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미나리는 어떻게 먹어?
요즘 장안의 화제는 단연코 영화 '미나리'다. 연기파 배우 윤여정의 입담에 전 세계가 윤여정(순자) 사랑을 외치고 있다. 영화 속에서 순자는 미국에 있는 딸에게 가면서 미나리 씨앗을 가져간다. 그곳에 뿌린 미나리 씨앗은 잘 자라 미나리 밭을 이뤘다. 영화 속이라 그렇지 아마도 입국심사 때 씨앗은 반입이 안됐을 텐데... 어찌 되었건 반입이 안되었다면 영화는 완성되지 않을 스토리니 패스하자.
(덧. 개인적으로 캐나다 입국 때 검역이 워낙 엄격해서 갖고 있던 견과류를 마구마구 먹었던 적이 있었답니다. 실제 관광버스에 함께 탄 2명의 멕시코에서 온 유학생은 입국이 거절되어 캐나다를 못 건너갔지요. 물론 씨앗 때문은 아니지만 국경에서 한참을 대기한 경험이 있어요. 그만큼 엄격하더라고요. 검색해 보니 씨앗 반입은 흙이 붙어있지 않으면 가능하다고 하네요:)
영화 속에서도 나오지만 약간의 습기만 있다면 미나리는 어디서나 잘 자란다. 잡초처럼 말이다. 정말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다. 미나리가 영화의 흥행을 타고 매출까지 크게 올랐다니 농가소득에 개이득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윤여정의 수상 소식과 함께 미나리 효능까지 게시했다고 한다.(아직 영화를 보진 못했지만 바쁜 일정이 끝나면 꼭 봐야겠다:)
사실 미나리는 향이 짙다 못해 싫어하는 사람은 고약하다고 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그 짙은 향이 좋다. 어릴 때, 미나리를 집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친정엄마는 나물로도 무쳐주고, 시금치 대신 김밥에도 미나리를 넣어줬다.
미나리는 해열 효과가 뛰어나다. 일사병, 폐렴, 유행성 독감에도 효험이 있다고 하니 면역력 기르는 데는 정말 좋은 것 같다. 코로나 19도 독감의 일종이니 미나리를 많이 먹어야겠구나!! 그 밖에도 혈압을 낮춰주고, 월경불순, 간경화, 독소 분해,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지난주 딸아이의 생일이 있었다. 집에서 조촐히 파티라도 해야 하나 싶어 딸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사춘기 아이를 섭섭하게 하면 안 되었기에 잔뜩 긴장하며 말이다.
엄마: 딸, 생일날 맛있는 거 뭐해줄까?
딸: 느끼하지 않은 거. 엄마, 스파게티 그런 거 절대 하지 마. 요즘 느끼한 거는 안 먹고 싶네.
엄마: 그럼 뭐할까? 등갈비? 자장면? 짬뽕은 어때?
나는 아이의 표정을 살피며 그간 맛있게 먹었던 메뉴들을 하나씩 나열하기 시작했다. 딸아이의 반응은 느끼하다는 딱 그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때 마침 반짝하며 나의 뇌리에 불이 비쳤다.
엄마: 딸, 미나리 꼬마 김밥 어때? 우리 딸 미나리 김밥 좋아하잖아. 마침 미나리가 손바닥만 하게 올라왔어.
딸: 음 좋아. 미나리 김밥, 그리고 소시지 넣은 떡볶음도.
아들: 엄마, 마약 소스도 부탁해.
옆에서 듣던 아들이 한마디 거든다. 겨자로 만든 마약 소스는 아들이 좋아한다. 딸아이의 생일파티 메뉴는 미나리 김밥으로 정했다. 소지지 넣은 떡볶음과, 초콜릿 케이크와 함께 말이다.
전원주택으로 이사 온 다음 해 봄이었다. 딸아이의 같은 반 엄마가 텃밭에 미나리가 지천이라며 미나리 뜯으러 오라 했다. 난 어릴 적 엄마가 해주던 미나리 김밥이 떠올라 가겠다고 약속했다.
아침에 아이들 학교에 들여보내고 미나리를 뜯으러 갔다. 텃밭에는 정말 미나리 밭이라고 할만큼 지천이 미나리였다. 미나리는 습한 곳에서 잘 자란다. 그 텃밭도 물기가 축축했고, 미나리는 누군가 키우는 것 마냥 잘 자라 있었다. 얼마나 잘 자라는지 뜯어도 뜯어도 또 난다. 주말에 친정언니가 한가득 뜯어 갔는데도 아직 많으니 마음껏 뜯으라 했다. 나는 먹이를 찾아 헤매다 야생 먹이를 찾은 치타처럼 기뻐 날뛰며 미나리를 뜯기 시작했다. 정말 봉지 가득가득 뜯고 또 뜯었다.
