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게 되면서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을 다시 생각한다. 비 오는 날이면 출근길이 붐벼서 더 부지런을 떨어야 했었다. 아기를 떼어두고 출근을 하면서는 시어머니를 기다리는 불안이 추가되었다. 비 때문에 시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늦게 나오면 나도 지각하게 되어 버리는 상황이다. 왜 남편은 이런 불안감에서 예외인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출근시간이 더 짧아서라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속이 편하다.
늦어도 7시 반까지는 시어머니가 도착을 하셔야 한다. 7시 25분이 되니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예 신발까지 다 신고 현관에서 시어머니를 기다렸다. 정말 딱 7시 30분에 시어머니가 오셨고 인사만 하고 바로 집을 나섰다. 회사에 도착하고 나서 생각해보니 시어머니도 늦지 않게 오시려면 평소보다도 더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서야 했겠다 싶었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다고, 오늘도 감사하다고 말씀이라도 드리고 올 걸 후회가 되었다.
가족이 아이를 봐줄 수 있는 내 경우는 모든 워킹맘 중에서도 가장 운이 좋은 것임을 안다. 시터에게 아이를 맡기는 지인은 항상 불안하다고 했다. 시터에게 아이 양육방법을 지적했다가 괜히 아이에게 짜증이라도 내려나 싶어서 참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를 맡긴 엄마는 매사에 죄인이 된다.
아이를 낳고 나서 뉴스에 아동학대 기사가 나올 때마다 심장이 죄어왔다.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때렸다는 기사부터 신생아 학대, 어린이집 사건 등을 보면서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항상 불안했다. 나는 다른 워킹맘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가족 돌봄이 가능함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며느리는 '을'보다 도 못한 존재가 되었다. '을'은 '갑'에게 대응이라도 할 수 있는 구제 방법이 있지만,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 철저히 수그려야만 했다. 혹시나 시어머니와 크게 다투게 되어 더 이상 아이를 봐주지 않겠다고 하는 날이면 모든 생활이 무너지는 것이다. 설마 그럴 일은 없겠다 싶지만 더 조심하고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 시어머니는 좋은 분이라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를 도와주고 싶어 하셨다. 며느리 출근 전에 부리나케 오셔서 아이를 봐주시고, 밀린 빨래도 해주셨다. 살림까지는 안 하셔도 된다고 말씀드려도 집에서 아이 돌보며 할 수 있는 만큼은 해주겠다고 하셨다. 네가 살림을 뭐 얼마나 해봤겠냐고 하시면서도 자꾸 뭘 해주시려고 하셔서 시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만 가지기로 했다.
창 밖에는 비가 내리고 내 마음에는 눈물이 내린다. 아기는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