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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Apr 04. 2023

R. I. P. 사카모토 류이치

가족도 지인도 아닌 유명인의 죽음이 이렇게까지 나를 가라앉게 한 적이 있었나 싶다. 내가 16살 때 처음 들은 사카모토 류이치의 음악들은 그날부터 나에게 오래 간직하고픈 영롱한 보석 같은 것이었다. 그의 음악은 하나같이 언제 들어도 좋았기에 꽤 오랜 시간동안 나의 순간순간마다 위로가 되어주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처음 들은 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일관되게 사카모토 류이치라고 답할 것이다.


불과 지난 주말에도 스포티파이로 사카모토 류이치가 직접 선곡했다는 곡들을 들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세상이 참 좋아졌음을 느꼈다. 달라진 세상에 맞춰 이렇게 청자들과 소통하는게 가능하다니. 그리고 당장 이번 달 7일과 22일에 프랑스와 일본에서 예정이었던 공연 스케줄을 보며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모습에 건강하신 줄 알았고, 또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여건이 되신다면 우리나라에도 방문해주셨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팔로우 중인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서 8분 전에 올라왔다는 피드로 그의 사망소식을 갑자기 접하게 되었다.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피드가 올라온 날짜보다 며칠 전에 이미 고인이 되셨다는 소식이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밤에 거실 소파에 꽤 오래 멍하니 누워있었다. 2017년도에 그가 암진단을 받은 이후에 발매했던 <async> 음반의 첫 번째 트랙인 <andata>를 처음 들었을 때가 떠올랐다.


<andata>는 처음에 피아노로 쓸쓸히 멜로디를 읊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멜로디를 다시 오르간으로 반복하여 연주한다. 본격적으로 레퀴엠, 죽음을 연상시키는 구절이다. 그리고 주파수를 맞추는 듯한 잡음이 들리지만, 메인 멜로디는 꿋꿋이 이어진다. 그의 사후에 남을, 그의 음악의 존재에 대한 염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혼곡을 스스로 만드는 심정은 어떤 것일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몇 년 전 <async>가 나온 날 밤에 조용히 혼자 들었을 때, 그 노래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블랙 스완송이 될 것 같아 많이 먹먹했었다. 그 이전 해인 2016년에 발매된 데이비드 보위의 <Blackstar> 앨범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사카모토 류이치와 <전장의 크리스마스> 영화에 같이 출연한 인연이 있다. <Blackstar> 앨범 발매 후 데이비드 보위는 이틀 뒤에 사망하여 실제로 앨범은 그의 스완송이 되었다. 불길한 예감을 뒤로 하고 팬으로서 그가 건강하게 더 살아주시고 음악을 계속 들려주시기를 바랬다.




사카모토 류이치의 사망소식을 보고 그가 젊었을 때 활동했던 Yellow Magic Ochestra 시절 영상부터 유튜브에서 다시 봤다. 재작년 코로나로 창살 없는 감옥 같은 생활을 하던 그때, 삶의 낙이 없어서 도쿄 올림픽 개막식을 꽤나 기대했었다. 그리고 존 레논의 <Imagine> 이 나오는 장면을 황당한 심정으로 보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 YMO의 <Technopolis>에 나오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나지막한 음성으로 부른 코러스가 스쳤다. 도키오. 도키오. 1979년에 나온 노래지만 2020년대인 지금 들어도 별 위화감이 없을 노래다. 차라리 이게 나왔어야 했는데. 개막식이 끝나는 순간까지 나는 궁시렁거렸다.


그러다가 예전에 두어 번 보았던 <Tokyo Melody: A Film about Ryuichi Sakamoto> 영화를 다시 보다가 잠이 들었다. 1985년에 나온 사카모토 류이치에 대한 다큐멘터리 식의 영화다. 영화 중간중간 청년이었던 사카모토 류이치의 인터뷰가 나온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도 돋보였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견해를 젊은 나이에 소신 있게 말하는 모습은 더 인상이 깊었다.


예술은 역시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강직한 소신에서 나오는 그의 감수성과 예민함이 그의 예술에 대한 근원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제 낮부터 사카모토 류이치 앨범 중에서 좋아하는 곡들을 계속 듣고 있다. 내 마음에 위안이 필요하던 순간에 항상 함께였던 그 음악들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 <Bibo no Aozora>의 가사를 곱씹고 있는데 마침 집 앞에 피어있던 붉은 개양귀비 꽃과 마주치며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던 기억. 눈발이 날리던 어느 해의 12월 <Merry Christmas Mr. Lawrence>를 들었던 기억. <A flower is a not flower>를 듣고 며칠을 헤어 나오지 못해 백거이의 한시 <花非花>를 찾아보았던 기억. <The Sheltering Sky>를 듣고 있었던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았던 어느 새벽밤. 등등.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사랑했기에, 나와 비슷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무미건조한 흑백영화 같았던 순간이 그의 음악과 함께 영롱하게 물들여진 기억들. 이렇게 그의 음악을 다시 들으며 그 순간을 다시 꺼내본다. 그의 음악을 다시 듣는 것은 그를 추모할 수 있는 방법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이다. 투병으로 오래 고생하셨기에 아픔이 없을 그곳에서 영원히 평안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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