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에는 아기가 아직도 작기만 한데 어느덧 100일이 지나도록 훌쩍 커서 이유식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모유수유를 하는 아기들은 생후 6개월부터 이유식을 시작하라고 하는데, 당장 5개월부터 출근을 하게 된 나는 뭐든지 조급했다. 워킹맘의 아기는 강하게 크는 법이라며 내 출근을 기점으로 이유식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기 몸무게가 7kg이 넘으면 이유식을 시작할 수 있다는 책을 읽었다. 모유 수유하는 아기는 6개월까지는 모유만 먹이라는 소아과 의사의 말도 있었지만, 워낙 먹성이 좋은 아기라 괜찮으리라 적당히 판단했다. 물론 남편은 벌써부터 이유식을 먹이면 어쩌냐고 굉장히 잔소리를 했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검색했다. 초기 이유식을 위해 각종 도구들을 구입할까 하다가 일단 집에 있는 걸로 시험삼아 해보고 구입을 고려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는 살림과 요리에 관심이 없어 끝까지 이유식을 완수해 낼 자신이 없었다.
맨 처음 쌀미음을 했다. 블로그에서 보니 10배 죽을 끓이라고 했다. 맨 처음 이유식을 할 때 희멀건한 물처럼 이유식을 만들었다. 그다음부터는 그냥 눈대중으로 대강 만들었다. 잘 먹는 아기라 다행이었다. 너무 조급하게 이유식을 시작하는 게 아니냐고 도끼눈을 뜨며 나에게 잔소리하던 남편은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아기를 보면서 기뻐했다. 이렇게 잘 먹는데 이유식을 늦게 시작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너스레까지 떨어서 얄미웠다.
시어머니는 오히려 시판 이유식을 먹이기를 권했다. 집에서 만들어 먹이면 재료를 다양하게 먹이기 힘들더라는 경험담을 말해주면서 요즘 잘해서 팔더라고 했다. 괜히 퇴근하고 힘든데 이유식까지 만든다고 고생하지 말라는 다정한 격려도 덧붙이셨다.
먼저 아기를 낳아 키우는 친구에게 이유식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는 것은 인스타 피플이나 하는 일이라며 강력하게 시판 이유식을 권했다. 본인이 직접 열심히 만든 이유식은 먹지도 않고, 시판 이유식만 맛나게 먹더라는 본인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이유식 업체 몇 곳을 추천해 주었다.
아기에게 다양한 식재료를 접하게 해 주고, 나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라도 시판 이유식이 적합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왕 시작했으니 초기 쌀미음까지는 만들어 먹이고 중기 이유식부터 시작할 작정으로 이유식 업체의 샘플 이유식을 신청했다.
샘플 이유식을 받아보니 내가 만든 이유식에 대한 반성이 저절로 일어났다. 이유식을 만들 때 정확한 계량 대신 눈대중으로 대강대강 만들었는데, 그동안 내가 만들어 먹인 초기 이유식이 시중의 중기 이유식보다 뻑뻑했다. 이렇게 어마 무시한 것을 초기 이유식이랍시고 먹였는데도 열심히 참새처럼 입을 벌리고 먹어준 내 아기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몇 개의 이유식 업체를 살펴보고 난 후 레토르트로 포장된 이유식을 정기 구독하여 먹이기 시작했다. 상온에 보관해도 되기 때문에 냉장고 자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었다. 아기는 이유식을 항상 잘 먹어줬다. 말도 안 되게 뻑뻑한 초기 이유식(나중에 알고 보니 거의 후기 이유식 수준의 묽기였다. 성인 죽의 수준으로 만들었었다.)부터 다양한 업체의 시판 이유식까지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어주었다.
이유식 제조를 위한 조리도구를 새로 구입하지 않은 것이 정말로 다행이었다. 혹시 아이에게 함께 있어주지 못함을 이유로 피곤함을 무릅쓰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는 워킹맘이 있다면 조용히 가서 말려주고 싶다. 이유식을 직접 건강한 재료를 엄선해서 만들어 주는 것도 좋지만, 아기에게 더 필요한 것은 다정하게 안아주는 엄마의 품이 아닐까. 워킹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소중한 시간자원을 잘 활용하기를 바란다.
나는 정말로 운이 좋게도 먹성이 좋은 아기를 둔 워킹맘이기 때문에 이유식 선택이 수월했다. 하지만 이유식을 정말 잘 안 먹는 아기도 있을 수 있다. 엄마표 이유식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뱃고래나 식성에 따른 문제이기 때문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
친정엄마에게 물어보니 내가 정말 지독하게 안 먹는 아기였다고 한다. 워낙 먹는 양이 적고 입도 짧아서 키우는 내내 밥먹이려고 숟가락 들고 쫓아다녔다고 했다. 아이가 잘 먹지 않는 게 엄마 탓은 절대로 아니니 속상해하지 말자.
8개월이 된 아이는 여전히 밥을 잘 먹는다. 내가 만들어 놓은 이유식에는 관심이 없고, 시판 이유식은 최선을 다해 먹겠다고 달려든다. 만약 내가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사람이었다면 꽤나 조급하게 마음을 졸였으리라. 편안한 육아를 위해 선택한 시판 이유식은 육아의 질을 혁신적으로 높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