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고 싶었던 내가
지난 1년간 한 일
여섯 번의 원고 투고!
책을 쓰고 싶었던 내가 지난 1년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어릴 적 책을 너무 좋아해서 부모님 잠든 사이 이불속을 몰래 빠져나와 주방에서 백열등을 켜고 책을 읽었던 소녀는 가슴속 한편에 책에 대한 사랑이 움트고 있었다. 오랜 인생의 경험이 쌓이자, 이제 더 이상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출간의 꿈을 이루기 위해 출간 기획서 작성부터 꼼꼼히 배워보고 싶었다. 그렇게 책 쓰기 특강을 수강하고 작성한 출간 기획서를 처음 투고하던 날이 2020년 2월 6일이다.
남편의 예술적 본능을 알아본 나는 그 끼를 마음껏 펼치게 해주고 싶었다. 직장인이었던 남편의 이야기를 에세이로 담담히 그려낼 목적이었는데, 운 좋게도 출판사에서 러브콜이 왔다. 담당자와 미팅도 하고 출간일, 방향성을 논하며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에 열중했다. 이야기의 끝은 남편이 퇴사하고 자신의 꿈을 찾아간다는 이야기다.
참 멋진 이야기지만, 환상만을 가지고 쓴 것은 아니다. 남편이 꿈을 펼쳐 날아오르는 것은 나의 진심이다. 내 진심을 알아준 출판사가 있어서 참 감사했고, 처음 출판사에 문을 두드린 것이 열매를 맺는다는 생각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했다.
원고의 방향성을 놓고 출판사와 타진하던 것이 2020년 3월이다.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상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던... 바이러스의 공포... 코로나 19.
자영업자들은 아연실색 무너졌고, 세상 부러운 건 월급쟁이다. 예술가들은 다시금 졸졸 굶어야 했고, 계획한 공연은 연일 취소 행진을 이어갔다. 직장인 연극을 준비하던 남편의 경우도 연극 공연은 기약 없이 연기가 되거나 취소됐다.
그 누구랄 것도 없이 월급 밀리지 않는 곳이라면 온몸으로 버텨내야 했고, 퇴사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베짱이 기타 치는 소리에 불과했다. 출간을 해도 책이 팔리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이런 상황에 출판사가 팔리지 않는 책을 내줄리가 없었다. 그대로 출판사와의 계약은 흐지부지 종지부를 찍었고, 남편의 퇴사 이야기도 더 이상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실망으로 얼룩진 나와 다르게 남편은 책임감 하나만으로도 직장을 잘 다닌다. 결국, 어깨에 얹어진 처자식이라는 무게 때문이다.
로또 인생을 바라지 않는 이런 남편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강의도 쉬는 판에 방구석에서 하릴없이 시간만 보낼 수는 없었다. 어디든 글 쓸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문을 두드린 곳이 브런치다. 2020년 4월 16일 브런치 합격통보를 받고 글 쓰는 일과 출판 기획서 만드는 일을 미친 듯이 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공모는 가리지 않고 도전했지만 생각보다 그 벽은 높았다.
글 쓰는 동안 콘셉트를 정하고 만든 기획서만 6편(첫 번째 포함). 매번 다른 콘셉트의 주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의 툴을 만들어갔다.
2020년 2월 6일 1차 원고 투고
2021년 2월 6일 6차 원고 투고(운명처럼 날짜가 같다는 걸 정리하며 알았다)
꼬박 1년 동안 수백 곳에 내 원고를 보냈다. 아니 1차에서 6차까지 수천 곳이다. 처음 원고 반려 메일을 받는 것은 몸에 생채기가 난 것처럼 아팠다. 아니 몸이 잘려 나간 것 같은 아픔이었다. 그 아픔도 1차, 2차.... 6차에 다다르다 보니 상처가 나도 그냥 쓰윽 문지르고 만다. 오히려 반려 메일 보내주는 곳이 있음을 감사해하며 감사인사를 답장으로 보내기도 했다.
