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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Jun 23. 2023

남편이랑 싸웠어 언니

언니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언니 안녕!


사실 남편이랑 몇 시간 전에 정말 별거 아닌 일로 다퉜어. 그냥 확실한 건 똑같은 상황이었어도 언니는 나보다 더 현명하게 대처하거나, 조금 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어.


결혼한 지 벌써 5년이 넘어가는 데 아직도 투닥투닥이다 우린 여전히. 분명 오늘 밤은 서로 아무 말도 안 한 채로 잠이 들겠지만, 내일 부엌에서 만나면 서로를 곁눈질하다가 우연히 눈 마주치면 살짝 웃고 말겠지. 늘 같은 패턴이면서 왜 또 싸웠나 몰라 정말 사실 그러고도 또 싸울 테지만!


아까는 나도 성질이 나서 밥을 먹다 말고 방으로 쌩 들어왔는데 지금은 사실 내가 좀 너무 이기적이었나 싶기도 해. 부부싸움은 물 베기라며 언니네도 비슷하려나? 지금은 사실 냉전 중이고 컴퓨터 앞에 앉아있겠다 첫 편지를 써보는 중이야.


지금은 진정도 했겠다~ 사실 싸운 일이 별것도 아니겠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가서 화해를 할 수 도 있지만 오늘 밤은 그냥 이대로 유지해 보려고 해. 가끔 이렇게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이면 안 해본 생각이 들곤 하거든.

나 자신이나 이 상황을 되돌아보게도 되고.


문득 '안정감'과 '익숙함'에 대해 생각해 봤어. 내가 조금 더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좀 더 그럴싸한 단어를 적었을 텐데 막상 떠오르는 게 이거뿐이다. 격했던 감정이 사그라 지고 다시 마음이 잔잔해졌을 때, 불안하지 않단 건 '안정감'인 거 같아. 꽤 많이 불안정한 사람인 나도 느끼는 걸 보면 꽤 든든한 녀석인가 봐.


이 냉전은 하루를 넘기지 않을 것이고 우린 또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고 - 누구도 말해준 적은 없지만 그냥 알고 있는 안정감. 근데 참 아이러니 한건 그 대단한 안정감도 항상 옆에 있다는 이유로 너무 익숙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 中-


웃긴 건 이런 생각이나 얘기까진 내일 남편한테 하진 않을 예정이야. 그 말이 맞다며~ 맞장구치는 꼴은 또 내가 안 보고 싶거든 그러니까 언니만 알고 있어!


내 생일은 2달 전인데 아직 살아있는 풍선들

좀 뜬금없긴 하지만 이건 내 생일날 남편이 사줬던 풍선이야. 생일마다 그렇게 풍선을 사 온다? (결혼 5년 차 '남편으로 살아남기'를 터득한 거지) 내 컴퓨터 바로 뒤에 걸려있어서 못 본 척할 수도 없고 지금 굳게 닫아놓은 방문과 참 대조적인 게 웃겨서 한번 찍어봤어!



오늘을 15분 남겨둔 기승전결은 없는 내 속얘기 읽어줘서 고마워. 언니의 오늘 하루는 어땠을 까, 무슨 생각을 하고 보냈을까 궁금해. 또 편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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