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업 7년 차 디자이너 출신 마케터의 스타트업 도전기
요즘 우리 회사의 가장 핫한 Argument 주제(?)인 개인의 업무량과 속도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리 사무실은 목표가 생기면 앞만 보고 달려가는 전형적인 단거리 선수 타입의 나와 여유를 가지고 길게 보고 목표까지 지치지 않고 완주해내는 마라토너 타입의 대표님이 함께하는 극과 극 오피스인데, 요즘 가장 잦은 논쟁거리는 나의 업무 속도와 양 에 관한 것이다.
얼마 전 회사 CI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던 하던 중 ( 참고로 우리 회사는 2인 기업이라.. 제너럴 of 제너럴리스트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 활용해서 업무를 하고 있다. ) 가벼운 접촉사고로 사무실을 며칠 출근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겨 업무가 일주일 가량 미뤄졌었는데, 그때 내가 얼마나 답답하고 마음이 불편했는지..
대표님의 애정 어린 등쌀에 못 이겨 물리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차마 마무리하지 못한 일 때문에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출근한 그날 일이 터졌다.
그 누구도 나에게 금주 내로 당장 CI가이드를 끝내라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CI가이드 제작을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붙잡고 있는 건 내가 나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업무 속도였고, 그렇게 나 스스로 정한 마감기한 때문에 대표님을 먼저 퇴근시키고 야근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하는 업무에 삘(?)을 받아 그분이 오셨는지 밤 12시가 넘어 업무가 끝이 났고 그렇게 30페이지가 넘는 CI 가이드를 완성했다.
중간중간 대표님의 걱정 어린 목소리로 전화가 왔었고, 저녁은 먹고 일은 하는지, 급한 게 아니면 일찍 퇴근하고 다음 주에 마저 하는 게 어떤지 몇 번이나 체크했었고, 나는 밀린 일을 처리하고 싶은 마음에 걱정 말라며 대표님의 연락을 끊기 바빴다.
참고로, 우리 대표님은 전형적인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냐는 구수한 시골청년 스타일로, 시간에 촉박하게 무리해가며 쫓기듯이 일하는걸 굉장히 싫어하시고, 싫어하는 이유는 명확하신 편이다. 그 이유는, 내가 쫓기듯이 일하면 효율이 전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 전 직장 선배였던 대표님은 누구보다 내 업무 스타일을 확실하게 알고 있고, 나의 컨디션과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늘 신경 써주는 고마운 사람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고 후 첫 출근날부터 야근을 한다고 하니 얼마나 마음이 불편했겠는가.
밤 12시가 지난 후 대표님께 결과물을 보내고 집으로 오는 길 통화를 하면서 진솔한 대표님의 마음을 듣게 되었는데, 둘 뿐인 회사에 직원이 혼자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하고 있는 상황에 어지간히 애가 쓰이셨던지, 나중에는 답답한 듯이 말씀하셨다.
대표님 : 아니, 이 시간까지 이렇게 일해주는 거 너무 고맙지만, 이러다 너 지칠까 봐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지 아니? 당장 마감기한이 있는 일도 아니고, 지금 당장 급한 것도 아닌데 좀 천천히 해도 되잖아? 몸도 불편하면서 무리를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나 : 일주일이나 CI가이드를 잡고 있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였고, 컨디션도 괜찮아요. 그리고 다음 주에도 새롭게 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어쩌고 저쩌고 ( 대충 나는 열심히 하고 싶었다는 말 그리고 다음 주에 해야 하는 업무들도 밀리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 )
( 친구이자 선배이자 대표이자 직원이라 서로 솔직하고 가릴 것 없이 대화하는 편)
대략 저런 대화의 내용으로 30분을 통화하다 결국 내가 눈물이 터졌다.
나는 내 역량이 가능한 만큼 너무 잘하고 싶었고, 선배이자 대표님에게 실망시키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내 내면의 너무 높은 기준이 결국 대표님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 혼자만 괜찮다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었다.
대표님과 나, 우리 둘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속도가 다르고, 스타일이 달랐다.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 내가 애정 하는 선배이자 대표님에게 늘 100점짜리 직원이고 싶었고, 점수를 깎아 먹고 싶지 않았다. 더 잘, 더더욱 잘, 200점, 300점.. 그리고 무엇보다 스타트업 창립멤버로 회사의 성공이라는 너무나 달콤한 목표 앞에 속도 컨트롤이 불가능했고, 대표님은 앞으로의 긴 장거리 레이스에서 내가 지쳐서 포기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게 중간중간 나를 케어하며 일을 진행해 나가고자 했기에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오는 것이었다. 결국엔 서로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에 이런 극단적인 속도감이 생긴 게 아닌가 한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엑셀레이터를 밟으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대표님은 그럴 때마다 나에게 브레이크를 걸어 줄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언젠가는 길 앞에 표지판과 과속 방지턱이 생기고,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가 조화롭게
나아가는 날이 올 거라 믿는다.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업무가 유기적이고, 수평적인 체계의 다름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다양한 속도를 안정적이고, 조화롭게 맞춰가는 과정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열심히 스타트업에서 일하고 있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엑셀레이터든, 브레이크든 당신이 원하는 속도로 달리기 전에, 당신이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의 속도를 한 번쯤 확인해보길 바란다. 누군가는 나의 속도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는지?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고 있는 당신을 걱정하지 않는지? 이 속도로 계속 달려가면 내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