5차와 6차는 감이 좋았다. 자비 출판사 여러 곳에서 의사를 타진하는 메일이 심심치 않게 왔다. 하지만 나는 기다렸다. 내 실력을 검증하고 싶었고, 출판사들의 욕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오로지 내 글에 투자하고자 하는 기획 출판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얻은 것은
자비 출판사에서 보내주는 원고 평은 전문가의 객관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었고 내가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알게 되자 고쳐 나가며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콘셉트를 정하고 기획서를 써 내려가는 것이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질 정도가 되었다.
브런치에서는 꾸준히 글쓰는 연습을 했다.
원고 평을 본 남편은 "이제 거의 다 왔다. 조금만 힘내라"라는 말로 용기를 주었다. 5차 투고 후 선택지 없이 시간이 흘렀지만 실망은 잠시, 곧이어 자녀와의 경제 실천 경험을 담은 6차 원고도 투고했다. 토요일 오후... 점심도 거르고 막판 수정을 거치며 미련 없이 출간 기획서를 출판사 메일로 보냈다.
이전과 달리 반응이 30분 만에 바로 왔다. 하지만 자비 출판사였다. 기획서를 다시금 살펴보며 덤덤히 주말을 보냈다. 아이들과 치킨을 만들어 먹으며 오랜만의 여유 시간을 가졌다.
월요일 아침,
원고 투고 후 2일이 지났다. 아이들과 병원을 가는 길이었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세요? 작가님이 보내주신 원고 투고를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출판사 대표 ***입니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지만 자비출판이니, 돈을 투자하면 책을 내주겠다느니 하는 일도 많기에 감흥 없이 전화를 받았다. 이어 출판사 대표는 자회사는 어떤 곳인지, 인세 지급방식은 어떤지 설명했고 내 원고의 배경이 자사와 가장 잘 어울린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울러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많이 올 것이라며 출판 미팅에 대한 조언까지 해주며 명함을 보내겠다고 했다.
열심히 얘기는 오갔지만 계약에 대한 얘기는 없었기에 직접적으로 질문했다.
"대표님, 그럼 출간 제안은 아니신가요?"
"아니요, 이렇게 대표가 전화를 했다는 거는 작가님께 프러포즈하는 겁니다"라고 했다. 이어 자사가 출판한 책은 어떤지 찾아보고 연락 달라고 말하며 통화는 종료했다.
전화를 끊고 난 후,
난 흥분하기 시작했다.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렸고, 남편도 멋지다며 기뻐했다. 이후 다른 출판사에서도 출간 기획서 반려 메일과 출간 제안 메일이 오기 시작했다.
'아, 이 얼마나 기다리던 러브레터인가?'
평생 꿈꾸던 저자의 길에 한발 내딛는 순간이다.
출판사의 프러포즈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어떤 출판사에서는 계약서를 바로 보내며 사인만 해서 보내라고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정성을 가득 담은 러브레터로 출간 제안 메일이 오기도 했다. 이 중에서 내가 원하는 출판사를 골라야 했다. 이 또한 상상도 하지 못한 순간이다. 행복한 고민이라며 지인은 부러워했지만, 선택과 거절을 결정하는 일이 쉬운 건 아니었다.
몇 날 며칠 고심 끝에 내 이야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경제 쪽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체결했다. 출간 계약 체결의 중요 부분을 차지한 것 중 또 하나는 1쇄 찍을 때마다 책이 팔리는 부수 상관없이 인세를 선인세로 지급한다는 것이다. '와우~ 이런 놀라운 계약도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우수'가 2일 남은 날,
출판사와의 미팅 전 목사님이 축복기도를 해주셨다. 좋은 책이 되길, 선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길 말이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듯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출판사를 향해 달려가는 내내 쏟아지는 흰 눈을 와이퍼로 쓰다듬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마치 그동안 글로 새운 밤을 위로해 주는 듯했다.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열리는구나!'
'코로나 19로 방구석 글쓰기가 헛되지 않아 참 다행이다.'
책을 출판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는 과정과 같다고 했다.
책을 자녀 돌보듯이
애정으로 키워야 하는 것이
출판사와 작가의 역할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