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업 7년 차 디자이너 출신 마케터의 스타트업 도전기
오늘은 때로는 계획과는 다르게 쉬어 가야 할 때도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게 된
우리에게 생겼던 2주간의 휴식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제품 생산을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복잡한 모든 과정 속에서 나와 대표님은 끝없이 선택하고 찾아보고 기다려야 했다. 용기 샘플링과 단가 비교, 반려동물 의약외품 인증과 동시에 Vegan 제품으로 생산이 가능한 OEM 사를 찾아야 했고, 원하던 용기의 단가 문제로 인한 대체 용기를 찾아야 했으며, 우리 제품을 위한 제품 개발 의뢰서를 작성까지 모든 일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신없었던 일정들...)
익숙한 나도, 익숙지 않은 대표님도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었고, 완벽주의자 성향이 강한 나는 성분 하나하나, 함량 하나하나 모든 부분이 머릿속을 밤낮 할 것 없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조금이라도 업무 텐션이 느슨해지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새로운 일을 찾아 진행하기 바빴다. 우리 일이니까, 우리 회사니까 일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나는 가지고 있었고, 대표님 역시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당연히 있었기에 둘의 스파르타 업무 속도가 맞았던 거라 생각이 들었다.
평균 직장인들의 업무량과 속도를 3으로 봤을 때, 우리는 10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고, 그 텐션이 유지될 수 있게 달려오기 바빴던 일상이었다. 남들이 보면 미쳤다는 소리를 할 정도로 초기에는 퇴근시간 없이 업무를 마무리하기 위해 새벽까지 남아서 일을 했었고 (그래서 둘이 싸우기도 많이 싸웠었다.) 미팅만 다녀오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휴식을 미뤄 왔었다.
제품 생산을 위한 1차 미팅 예약을 3일 앞둔 어느 날 거래처 이사님께 연락을 한통 받았다.
" 제가 미팅 당일 오후에 백신 접종인걸 깜빡했습니다, 오전 중에 미팅이 가능할까요?"
" 저희가 오전 미팅은 어려워 차주 목요일에 뵙죠!"
미팅을 하기 위해서 대구에서 인천까지 갔어야 했던 우리는 오전 미팅이 어려울 거라 판단하고 백신 접종이라는 최우선 순위를 배려해 미팅 일정을 일주일 미루게 되었다.
아마, 여기서부터 우리의 휴식이 계획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렇게 미팅 당일 아침 9시에 출발하자던 대표님을 말려 8시에 출발해서 인천 도착을 30분 정도 남겼을 때
"우리 천천히 가자 시간 좀 남았네?"
"어어 그러자"
"쾅!!!!!!"
유리파편이 발에 튀는 느낌을 받은 나는 우리가 앞차를 박은 줄 알고 놀란 채로 앞을 봤으나 앞 유리가 너무 멀쩡한 게 아닌가, 설마설마하고 뒤를 돌아보니 차 뒤편 유리가 통으로 사라져 있는 어마 무시한 광경을 마주했다.
가만히 서있던 우리 차를 25톤 덤프트럭이 와서 고스란히 박아주셨다(...)
이제 무슨 하늘의 날벼락인가. 미팅을 1시간 30분 남겨두고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사고라니!
우리 차 앞에도 25톤 화물차가 있었는데 천만다행으로 출장 전날 타이어 4개를 모두 새 걸로 교체한 덕분에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만일 앞으로 밀려 대형사고로 이어졌을 거라 생각하니 아찔했다.
사고가 나자마자 미팅에 늦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몸이 아픈 건 둘째고 사고처리 하나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교통사고가 처음인 대표님을 진정시키고 꼭 이럴 때만 이성적으로 착착 돌아가는 ENTP 인 교통사고 유경험자인 내가 사고처리를 맞아서 사고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사고 처리 후 대표님 멘털이 돌아왔을 때 내 멘털이 나간 게 문제였지만, 정말 환상의 짝꿍 아니겠는가)
그렇게 시원해진(?) 차를 타고 인천 시내를 달리며 도착한 미팅 장소에서 무슨 정신으로 미팅했을까 싶지만, 환상의 짝꿍인 우리는 역시나 프로페셔널하게 미팅을 마무리했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이 소식을 들은 주변 친구들이 참 독하고 대단하다는 소리를 했었다.
그렇게 화려했던 첫 미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열혈 운명론자인 대표님과 운명론 초심자인 나는 살다 살다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면서 다 잘되기 위해 이런 액댐을 했다고 생각하며 웃으며 다음날 병원을 가자는 약속을 했고, 우리 회사 다이내믹하고 스펙터클 해서 재밌다며 오늘도 하나의 추억이 쌓여간다며 즐겁게 내려왔다.
사고 다음날 병원에 나란히 온 우리는 최소 2주 간의 병원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계획에 없던 일주일간의 입원 휴식기가 생겨버렸다.
정말 온 우주가 우리가 쉬길 바라는 것처럼 미팅 일정들이 바뀌고, 타이어를 교체하고, 출발 시간을 앞당기고, 안 하던 운전 스타일로 운전을 한 이상한 출장이었지만.
운명론자인 우리는, 우리에게 쉬라고 싸인을 보내오는 거라 생각하며 일주일 동안 병원에서 충분히 회복하기로 했다.
병원 입원 3일째, 나는 병원 침대에 앉아 잘 쉬는 방법과 갑작스러운 휴식기를 나이스 하게 보내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놀아본 놈이 잘 논다는 말이 있듯이, 휴식도 쉬어본 사람이 잘 쉬는 거 같다.
무슨 일이든 막상 멍석을 깔아주면 잘 못하듯이, 막상 쉴 기회가 오니 뭐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입원이 하루하루 지날수록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 침대 위 생활이 지루하기만 하던 찰나에
입원 3일째 되던 날 대표님 입에서 퇴원하고 싶다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늦잠도 느지막이 자보고, 1인실에서 혼자 여유롭게 명상도 해보고, 게임도 했다가 별안간 책도 읽고, 글도 쓰며 나만의 방법으로 쉬어 보았다. 그러면서 했던 생각은 휴식과 일의 balance가 잘 맞는 사람이 되어야 앞으로도 잘 달려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1주일의 짧은 병원에서의 휴식이 앞으로의 나아갈 원동력이 되어줄 거란 생각으로 더할 나위 없이 편하게 쉬고 회복하며 방전된 나를 충전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충분한 휴식이 새로운 원동력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오늘도 쉬는 것을 잊은 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일을 한다는 것 그 안에 충분한 휴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한 번의 기회가 간절하고, 한 번의 실수가 큰 리스크로 다가오는 스타트업에 일한다는 건,
나 스스로에게 보다 엄격하고 단호하게 대하며, 쉰다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가지기 쉬운 환경이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오늘만큼은 일잘러 가 되는 법 보다 잘 놀러 가 되는 법을 찾아보고 나에게 충분한 휴식을 선물하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