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모유수유로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다. 아기 5개월에 재취업하고 워킹맘에 돌입하여 어느덧 아기의 첫돌을 맞이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이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3개월 동안은 유축을 지속했고, 이후부터는 낮시간에는 젖을 끊었다. 밤중 수유가 아기의 수면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슬슬 수유를 끝내야 할 시기였다.
수유를 지속하며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수유 직후 푹 꺼진 젖가슴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몸에 물기가 빠지는 듯 푸석푸석하고 머릿결도 나빠져서 아예 짧은 단발로 머리카락을 싹둑 잘라내 버렸다. 마침 환절기까지 찾아온 덕에 퍼석거리는 피부까지 갖게 되었다. 평생을 지성피부로 기름지게 살아왔던 나로서는 처음 겪는 건조함이 충격이었다. 생전 로션 따위 바르지 않아도 번들거리게 살아왔던 터라 집에 바디로션 조차 없었음이 새삼스러웠다. 임신하고 생긴 튼살 주변이 유독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벅벅 긁어대기도 한계가 있어 환장할 노릇이었다. 로션이며 보습제를 열심히 바르고 발라도 미칠듯한 간지러움이 그칠 줄이 없었다.
낮 시간의 유축을 중단하고 나니 생리가 돌아왔다. 이제 슬슬 내 몸이 회복이 되는가 싶었는데, 미혼 때도 없던 배란통이 생겨버렸다. 더 정확히는 자궁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내 몸의 작은 신호를 분별할 수 있게 되면서 생리를 준비하고 생리를 시작하는 모든 과정을 인지하게 되었다.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그만큼 추가적인 고통이 수반되었다. 복부가 팽창하는 느낌, 자궁이 늘어나는 느낌이 이어졌다.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초래될 정도의 통증도 있었다.
아이의 첫 생일이 지났다. 산후 검진 이후 처음으로 산부인과를 방문했다. 출산과정에서 회음부 손상이 심해 병원을 여러 번 다녔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에는 회음부 절개 부위에 염증이 생겨 오랜 기간을 통원 치료하며 고생했던 일이 머릿속을 스쳤다. 자궁 초음파의 새삼스러움을 다시 느끼면서 검진을 하니 난소에 물혹이 있다고 했다. 임신 전, 임신 중, 출산 후 모두 깨끗했던 난소에 갑자기 생긴 물혹에 당황스러웠다. 설마 물혹 때문에 통증을 느끼게 된 걸까 물어봤다. 의사는 별일 아니라며 있다가도 없어지는 게 물혹이라 했지만, 덜컥 겁이 났다.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일반인으로서 의사의 말은 두려웠다. 의사는 물혹의 문제가 아니라 임신 출산을 겪으며 생긴 신체변화로 몸이 많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했다. 여러모로 아가씨 때와 같을 수는 없을 터였다.
산부인과에 이어 피부과도 방문했다. 미칠듯한 가려움으로 살이 벗겨질 정도로 긁어대고 있던 중이었다. 긁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긁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의사는 심한 알레르기라고 했다. 약을 쓰지 않고서는 해결될 수 없는 알레르기라 수유 중이라도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임산부도 먹을 수 있는 약한 정도의 약을 처방하지만, 그래도 가려움이 낫지 않는다면 수유를 중단하고 약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1년을 수유했으면 할 만큼 했다고 격려해주는 의사의 말에 울컥했다.
내 몸이 고장 났다. 수유의 장점보다 치료가 더 중요하다는 조언을 들으면서 마음이 복잡해졌다. 미련하게 모유수유를 고집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예전과 같지 않음이 객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슬펐다. 아이를 낳는 것은 내 생명력의 일부를 떼어내는 일이었다. 낳는 순간의 고통만큼 육아로 인해 누적된 피로와 손상도 컸다. 온전히 나를 돌보면서 산후조리를 했어야 하는데, 돈 몇 푼 더 벌겠다고 내 의지로 워킹맘이 되었기 때문에 이렇게 건강을 놓쳐버렸나 싶어 씁쓸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병원에서의 결과를 말해주니 그러게 뭐하러 그리 급하게 취업을 해서 그러냐는 다정한 타박을 들었다. 내 의지로 선택한 재취업이었다. 커리어를 놓치는 게 싫어서, 사회에서 밀려나는 게 두려워 악착같이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여러 차례의 탈락 끝에 재취업에 성공했을 때 너무나 기뻤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느꼈던 불안감이 사라지고, 출근의 고달픔과 퇴근 후 이어지는 육아에 허덕이면서도 뿌듯했었다. 그런데 고작 반년 워킹맘을 했을 뿐인데 내 몸이 고장 나 버렸다.
남편의 반대에 맞서 싸우며 출근을 강행했었다. 매달 상환하는 은행이자에 목이 졸려 자다가도 번쩍 깨곤 했다. 퇴사 이후 아이를 키우며 남편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게 괜히 처량했다. 사고 싶은 게 있다고 구구절절이 이유를 말하고 남편에게 돈을 받는 내가 구차하게 느껴졌다. 남편은 구박한 적도 없는데 나 혼자 동동거렸다. 그래서 더 간절히 재취업을 꿈꿨다. 그리고 행복하게 워킹맘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만 생각하면 되었던 미혼 때가 아니었다.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지난한 시간은 큰 충격과 변화를 동반했다. 돌이켜보면 별 것 아니었는데 그 순간에는 견딜 수 없이 조급했었다.
그래도 워킹맘이 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가 내 돈을 벌게 된 덕분에 큰 망설임 없이 병원에 다니게 되었다. 비싼 병원비를 눈 하나 깜짝 않고 일시불로 지불할 수 있게 될 만큼의 넉넉한 여유가 생긴 것도 워킹맘의 장점임을 안다. 남편은 꽤 성의껏 가사를 분담했다. 그것도 워킹맘이었기에 당딩히 요구할 수 있었음을 안다. 그런데 갑자기 공허하다. 워킹맘은 다 이런 걸까. 괜히 가지 않은 길이 아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