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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 Aug 06. 2023

걸으며 보며 그렇게 느끼며 깨달으며

언니에게 보내는 스물세 번째 편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나도 보스턴에 있을 때 종종 공동묘지를 방문했었어. 한국의 묘지들과는 왠지 모르게 다른 느낌을 주는 그 차분한 공간에서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더라고. 언니 말처럼 우리는 백 년도 못 채우는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데 우리 스스로를 다그치며 불행을 선택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지나고 보면 행복할 생각만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겠지!

이사 오고 나서 가장 많이 바뀐 건, 아이폰 건강 앱에 찍히는 하루 걸음수인 것 같아. 내가 운전을 좋아하기 때문도 있겠지만, 예전에 살았던 곳은 차가 없으면 이동이 힘든 곳이었거든. 강 건너 옆 동네 뉴요커들만 봐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가거나 자전거를 타, 아니면 지하철. 거리에 비해 교통비가 터무니없이 비싸기도 하지만 교통체증 때문에 걸어갈 때가 차를 탔을 때 보다 빠른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아. 덕분에 나도 여기 와서 참 많이 걷고 있어! 저번 주에는 평균 7,500보 정도 걸었더라고. 정확히 확인해 보진 않았지만 작년에 비해 두 배 이상은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야.


처음이 어렵지, 이번주는 날씨가 좀 선선해서 지하철을 타면 금방 갈 거리를 일부로 걸어 다녀 봤어. 이사 온 후로 걸을 일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 차나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미쳐 보지 못하고 놓쳤을 순간들을 조금 더 많이 눈으로 담아 둘 수 있는 것 같거든. 언니의 지난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걷다 보면 우연히 마주한 아름다운 순간 속 문뜩 감사를 느끼기도 하고 혼자 마음을 정리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아.  


한때 우울감이 심했던 때를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밖으로 나가 걷지를 않았었어. 분명 유튜브나 책을 통해 걷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익히 할고 있었는데도 말이야. 거리에 바쁘거나 행복한 사람들을 보면 세상에 나만 동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 것만 같았거든. 요즘엔 그런 생각을 해 본 지 오래된 것 같아. 그 당시에 나를 힘들 게 했던 건 아마 주변 환경이나 대단할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던 걸 비로소 느끼는 것 같기도 해.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느라 정작 나 자신을 못 돌보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담담하게 써 내려갈 수 있는 정도면 그때의 힘듬도 많이 지나갔구나 싶어. 다행이야, 행여나 아직 온전치 못할지라도!



어제저녁에는 남편과 강 건너 뉴욕 야경이 멋지기로 유명한 곳까지 산책을 다녀왔어. 인생샷 한번 건져 보겠다고 야무지게 삼각대까지 챙겨갔단 말이지. 막상 도착해서 야경을 즐길 생각을 하기도 전에 삼각대부터 설치하고 있었는데, 마음이 급했는지 그렇게 삼각대를 부숴버린 거 있지. 나름의 계획이 틀어졌단 생각에 순간 너무 허무하고 한편으로 짜증도 났어. 둘이 기념사진 찍기는 글렀다 싶어서 부러진 삼각대를 버리고 공원을 걸으면서 야경을 감상했어. 그러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왜 인증샷에 목숨 걸었던 걸까. 사진 속에 우리가 있지 않다고 해서 그 순간에 우리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만약에 삼각대가 멀쩡 했더라면 야경은 뒷전으로 얼굴이 어떻게 나왔니 포즈는 어색하지 않으니 이런 생각들로 정작 눈과 마음으로 볼 수 있던 순간들을 놓쳤을 것 같아. 누굴 위하는 거지 그게. 지금 생각하니 그 잠깐 짜증 났던 순간조차 좀 웃기네. 여기저기 걸으며 내가 이곳에 있었다 싶을 '증거'사진은 남기지 못했지만, 우리가 참 아름다운 순간에 존재하는구나 싶은 벅참이 올라왔어.


앞으로 부러진 삼각대를 떠올리게 될 그 순간 멋졌던 뉴욕의 야경

겨울이 오면 이런저런 핑계로 걷는 날들이 줄어들겠지. 유난히 더웠던 것 같은 올해의 여름도 벌써 8월에 접어들어 곧 가을이 올 것 같아. 그땐 지금 이 순간, 이 여름이 또 그리워지겠지. 우리 이렇게 지금을 많이 느끼며 나중에 추억하며 더 행복할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 가자. 우리 계속 열심히 걸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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