"언니, 미나리를 많이 뜯는 건 상관없는데 이 많은걸 어떻게 먹으려고? 먹을 만큼만 뜯어요. 남아서 버리면 아까우니까"
"으응 미나리 김밥 해 먹으려고. 미나리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데, 향이 정말 끝내주거든."
봉지 가득 담은 미나리가 밖으로 비집고 나올라 꾹꾹 눌러가며 미나리 수확에 열중했다.
'내게 다 계획이 있거든~ㅋㅋ'
뜯어 온 미나리를 깨끗이 씻어 삶았다. 워낙 많은 양이라 기름, 깨소금에 조물조물 무쳐도 다 먹지 못할 양이었다. 나는 단무지, 햄, 당근, 계란지단, 우엉, 미나리를 넣고 옆구리 터질세라 꾹꾹 눌러가며 김밥을 쌌고 찬합에 차곡차곡 담았다. 뚜껑을 덮기 전 깨를 솔솔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코를 김밥 가까이 대고 킁킁거려본다. 고소한 들기름 향과 미나리 향이 어우러져 다른 재료들은 마치 찌그러져 있는 듯이 보일 정도로 미나리의 찐 초록은 빛이 났다.
음료수와 종이컵, 나무젓가락을 챙겨 학교로 갔다. 운동장에는 벌써 하교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고, 엄마들은 모여서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우린 이 시간을 즐긴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학교에 있었음에도 헤어지기 아쉬워했고, 운동장에서 더 놀고 싶어 했다. 엄마들은 하교를 하러 온 건지, 수다 친구가 고팠던 건지 재잘재잘 이야기 꽃은 멈출 줄 모른다. 코로나 19 이전의 학교 운동장 풍경이다. 이곳은 시골 숲 속 학교라 어느 학년 상관없이 모두가 스스럼없는 친구다.
운동장에 있는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고, 주섬주섬 미나리 김밥을 꺼내놓았다. 운동장에서 뛰어 노느라 허기진 아이들의 입에 미나리 김밥을 하나씩 넣어주었다. 노느라 몰랐던 건지, 김밥을 보니 배가 고팠던 건지 아이들은 김밥을 폭풍 흡입하며 맛있게도 먹었다. 신기한 건 미나리를 안 먹는다는 아이가 있었는데 웬걸?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신기하다고 했다. 그날의 향긋한 미나리의 향은 작은 숲 속 학교 운동장 가득 피어올랐다. 그 후 미나리를 먹지 않는다던 그 아이는 나를 보면 미나리 김밥을 떠올려 주었다. 그때의 추억 때문인지, 딸아이는 미나리 김밥을 좋아한다. 딸아이의 생일 즈음이면 미나리를 첫 수확 할 때가 된 거다. 딱 요맘때 막 올라온 미나리 순이 20cm쯤 자라, 연하면서 향도 좋다.
데이빗, 미나리로 김밥 만들어 먹자
미나리 김밥을 어떻게 만드냐고요?
간단하다. 시금치나 오이 대신 미나리를 넣으면 된다. 그럼 함께 만들어볼까요? 미나리 꼬마김밥 기준이므로 속재료의 굵기는 4~5mm 정도, 길이는 김밥김의 1/4등분 길이로 맞추면 된다.
미나리를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소금 한 숟가락 넣고 데친다. 굵기마다 데치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니 잎을 살짝 비벼보고 질기지 않으면 꺼내고, 찬물에 씻어 물기를 뺀 후 깨소금, 들기름(또는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달걀은 풀어서 지단을 만들고 김의 1/4 길이로 자른다.
프랑크 소시지는 가늘게 썰어 볶는다.
단무지도 길이에 맞춰 자른다.
우엉, 당근, 맛살 등 취향에 맞게 재료를 준비한다.
고슬고슬하게 지은 밥을 넓은 볼에 떠서 들기름(또는 참기름), 소금, 깨를 넣고 살살 비벼둔다.
1/4로 자른 김을 놓고 밥을 한 큰 술 올려 펼치고 그위에 재료들을 놓고 말아 준다.
개인 앞접시를 준비하여, 각자 하나씩 싸서 먹는다. 각자 싸서 먹을 경우 가족간의 대화도 풍부하게 나눌 수 있고, 김밥을 준비하는 손길의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미나리는 이렇게
잡초처럼 아무데서나 막 자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