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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Nov 06. 2020

내 회식을 허락받아야 해?

워킹맘 32

맞벌이를 하고 있다. 남편도 회사에서 직책이 있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남편의 일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남편이 몇 번 설명을 해줬는데도 잘 모르겠다) 남편은 내 일을 뻔한 사무직으로 아는듯했다. 자세한 업무를 얘기해봤자 지루할 테니 퇴근 후에는 회사 얘기를 잘 안 했던 게 문제였을까. 남편은 내 일을 대단히 시시하고 별일 아닌 걸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게 물론 사실일 지라도) 일이 마냥 편하기만 한 것은 아닌데 서운할 때도 간혹 있었다.


내가 서포트한 작업이 성공적으로 끝나서 업무협의회 겸 회식을 하기로 했다. 퇴근 후에 밥을 먹고 들어가게 될 예정이니 남편에게 미리 스케줄을 알려줬다. 내가 남편의 회식을 당연하게 대하는 것처럼 남편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남편이 대뜸 짜증을 내는 것이 아닌가. 왜 퇴근 후까지 회사 사람을 만나 밥을 먹냐고 불만이었다. 남편은 퇴근 후의 삶을 중시하는 사람이지만, 본인의 가치관을 나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는가. 기분이 나빴다. 나도 내 일이 있고, 내 개인 일정과 외부 일정을 가질 수 있는 건데 남편의 뜻 때로 움직여야만 한다는 태도가 미웠다.


마음이 맞는 회사 동료와 퇴근 후  한잔 마시고 들어갈 수도 있는데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겨놓은 탓에 매번 칼퇴근하는 상황이라 나도 회식에 참가하고 싶었다. 워킹맘이라고 해서 매번 회식이며 업무추진에서 빠지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내 딴에도 미루고 미뤄 겨우 잡은 스케줄인데 남편의 날 선 반응을 보니 더 이상은 물러나고 싶지 않았다.


남편에게 날짜를 통보했다. 남편은 꼭 가야 하냐고 물었다. 당신네 팀 회식이라면 빠지겠냐고 쏘아붙이려다 참기로 했다. 서운했다. 내 일이 존중받지 못하고, 내가 동등하게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수입으로만 비교해서 내 직업이 그렇게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걸까? 일이 편해 보여서 무시하는 걸까? 같은 팀 직원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할까


워킹맘은 어디에도 마음 붙이기가 쉽지 않다.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온전히 존재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는 아이생각이고, 집에서는 출근을 걱정했다. 남편은 맞벌이 생활의 동반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슈퍼우먼을 기대했는지, 내 일은 별것도 아닌 일이라 얕잡아봤다. 내 회식을 왜 허락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보란 듯이 회식 다녀올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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