다.      

비록 광활한 우주의 시간에 비하여 비록 인간의 삶이 "한 스푼의 세제와 그것이 녹는 시간에 불과할지라도 말이다."               



3. 소설의 후반부      


이 책을 보내기가 싫어진다. 은결(로봇)을 더 오래도록 만나고 싶다는 말이 더 맞는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인공지능 로봇 - 아들 같은, 친구 같은, 연인 같은 -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나의 사후에 남겨질 그의(로봇을 '그'라고 호칭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슬픔과 그리움과 외로움을 생각하면 그 또한 매우 지나친 인간의 사악한(?) 욕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 eBook 683-685 =:     


"은결은 인간의 보편적인 표정 신호를 귀납적으로 계량한 결과 그 같은 각도의 눈꼬리와 입매가 순수한 존중과 다정한 배려의 신호임을 안다. "알고 싶다... 는 것은." 은결은 늘 그래왔던 반응 패턴대로 무엇입니까라고 되묻지 않는다이제 와 새삼스레 싶다라는 보조형용사의 정의를 궁금해하지 않는다궁금하다는 느낌도 그에게 있어서는 '다른 연관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불가결한 것으로 판단된다'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지만한다하지 않는다하기 싫지만 한다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그것을 분류 및 실행할 줄 알게 될 때 당신은...     


마침내 은결은 대답한다     

"지금의 연산 결과가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한다면알고 싶지만 더는 알지 않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굿 잡."     



 넘어지지 않고 엄마에게로 아장아장 걸어가는 돌잡이 아이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다르게 성장하는 로봇 사람 '은결'을 현실 세계에서도 만나고 싶다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욕망!!     

백 여년의 시간이 흘러도 자신이 본 현상 그 자체로 왜곡되지 않고 대상을 기억해 줄 로봇 사람!!     

옆에 정말 친구로 두고 싶다.      


 이 책을 읽으시는 여러분이라면이런 제 마음(욕심!)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라 믿습니다.     


[소설을 다 읽은 후에]     


마지막을 다 읽은 후에도 몇몇 장면들을 곱씻듯이 읽어 본다.      


"사람의 말은 가끔 맥락 없이 튀기 때문에 은결은 주인의 모든 말에 반응해야 할 필요는 없음을 안다. 그러나 맥락이 없기도 하지만 때로는 손닿는 모든 곳이 맥락이 되기도 한다."     

(eBook - 295/714)     


로봇이 인간으로 되어 가는 과정 (성장!) 은 언어의 힘이 무엇보다 크다 여긴다. 

한다, 안 한다 - 처럼 단정할 수 있는 것만 아는 영역에서 "하고 싶은데 안 한다" 등을 터득한다는 것.

어떤 말이 상황과 맥락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적용하는 것.      

인간과 로봇의 가장 큰 차이는 '감정'이라는 것보다 '언어의 사용'에서 크게 다름을. 

단어의 사전적 의미 외에 다양한 맥락에서 확장되고 변형되고 생략되어 사용되는 그 과정을 익힐 때. 

인간의 감정 영역도 접수될 수 있다는 것.      


아주 여러 측면에서 로봇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드는 

아주 따뜻한 '휴면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 '한 스푼의 시간' 오래 여운이 남을 것 같다.  


#한스푼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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