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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브랭 Nov 18. 2020

엄마의 달리기

워킹맘 34

6시 20분이면 어김없이 남편의 핸드폰 알람이 울린다. 아기는 그 소리에 깨어서 가볍게 칭얼거린다. 아기를 달래며 나도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6시 45분에 남편이 현관문을 나선다. 7시 20분까지 나도 출근 준비를 마친다. 7시 30분에 시어머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나는 인사하고 곧장 바로 나간다. 회사에 도착하면 7시 50분이다.




평상시와 다를 게 없었다. 7시 15분까지는.


7시 15분에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대로라면 이 시간에 전화하실 일이 없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전화를 받았다. 시어머니가 늦으신다고 했다. 왜 갑자기 오늘따라 가스불을 껐는지 안 껐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셨을까. 남편은 이미 출근을 했으니 시어머니가 무사히 도착할 때까지는 내가 기다려야 했다. 내가 엄마라서 돌발상황을 맞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종류의 당황스러움은 항상 내 몫이었다.


엄마이기 때문에 회사일을 소홀히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회사는 내 근태를 봐주지 않는다. 아이 핑계로 지각을 이해해 줄 리가 없다. 한두 번이야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아기 엄마는 채용하지 않아야겠다는 고용주의 확신이 더해질까 봐 불안하다. 남편의 출근시간이 나보다 빠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음을 알지만 그것도 불만이다. 아기 엄마가 된 이후에 내 직장 선택권은 집 근처로 제한되었다. 내 커리어를 위해 다른 지역의 오퍼를 받아도 출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주저하게 된다.


출산을 앞두고 퇴사를 했다. 임신으로 인한 퇴사, 출산으로 인한 퇴사가 당연시되는 업무환경에서 늘 불안했다. 아이를 낳고 온전히 내 몸을 추슬러야 하는 기간에도 재취업을 생각했다. 퇴사 바로 다음날 고용센터에서 구직급여 신청을 했다. 상담원은 대단히 사무적인 태도로 구직급여 신청을 받았다. 임신/출산 기간에는 구직급여 신청을 연기할 수 있었지만, 나는 당장이라도 재취업을 할 계획이었다. 조리원에서 온라인 구직을 계속했다. 구인 공고를 계속 들여다보고, 내가 출근 가능한 날을 계산했다. 마음에 드는 공고를 발견해도 지원할 수 없는 게 너무나 많았다. 출퇴근 거리를 생각해서 내가 취업 가능한 곳을 골라야만 했다.


구직공고를 보며 포지션이나, 경력, 급여 따위의 것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구직에서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직주근접이 가장 중요했다. 그중에서도 아이를 맡기고 출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이 지나고부터는 좀 더 적극적으로 구직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를 시어머니가 봐주기로 하면서 좀 더 구직에 선택지가 생기긴 했지만, 출퇴근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는 곳은 제외해야 했다. 워킹맘의 일상은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는 며느리는 여러모로 피곤하다. 오늘 아침에 늦는다고 전화하는 사람이 친정엄마였다면 짜증을 내면서 왜 늦냐고 있는 대로 성질을 냈을지도 모른다. 시터님이 늦는다고 했다면 순순히 넘어갔을 리가 없다. 월급에서 제하겠다고 으름장을 놨을지도 모른다. 시어머니에게는 입도 벙끗 못하는 데 다른 사람에게는 모진 말을 해댔을 것이다. 그나마 걸어서 출퇴근을 했기에 망정이지, 대중교통으로 출근했다면 영락없이 한 시간의 지각을 면치 못했으리라.


시어머니는 택시를 잡아타고 7시 40분에 도착했다. 바을 넘겨받은 계주 선수처럼 뛰기 시작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회사에 취업하길 천만다행이었다. 7시 55분에 회사에 도착했다. 평소에는 걸어서 다니는 곳을 뛰어왔으니 숨이 찼다. 숨을 고르며 생각했다. 오늘 아침 정신없이 달리기를 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시어머니도 나만큼이나 바쁘게 뛰어왔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를 낳고 여자의 시간은 단절된다. 사회에서 바쁘게 자기 일을 하던 사람도 출산이라는 엄청난 생물학적 변화에는 공평하다. 아이가 태어난 기쁨만큼, 몸의 변화도 급작스럽다. 그 와중에 신생아 육아가 바로 시작된. 나에게는 정말 운이 좋게도 육아를 도와주는 시어머니가 있었다. 출산한 지 딱 120일 되는 날 재취업에 성공했다. 대단히 운이 좋았다. 내가 취업했으니 전업맘들도 빨리 일하라는 자부심을 부리는 게 아니다. 내가 취업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여러 가지의 운이 겹쳐서야만 가능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왜 당연히 여자의 몫일까. 시어머니는 본인의 자식을 다 키워낸 후에도 돌봄 노동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했다. 엄마의 달리기의 끝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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