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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Jul 03. 2023

오늘 백수의 날씨는 흐림

언니에게 보내는 열한 번째 편지 / 백수의 일기

언니가 혼자 시간을 보내면서 소소한 행복 행복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 봤다니, 매번 느끼는 거지만 언니는 참 내공 있는 사람인 것 같아. 그냥 지나치기 쉬운 일상에서 감사를 느낀다는 거, 심리 도서나 자기 계발서에서 몇 번이고 말해주고 있지만 실천까지는 쉽지 않은 일이야.

난 한국에 다녀온 한 달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

누구는 애기를 어린이 집 보낸 그 귀한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어 하루를 쪼개 가며 보내고 있었고,

누구는 이제 막 엄마가 돼서 잠들지 않는 아가를 보며 오늘 밤은 조금이라도 눈을 붙일 수 있을까 고민을,

또 어떤 이들은 직장에서 쌓여간 연차만큼 사회인으로서의 능숙함과 여유를 가지고 있었어.

결혼 6년 차를 바라보는 나는 아직 아기도 당당히 나를 정의할 직업도 없어서,

'나만 지금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솔직히 말하면 겁이 났던 것 같아.  


분명 어떤 사람들은 배부른 소리라 할 수 있겠지만,  삶의 갈피를 채 잡지 못한 백수는 불확실한 미래보다 곱씹을 수 있는 과거를 한 번씩 들여다보게 되네. 지난날의 내가 다른 선택을 했었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그게 실수였을 수 도 있고 주체적인 나의 선택이었을 수 도 있겠지. 인생의 답은 없는 거니까

답이 없다는 건 이게 절호의 기회란 말도 될 수 있을 거라 믿어보려해.


여기 뉴저지는 캐나다 산불의 여파로 몇 일 내내 미세먼지가 가득했어. 지금 편지를 쓰는 와중에 드디어 비가 내리기 시작했네. 오늘의 센치함은 다 날씨 탓으로 넘겨 볼게. 분명 미세먼지도 바람에 싹 날라가고 다시 맑은 하늘에 해가 뜰 걸 알고 있으니까!


이 기록이 먼 훗날의 내가 보며, 혼란의 시간 잘 해냈구나 잘 버텼구나,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 고마워하며 대견해 할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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