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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Oct 27. 2020

피곤

워킹맘

부장이 나를 보고 유난히 피곤해 보인다고 했다. 별일 아닌 일상의 말에도 괜히 더 뜨끔한 건 내가 계약직이라서 그런 걸까. 다년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이상한 눈치만 늘어버린 나로서는 매년 있는 동료평가시기에 예민해진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담당업무로 고과를 평가하기도 애매해서 동료평가에 내심 신경이 쓰였다.


피곤의 이유를 생각해본다. 아기가 없을 때는 주말에 밀린 잠을 실컷 자고 배고플 때야 미적미적 일어나 대강 배달음식 시켜먹고 늑장을 부렸다. 아기는 주말에도 한결같이 부지런해서 6시 반이면 놀아달라고 칭얼댔다. 늘 아침마다 부산스럽던 엄마가 옆에 있으니 6시쯤 눈을 떠서 혼자 꼼지락대며 놀다가 내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 그러고도 못 견디게 심심해지면 단풍잎 같은 손을 쫙 펴서는 엄마 얼굴을 찰싹찰싹 때려댔다.


아기가 밤중에 깨서 칭얼거리는 일이 많아져서 남편은 방에서 자고 밤중 수유를 하는 내가 아기와 같이 자기로 했다. 분리 수면 후 남편은 급속도로 예전의 활기를 찾았으나, 밤새도록 아기를 전담 마크하게 된 나의 피곤은 가실 새가 없었다. 거실에 아기매트를 깔고 그 위에 이불을 펴서 잔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잠자리가 불편한지도 모르게 눕기만 하면 뻗어버렸는데, 이제는 온몸 구석구석 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너무 빨리 재취업을 해서 그런가 싶어 매번 마음이 쓰였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나만 겉돌면서 종종거리는 기분이었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100센트가 아닌 상태가 이어졌다. 다행히도 시어머니가 낮시간 동안 아이를 돌보며 가사를 봐주셨기에 그나마 적당히 사람 꼴로 지내는 중이었다.


남편이라고 해서 멀뚱 거리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남편은 퇴근 후에 아기를 씻기고 몸으로 놀아주는 것까지 최선을 다 했다. 나는 아직도 단유를 못한 관계로 밤중 수유를 견디고 있었다. 밤중 수유만 끝내고 나면 피곤이 끝나는 걸까. 아기와 계속해서 함께 있어주지 못한다는 미안한 마음을 아기에게 젖 물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는데, 이것마저 없어져 버린다면 정말로 일하는 엄마로서 죄책감만 남을 것 같다. 어쩌면 답은 이미 나와있을 수도 있다. 일하는 엄마는 항상 죄인이다. 직장인으로서도 엄마로서도 백점일 수가 없었다.


가끔 승승장구하는 워킹맘에 대한 기사가 나면, 저 사람은 틀림없이 아이를 전담하는 사람이 있으리라 도끼눈을 뜨고 보게 되었다.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면서 일까지 잘하는 슈퍼우먼도 가끔 있기는 했다. 그럴 때면 나는 새우눈을 치켜뜨고 가정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


주변 친구들만 봐도 출산 후 나만큼이나 빠르게 일을 시작한 경우는 없었다. 휴직제도가 갖춰져 있는 공무원 친구를 빼고는 다들 출산 후 경력단절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채로 집안에서 동동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 휴직까지는 했는데 복직이 엄두도 안나는 친구, 매일같이 빨리 복직하라고 전화가 온다는 대기업 친구, 임신하자마자 퇴사한 친구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다들 경력단절을 두려워했지만 나처럼 당장 일을 시작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아무도 해보지 않아서 너무 쉽게 재취업을 해버렸을지도 모른다. 먼저 복귀해 본 친구가 얼마나 힘겨운지를 말해줬다면 결코 엄두도 내지 않았을게 분명했다. 나는 너무 조급했고 엄마 되기가 자신이 없었다.


나의 체력을 과신했었다. 피곤이 계속 이어져서 골골거리면서 언제까지 회사일을 할 수 있을까. 피곤함 없는 맑은 얼굴까지 꾸며내는 게 치열한 회사생활이다. 회사에서는 조금만 허점이 보이면 득달같이 눈치채고 입을 대기 마련이다. 다들 뾰족뾰족하게 가시를 세우고 다녀서 더 피곤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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