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아이를 봐주시기로 했다. 친구들은 그러면 시어머니랑 사이만 나빠진다고 걱정했었다. 먼저 아이를 낳고 키운 친구는 아예 시댁과 합가까지 했었는데 항상 마음이 힘들었다고 했었다. 아무리 좋은 시부모님이라도 매일 보면 불편하다고 여기저기서 걱정과 우려가 많았다.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장점이 더 많았다.
아기를 밑고 맡길 수 있는 시어머니가 있었기에 워킹맘으로서 존재할 수 있었다. 아기와 안정적으로 애착을 형성할 수 있는 믿음직한 시어머니가 있으니 아기의 정서발달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시어머니가 아기를 학대하지도 않을테니 안전하게 믿고 맡길 수 있어 재취업이 가능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새 베이비 시터에게 말도 못하는 아기를 맡겨놓고 출근을 하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는 선배 워킹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아팠다. 복직 첫 날, 울지 않는 워킹맘이 어디있겠는가만은 시어머니가 아기를 봐주는 나는 확실히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경력단절없이 사회생활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시어머니 덕분이다. 아기를 낳고 나서 재취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직전까지 현업에서 근무했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아기를 낳고 아기가 딱 5개월 되는 날 출근을 했으니 경력단절없이 바로 이직을 한 셈이었다. 코로나때문에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 시기적절하게 취업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경력단절의 기간이 짧았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가 있었기에 빠르게 재취업을 고려할 수 있었다. 성공적으로 경력직 이직을 할 수 있었으니 다행인 일이었다.
아이에게 엄마가 필요한 시기는 짧다고들 한다. 아이가 초등학생만 되어도 엄마의 도움이 필요없다. 엄마들이 재취업을 고민하는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쯤, 그러니까 10살이 되면 엄마도 자신의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기게 된다. 그런데 사회도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있다. 아무리 뛰어났던 사람이라도 육아 이전의 경력으로는 재취업이 힘들어진다. 거의 대부분의 엄마들이 40대 취업을 위해 마트 캐셔를 알아보는게 현실이다.
내 이름으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것도 다 시어머니 덕분이다. 직장생활을 통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급여이다. 출근을 해서 가장 좋은 점은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돈 쓰는 것에 대해 뭐라 말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눈치가 보였다. 수유복을 사는 것 조차도 남편에게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 용돈에서 해결했던지라 자꾸 내 잔고가 줄어드는 것을 보며 조급해졌다. 아마 남편은 이런 내가 이해가 안될 테지만 직장인으로 살면서 용돈을 스스로 마련한다는 게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월급의 일부에서 용돈을 마련하고 아끼고 모았었다. 통장에서 잔고가 줄어드는 것이 마치 자존심도 같이 줄어들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취업을 결심했다.
조리원 2주 그리고 남편의 출산휴가 2주가 지난 후 부터 시어머니는 거의 매일같이 집에 오셔서 아이를 봐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용돈을 드려도 한사코 거절하셨었다. 출근을 하게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어머니에게 아기돌봄비용을 드려야했다. 돌 전 아기를 봐주는 베이비시터에게는 한달에 거의 200만원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가족이라도 예외는 아니다. 아무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얼마간의 희생을 감수한다지만, 매일같이 새벽에 손주돌봄을 위해 출근을 해야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기돌봄에 대해 시어머니에게 합당한 대가를 드려야 했다.
2020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했을 때 받을수 있는 실업급여는 하루에 60,120원으로 한달 기준 1,683,360원이다. 아무리 가족돌봄이라지만 이정도의 금액은 드려야 맞다고 생각해서 월150만원씩 드리기로 했다. 아무리 맞벌이를 한다지만 돌봄비용드리고 출근에 필요한 교통비, 의복비 그리고 힘들어서 배달음식 시켜먹게 되는 비용을 제하고 나면 한사람 분의 월급이 고스란히 사라져버렸다. 내 자식을 남의 손에 맞기고 기껏 맞벌이를 해봤자 결국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사실에 허탈했다. 아마 이 지점에서 워킹맘을 포기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엄마가 직접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이 인건비를 따졌을때 이익이라 생각되기도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 100만원만 주면 되는데 왜 이렇게 많이주냐고 하셨지만 그래도 받아달라고 했다.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만큼의 합리적인 대가를 드려야 오랫동안 안정적인 관계가 형성되리라 생각했다. 정말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가치와 금액을 후려치기 해서는 안된다. 시어머니도 주변 지인들에 비해 넉넉히 대가를 지급하는 며느리를 귀하게 대접하고, 며느리의 일을 존중하게 되었다.
전날 설거지가 밀려있거나, 빨래가 산더미 처럼 쌓여있어도 며느리가 퇴근하고 많이 힘들었나보다 하고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시어머니를 바란다면, 시어머니의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에 대가를 충분히 지급하고 있는지를 되짚어보는게 좋겠다. 150만원으로 아이양육과 가사노동까지 성의껏 해주시는 분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나는 시어머니 덕을 보는 며느리인 것이다.
결국 돈을 지불하는 것이 슬기로움의 비법이다. 뭐니뭐니해도 머니로 귀결되는 것이 삶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