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비밀을 품은 자는 얼마나 갑갑했을까. 그는 대나무 숲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비밀을 풀어놓을 수 있었다. 대나무 숲은 그를 꼭꼭 숨겨줄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인터넷 시대에 살고 있는 나 역시 가슴속에 갑갑함을 가득 채우고 산다. 속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찾기가 힘들다. 속을 까보인다는 것은 곧 약점까지 까발린다는 것이니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켜켜이 쌓아 내면에 무겁게 가라앉치는 수밖에 없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서 툭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진다. 어릴 때 친구는 관심분야가 달라지면서 공감의 깊이가 한계가 있게 되어 버렸고, 사회에서 만난 사람은 아무리 친해도 친구까지는 되기가 어려웠다. 많은 것을 공유하는 남편일지라도 서로의 입장차가 있으니 무조건적인 공감도 받을 수 없었다.
임신과 출산 퇴사라는 엄청난 서사를 빠른 속도로 관통하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내 속에 쌓여버렸다. 어떤 이야기는 너무 무거워서 속에 쌓아두었다가는 바닷속으로 끌어내려질 지경이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도 글 쓰는 모임을 기웃대다 어딘가에 속을 털어놓을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개인의 고유성을 거세해 버린 채 아이디로만 존재하며 체면 차리지 않고 퍼부어 낼 수 있는 나만의 대나무 숲.
나에게 글쓰기는 그렇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