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에게 보내는 아홉번 째 편지
나아야 안녕
드디어 기나긴 한국 일정을 마무리하고 미국에 왔구나! 격하게 환영해!
오늘은 얼마 전 혼자 보스턴을 돌아다녔던 이야기를 해볼까 해.
자메이카 폰드(JAMAICA POND)라는 곳에 들렀다가 라즈 앤더스 공원(LARZ ANDERSON PARK)이라는 곳을 방문했어. 자메이카 폰드는 에메랄드 넥레이스(EMERALD NECKLACE)라는 공원끼리 이어진 또 하나의 거대한 공원을 말하는데, 몇 개의 공원을 하나의 도로가 이으면서 목걸이 모양을 형성했다고 해서 저렇게 이름이 붙여진 모양이야.
자메이카 폰드는 처음 가보았는데 생각보다 호수가 컸고, 맑았고, 평화로웠던 것 같아. 처음 가보는 동네라 살짝 무섭기도 했는데, 그런 내 생각은 아이스크림 녹듯 순식간에 사라졌어.
패들요가부터 카누,카약 등 다양한 워터 액티비티도 있었고, 많은 사람들도 볼 수 있었어.
조깅하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삼삼오오 모여 피크닉 하는 사람들, 비키니만 입고 햇빛을 즐기는 사람들... 미국은 호숫가도 다채로운 표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뜨거운 햇살의 커텐을 한 겹씩 벗겨가며 열심히 걷고 또 걸으니 조금씩 얼굴을 보이는 자동차 박물관, 라즈 앤더스 오토 뮤지엄(LARZ ANDERSON AUTO MUSEUM). 이 박물관은 미국 외교관인 Larz Anderson와 그의 아내인 Isabel Weld Perkins이 자신들의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1947년에 개장한 곳으로 오래된 자동차(올드카) 와 자동차 역사에 대한 풍부한 전시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자동차 열광자들과 역사 애호가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곳이라고 해.
라즈 앤더스 자동차 박물관은 공간에서 뿜어나오는 아우라가 있던 곳이었어. 자동차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관심도 없어서 걱정을 했는데 그저 공간의 웅장한 에너지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시간이었어.
벤츠, 아우디, BMW, 페라리 등 익숙한 이름의 올드카를 보는 쾌감이 있더라. 뭐랄까, 지금 엄청나게 유명해진 연예인 친구가 있는데, 그의 과거 순수했던 모습을 아는 것과 비슷한 즐거움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 것 같아.
이 날따라 유난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책이 떠올랐어. 내 상상 속 올드카는 이 책 속에 존재했거든.
박물관 견학 후 라즈 앤더스 공원에 앉아 집에서 싸온 점심 도시락을 먹었어. 평일 오후 시간이라 내가 이 공원을 우리집 정원처럼 사용했는데, 밥먹다가 갑자기 문득 든 생각 "어? 나 행복한 것 같아"
한국에 살 때는 행복해지기 위해 더 많은 관계를 가지려하고,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려 했던 것 같아.
더 좋은 호텔에서 호캉스를 하기 위해,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하기 위해, 더 먼 곳을 여행하기 위해 돈을 벌었고.
이렇게 조용한 호수에서 먹는 소박한 점심에도 행복할 수 있는데 말야.
사실 자메이카 호수도, 라즈 앤더스 박물관과 공원도 모두 다 좋았지만, 이 날 내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며 영감을 준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었어.
길가에 핀 이름모를 들꽃, 물웅덩이에서 몸을 파르르 떨던 참새 한 마리, 어디선가 갑자기 불어오는 향긋한 라일락 향기, 밥먹는 내내 꺼이꺼이 울어대던 개구리 소리,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도록 내어준 가게 앞 조그만 벤치 하나.
무척 사소하고 접하기 쉬운 일상의 모습이지만 모든 감각이 깨어있어야 느낄 수 있는 것들.
어쩌면
인생이란 것,
행복이란 것,
즐거움이란 것
이 모든 것들은
우리 마음에 조그만 공간을 내어주면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것에서 말미암는 것이 아닐까.
나아도 언젠가 하루쯤은 모든 감각을 열어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본다면 좋을 것 같아.
후기도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