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일이 손에 익었다. 20대 머리가 쌩쌩 돌아가던 때보다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자만심이 들었다. 재취업을 앞두고 괜히 걱정했다 싶을 만큼 나는 일에 잘 적응했다(적어도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익숙해지자 내 커리어에 대한 고민과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마침 예전 직장에서 내년도 사업 프로젝트에 내가 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참이었다. 이직 후에도 자주 연락하는 동료가 있어 회사 상황을 전해 듣는데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괜히 몸이 달았다.
내년도에 채용공고가 나면 먼저 연락을 주겠다는 선배의 연락도 받았다. 내가 일을 그런대로 잘하긴 했었구나 싶다가도 출퇴근 거리에 망설여졌다. 재취업을 할 때 제일 먼저 고려했던 것이 도보 출퇴근이었으니 지금의 장점이 압도적이긴 했다. 사실 별 차이 없음을 안다. 업무를 하는 데 있어 차별은 없다. 복지도 그렇게까지 엄청난 차이는 없었다. 완전히 동등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은 같았다. 내 마음이 문제였다. 그놈의 알량한 소속감이 나를 옭아매었다.
아직 정식으로 채용제의를 받은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조급했다. 다시 간다고 해서 정규직이 될 거란 보장이 없는 것도 안다. 어렵게 정규직으로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도 육아 앞에서는 포기하는 게 현실인데, 지금의 안온한 상태를 버리는 게 가당키나 할까. 계속 고민이 끝나지를 않는다.
시어머니에게 혹시나 이직을 하게 되어 내가 자가용으로 출퇴근해서 다니게 되면 어떨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도 나온 것도 없으니 그냥 지나가는 듯이 물어봤다. 단칼에 말도 안 된다는 호령이 떨어졌다. 애기 엄마가 어딜 멀리 가려고 하냐면서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더 이상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한 매몰찬 태도에 당황했다. 조건이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듣기도 전에 아기 엄마라서 안된다는 이유에 말문이 막혔다. 아무래도 시어머니라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