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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 모두의 언니 Jun 20. 2023

미국에 온 지도 벌써 반 년이 넘었어

동생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

 나아야 안녕? 방랑하는 언니야. 미국 보스턴에 작년 9월에 왔고, 어느덧 반년이 훌쩍 지나가버렸어.

남편은 미국에서 박사 후 과정(Post-Doctor, ‘포닥’이라고 부르도록 할게) 을 하고 싶다고 연애때부터 늘 말했고, 그의 졸업과 동시에 진행된 수도 없는 인터뷰 끝, 우린 결국 보스턴에 둥지를 틀게 됐어.


이민가방 2개, 제일 큰 캐리어 2개, 우리 부부의 모든 것

 몇 년 동안 내 커리어가 멈춰있어야 한다는 것과 미국에서도 물가가 비싸다고 소문난 동네에서 빠듯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컸어.


 하지만 쉬지 않고 달려온 내 인생을 돌아보고 더 높이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와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스멀스멀 가슴 속 어딘가에서부터 피어오르더라. 그 결과 미국행 비행기에서는 그야말로 내 인생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 꿨다는 것 아니겠니!


 이십대 중반부터 일을 시작했고, 미국에 올 땐 그로부터 십년이 지나고 있었어. 세월이 정말 빨리 지나간 것 같더라. 앞으로의 우리 삶의 진행 속도는 더 빨라지겠지?


 미국에 오기 전까지 참으로 다사다난한 인생을 살았던 것 같아. 그래서인지 미국에 온 직후부터 몇 개월동안은 계속 과거의 내 모습들이 매일 밤마다 꿈에 나왔어. 어떤 날은 고통스러움에 깰 때도 있었고, 또 어떤 날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모습에 머쓱거리며 깨기도 했어. 가끔 재밌는 꿈도 꿨고.


 다양한 장르의 꿈들이 매일 밤 똬리를 틀며 내 잠자리로 흘러 들어왔어. 잘 기억나지도 않던 어린 시절 추억들이 꿈에 나올때면 내 무의식 어딘가에 이 기억들이 여전히 박혀 있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고. 나아는 꿈을 많이 꾸는지 문득 궁금해지네. 나는 꿈을 정말 많이 꿔서, 깊은 잠을 자고 싶을 땐 독한 술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많아.


 그런데 요즘 내 꿈엔 과거 여러 장면들이 나오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어. 점점 매일 상상하는 멋있는 미래의 내 모습, 혼자 마음속에 그려봤던 모습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거든. 아마도 미국에 와서 내가 “과거 디톡스”를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왜 내가 무언가를 매일 생각하고 그리면 온 세상의 기운이 모여 정말 현실이 된다고 하잖아, 나는 그 말을 아주 철썩같이 믿는 사람 중 한 명인데 이젠 정말 내가 상상하고 꿈꾸는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느낌에 괜히 혼자 설레기도 하고 그래. (주책이 아니라 소녀감성이라고 부디 생각해주기를!)


 미국에서 이 곳 저 곳 많이 돌아다니며 배우고, 즐기고 있어. 보스턴은 정말 아름다운 도시야. 천국 바로 아래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도시를 만들었다면 그게 보스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야.


 한국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며 나름 큰 사람이었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자신감이 산산조각 나고 있는 요즘이야.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말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며, 별별 일이 다 일어나는 곳인 듯 해. 그래서 늘 겸손하고 겸허히 내 인생을 살아가야지 다짐하는데 쉽진 않은 것 같아. 매일 결심하고 무너지고의 반복이거든.

보스턴 퍼블릭 가든의 대장 나무 아래서

매일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써주며 스스로를 탐색해보고, 미국 생활도 더 즐겨보자!


앞으로 잘 부탁할게 사랑스러운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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