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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아내가 부재중일 때 일어나는 일.

토요일, 아내는 부재중입니다

토요일 주말,

 쓰기 모임을 위해 남편에게 아이들을 부탁했다. 물론 아이들이 훌쩍 큰 사춘기 나이라 손발이 되어줘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루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모임 시간이 3시간, 왕복 이동시간까지 합하면 6~7시간이다. 주말에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아내는 부재중' 쉬운 일이 아니다.


걱정 반 믿음 반, 반반의 마음으로 서울을 향했다. 코로나가 두려운 아줌마인지라 대중교통보다 운전대를 잡았다. 목적지가 강남이지만 서울 운전은 익숙하다. 요즘은 2.5단계라 비교적 교통량이 적어서인지 토요일 서울 입성은 양호했다.


 쓰기 모임을 마치자마자 귀여운 토끼들과 남편의 하루가 궁금하여 전화기부터 들었다.

"여보, 오늘 잘 지냈어요? 별일 없었고?"

"응"

"배고프죠? 얼른 갈게요"

"아니, 천천히 와요. 애들이랑 튀김 해 먹었어." 이어지는 말은 애들도 잘 있으니 운전 조심하고 잘 오란다. 내 것도 남겨뒀으니 배고프면 집에 와서 튀김 먹으라고.


"튀김가루 어디 있냐?"

"기름은 어디 있냐?"

"튀김기 써도 되느냐?"

카톡에 불이 나더니 진짜 튀김을 해 먹은 것이다.


내가 놀라는 건 튀김기라는 말에 있다. 몇 번 튀김을 하고는 사용했던 기름을 비우지 않은 상태다. 처리가 힘들어서 주방 한쪽에 먼지 쌓인 채로 방치해 두었는데, 그걸 씻어 썼단다.


'에효 튀김기 비우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을 미뤘다고 원망했을텐데...'

'어떻게 튀김을 했?'


운전하며 머릿속이 온갖 단어들로 뒤죽박죽 엉겨 붙었다.


집에 도착하니 8시, 배가 꼬르륵 요동친다.

가방을 챙겨 집에 들어가니 남편은 싱크대에서 감자를 열심히 깎고 있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애들은요?"

"응, 각자 방에 있나 봐"

"당신 뭐해요?"

"감자 깎고 있어요"

"아니, 감자를 왜 그렇게 많이 깎아요?"

"못 먹게 될까 봐 감자조림이나 해 먹자고"

난 입이 뜨악~ 벌어지고 말았다. 감자조림을 한다면서 감자를 한솥 가득 깎아서 썰어놓았다. 거기다가 어묵까지 넣어서 조림을 하자고 했다.


배가 고픈 나는 일단 튀김부터 먹어야 했다. 산처럼 수북한 감자에 놀라 튀김을 깜빡했는데, 튀김도 채반에 한가득이다. 전화통화 때 애들이랑 먹었다는 말을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금 물었다.

"애들도 먹어야죠, 양이 많네"

"애들은 아까 먹었어."

"그럼 이게 남은 거예요?"

"남은 거지"

우와~ 대체 튀김을 얼마나 한 건지 먹고도 한 광주리다. 무슨 오병이어의 기적도 아니고 남은 튀김이 한 광주리 라니? 먹을 만큼 덜어내고 사진을 찰칵 찍었다. 남편과 아이들이 만들었다고 하니 눈에만 담기에는 아까웠다.

남편과 아이들이 실컷 먹고 남은 한 광주리 튀김

제법 모양이 먹음직했다. '과연 맛도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며 한입 베어 물었다.


"바사삭"

"엇, 맛있다"

다시 한입 먹으며, 두 번 튀겼는지 남편에게 물었다. 아니란다.

한번 튀겼을 뿐인데 시간이 지나도 바삭할 수 있는지 내심 놀랐다.


"여보, 튀김 진짜 잘했다"

"애들이랑 같이 했어. 애들도 잘하더라고"(참고로 우리는 아이들과 요리를 자주 한다.)

"그래도 이렇게 바삭하게 만들기 힘든데..."

진짜 맛있다며 난 튀김을 두 접시나 먹었다. 고구마, 당근, 감자 여러 가지다. 제일 맛있는 건 의외의 당근 튀김이었다. 단맛도 나는 것이 호박인 줄 알았다.


내 칭찬에도 남편은 무덤덤하게 감자를 썰고 있었다. 얄밉게도 애들과도 잘 지냈고, 튀김도 잘 만들었다. 이런 날 애들과도 티격태격도 하고, 튀김 하기 힘들다며 얼굴 여기저기 밀가루 투성이 울상이 되어야 하는 게 일반적인 드라마 아닌가? 그런데 여유롭게 감자까지 산더미처럼 깎고 있다니 도대체 뭔 일인가?


산더미처럼 쌓인 감자는 세 통으로 나눠 담아놓았다. 한통은 다음날 아침 내가 감자 어묵조림(반찬가게만큼이나 많이)을 만들었고, 또 감자 한통은 남편이 카레를 만들었다. 스파게티면과 밥을 함께 얹었는데 제법 맛있었다.  

내가 만든 감자어묵볶음 / 남편이 만든 카레스파게티

 

슬쩍 질투가 났다.


"당신, 요리 너무 잘하는 거 아니에요?"

"그동안 당신이 잘하나 지켜봤는데, 그냥 뒀다가는 밑반찬도 없고 굶어 죽겠어."

에효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남편이 주방을 차지하더니 반란이 일어난 건가?


사실 나는 밑반찬을 잘 안 다. 요즘은 아이들도 삼시세끼 집에서 먹으니 밑반찬을 해놓아도 한 번 먹고 다. 바로 만들어서 순삭 할 요리나, 탕(국), 찜 종류를 주로 준비한다. 억울하긴 하지만 뭐...  남편 먹을 밑반찬이 없었으니 두말하면 핑계다.


이럴  납작 엎드려 포복이 살길이다.

"여보~ 당신 지~인짜 요리 잘한다아~" 나는 최대한 코를 벌름거리며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아이들과 튀김 만들며 아내의 부재를 잘 채워 준 남편, 역시 남편이 최고다!!


그나저나 아직 감자 한통이 냉장고에 있다. 남은 감자는 뭘 해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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