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 사랑

워킹맘 8

by 나브랭

퇴근하고 어영부영하다 보면 아이가 자는 시간이다. 다행스럽게도 밤잠은 잘 자는 아이라 젖 물려서 토닥토닥해주면 스르르 잠이 든다. 나도 기가 막히게 잠이 온다. 아이와 같이 잠들어버려서 집안일이 밀리기 일쑤였다. 집안일을 덜어줄 가전제품이 없었다면 사람 꼴로는 못살았으리라.


내 돈 내산. 부지런히 준비했던 예쁜 혼수품보다 기능에 충실한 가전이 더 좋다. 가장 좋은 건 의류건조기다. 좁은 신혼집에 빨래 말릴 공간이 없어 구입한 의류건조기는 신세대 육아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무수히 나오는 아기 빨래가 두렵지 않다. 의류건조기 덕분에 빨래로 인한 스트레스가 매우 줄었다. 세탁기에서 젖은 빨래를 꺼내 널고 말리고 개는 과정이 혁신적으로 줄어들었다. 1 가정 1건 조기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건조기야 말로 출산 필수품이다. 워킹맘은 돈으로 시간을 사는 존재니까.


출근하는 동안 아이를 봐주시는 시어머니는 조금만 부지런하면 빨래 따위를 널고개는 것은 금방이라며 은근히 비싼 가전을 타박하셨다. 하지만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아기 빨래가 뜨끈한 바람에 뽀송하게 말려 나오는 것을 경험하시고는 의류건조기의 소중함을 인정하셨다.


부엌에 공간만 좀 더 넉넉했다면 식기세척기도 꼭 사고 싶다. 친정집에서는 식기세척기를 사용하는데 간단히 흐르는 물로 씻어낸 식기들을 식기세척기에 넣어놓으면 뜨거운 물로 스팀샤워까지 마친 접시와 그릇들이 개운하게 들어있다. 어찌나 뽀독하고 뿌듯한지 보고 있기만 해도 기쁨이 밀려온다. 부엌 넓은 집으로 이사 가면 꼭 들여놓고 싶은 가전 1순위가 바로 식기세척기이다.




처음부터 시어머니가 의류건조기에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어르신들은 일단 새 제품은 잔소리부터 하고 시작하시는 듯했다. 아들 내외가 힘들게 번 돈을 아껴 쓰기를 바라는 마음이실 게다. 그게 며느리를 무조건 탓하는 게 아님을 알아채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시어머니에게 살림의 민낯을 보일 수밖에 없는 내 입장에서는 하나하나 다 조심스러울 뿐이었다. 겉으로는 모른척하지만 말씀 하나하나에 담긴 속 뜻이 마음에 가시처럼 박혔다.


시누가 아기를 낳고 기를 때에는 시어머니가 직장에 다니고 있어서 아기를 봐주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려서 본인 딸은 고생했는데 며느리는 애도 다 키워주니 편하게 산다는 말로 들렸다. 고민 끝에 시누에게도 건조기를 선물로 보내줬다. 시어머니는 뭐 시누까지 신경을 쓰냐고 했지만 내심 기뻐하는 게 느껴졌다. 시어머니도 사람인지라 내 자식에 마음이 우선 쓰이는 게 당연지사였다. 본인 딸도 맞벌이하면서 아등바등 아이를 키우는데 며느리는 편하게 맞벌이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기 마련이다.


시누는 건조기를 사서 배송시켰다는 말을 듣고 펄펄 뛰었다. 비싼 건조기를 덜컥 사서 보내면 어쩌냐고 환불이라고 하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조용히 밀어붙였다. 시어머니에게 돌봄비용을 드리고 시누에게 건조기 선물을 보내니 내 월급은 사라지다 못해 마이너스였다. 그래도 지금은 지출해야 할 시기였다. 시어머니에게도 시누에게도 눈치가 보이는 게 워킹맘의 위치인가 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슈퍼우먼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