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해서는 잠시만 입을 옷에 돈을 쓰기가 아까워 품이 넉넉한 원피스 위주로 입었다. 출산 후에는 집에만 있었으니 잠옷이 홈웨어였다. 수유하기 편하도록 앞 단추가 있고 면으로 된 원피스를 입고 지냈다. 집에서도 조리원 복장처럼 아주 편하게만 있었다.
어찌 취업이 되었으니 출근을 해야 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다가 출근 준비를 하면서 경악했다. 출산 전에 입었던 오피스룩이 맞는 게 거의 없었다. 바지 종류들은 지퍼가 잠기지 않았고 용케 겨우 입었더라도 엉덩이와 허벅지가 터질 지경이라 흉해서 도저히 입을 수 없었다.
급한 대로 옷장을 뒤져내어 품이 그나마 넉넉한 원피스 몇 벌을 찾아내었다. 출근 첫날부터 포멀 한 정장이 아니라 원피스를 입는 게 찜찜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입을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단정한 원피스를 고르고 내 몸을 다시 바라봤다.
살이 어찌나 쪘는지 허벅지가 투실투실하고 분명 5개월 전에 출산을 했는데 아직도 아랫배는 한 근은 튀어나왔다. 허리살과 뱃살이 두둑하고 흉통도 확 커졌다. 모유수유로 가슴이 불어있는 것과는 다른 차원으로 흉통이 넓어졌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으니 검증할 방법은 없지만 출신 전과 아예 다른 몸이다.
아기 위주로만 살았다. 출산 이후에는 내 몸에 대한 생각을 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으며 하반신을 천으로 대강 덮고 있어도, 유방관리를 한다고 앞섶을 풀어헤쳐도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없었다. 그냥 아기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런가 보다 넘어가게 되었다. 출산의 상황에서는 몸뚱이는 중요치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했다. 생물학적으로 내 몸은 자손번식이라는 기능을 충실하게 이행했으니 더 이상 매력적으로 이성에게 어필할 이유가 없다. 그저 새끼를 잘 기르기 위해 이제부터는 이성에게 매력을 발산하기보다는 양육 모드로 전환하는 게 생물학적 차원의 경제성일 것이다.
엄마가 아니라 직장인이 될 때가 문제였다. 집에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좀 푹 퍼지고 살집이 두둑해도 남편이 감히 뭐라 하지 못하는 아기 엄마니까 배짱이 있었다. 그러나 일상의 고단함을 감추고 일명 프로답게 보여야 하는 직장에서는 곤란했다. 이 꼴로 마냥 있다가는 애엄마를 괜히 채용했다는 뒷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사회의 냉혹한 시선이 두려웠다. 다들 독이 빠짝 올라있는 직장에서는 별의별 것이 다 약점이 되기 마련이었다.
결혼 전 직장에서 살이 찐 여직원을 본 적이 없었다. 말끔한 입성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직종이긴 했지만 배 나온 아저씨는 있어도 배 나온 아줌마는 없었다. 그동안 이런 위화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출산 후에 살이 쪘다는 아줌마들을 보며 왜 저 사람은 미련하게 자기 관리를 못했나 생각만 했지 그녀의 일상이 얼마나 고단할지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살찐 아줌마는 회사로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다. 나는 두려워졌다.
뱃살을 빼고 산후관리에 성공한 이후에 옷을 사겠다는 마음을 비워냈다. 불어난 몸뚱이를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했다. 출산 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미시 브랜드를 검색했다. 체형이 달라졌으니 옷의 패턴도 바꿔야 했다. 40대 아줌마를 타깃으로 한 숙녀복 브랜드에서 불거진 엉덩이살을 감쪽같이 가려주는 바지를 주문했다. 아마 그전에도 그랬듯이 무수히 많은 실패를 거치고 나면 온라인 쇼핑에서 성공적 득템을 할 수 있겠지. 미시복 아니 숙녀복의 세계는 처음이다. 숙녀복의 어감이 새삼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