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

워킹맘 5

by 나브랭

전업주부로 지내며 아이를 키우던 시절에는 남편의 외벌이로 생활해야 하니 내가 육아와 살림을 모두 해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잠투정하는 아기를 겨우 재우고 설거지와 빨래를 했다. 살림하다가 아기가 깨서 울면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가야 하니 하루 종일 설거지만 겨우 한 날도 있었다. 아등바등 육아와 살림을 병행해 나갔다.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을 차리고 매번 새로 한 밥을 차렸다. 오후 3시부터는 국을 끓여내고 밥을 준비하고 반찬을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야 겨우 6시에 퇴근하는 남편에게 밥상을 차려 줄 수 있었다. 남편이 식사하고 난 후 아기와 잠시 놀아주는 시간에 나는 허겁지겁 밥을 먹고 뒷정리를 했다. 아기가 태어난 후 남편과 같이 밥을 먹는 일은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출산 이후 나는 남편의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완벽하게 하는 게 전업주부의 할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바닥을 매일 쓸고 닦아도 반질반질 윤이나지 않았다. 설거지를 아무리 해도 밥을 먹고 나면 또 잔뜩 쌓였다. 세탁기는 하루 종일 계속 돌아갔다. 아이 빨래, 어른 빨래, 이불 빨래까지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였다. 쓰레기는 매일같이 생겨났다. 살림의 범위는 무한대였다. 어디까지 하면 된다는 정도가 정해지지 않으니 해도 해도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전부 다 내 일이었다. 외벌이로 고생하는 남편에게 집안일이 널브러져 있는 꼴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내가 출근을 하게 되었다. 육아는 시어머니와 교대하기로 했는데 살림은 교대해 줄 사람이 없었다. 나이 든 시어머니가 집안 살림까지 신경 쓰게 할 수 없으니 더 부지런히 청소와 빨래, 설거지를 해야 했다. 살림이 단정하지 못하다고 시어머니가 흉보는 것도 신경 쓰였지만, 아이 보느라 충분히 힘드실 시어머니에게 집안일까지 떠맡기는 것도 며느리로써 도리도 아니었다.


5시 새벽 수유를 하고 간단히 아침밥을 챙겨 먹고 설거지를 했다. 부지런히 거실 바닥을 쓸고 나서 출근 준비를 했다. 이 모든 일에 남편의 참여는 없었다. 남편에게는 젖이 없으니 수유는 할 수가 없고, 남편은 원래 아침밥을 먹지 않았다. 그러니 아침밥 설거지는 당연히 내 몫이다. 내가 부리나케 거실을 쓸고 닦는 동안 남편은 여유롭게 아침 샤워를 하고 옷을 입고 출근했다. 나는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서 아이를 신경 써야 했다. 왜 나만 이렇게 동동거리게 바쁜 것인지 알아챌 여유도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남편은 요리를 전혀 하지 않았다. 가끔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고작 라면이나 끓여먹는 정도의 사람이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내 일이 되어있었다. 재취업을 하고 나서도 내 직장이 남편의 직장보다 훨씬 가깝기 때문에 저녁 준비는 여전히 나의 일이었다. 시어머니에게 아들 내외 저녁밥까지 준비해달라 할 수가 없으니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첫 출근의 고단함이 가시기도 전에 부리나케 날듯이 뛰어 퇴근을 했다. 시어머니가 떠난 후 나는 저녁밥을 차려야 했다. 엄마와 이렇게 오래 떨어진 게 처음인 아기는 유난히 보채고 계속해서 울어댔다. 아이를 안고 칼질을 할 수도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계속 울고 칭얼대고 짜증 내는 아기를 달래며 너무나 힘들어 울었다. 당장 내가 너무나 배고파 밥을 정신없이 하는데 남편이 늦으니 먼저 먹고 있으라는 연락이 왔다. 아기가 우는데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우는 아기를 옆에 두고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욱여넣었다.


늦게 퇴근한 남편은 밥은 됐고 간단히 간식이나 먹겠다고 했다. 나는 미련하고 멍청했다. 힘들게 밥을 할 게 아니라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면 된다는 것을 몰랐다. 너무나 속상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먹지도 않을 새 밥만 밥솥 가득 들어있었다. 나는 무엇을 바라고 끼니마다 새 밥을 했던 것일까. 내가 너무 초라하고 불쌍해서 화장실에서 몰래 울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저녁밥을 먹지 않기로 했다. 남편 밥은 냉장고에 들어있는 반찬 중 아무거나 꺼내 줬다. 나 혼자 저녁밥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내가 그만둬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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