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나는 오늘도 땅에 투자했다!

흙을 가꾸는 사람

진정한 정원가란
꽃을 가꾸는 사람이 아니라,
흙을 가꾸는 사람이다.
[정원가의 열두 달_카펠 차페크]

# 전원 주택살이 6년 차의 땅 투자는 무엇일까?

# 땅에 진심을 담다.

# 텃밭가의 8월


주중에 내내 비가 오고, 토요일 반짝 날이 좋았다.

이런 날을 놓칠세라, 김장을 위해 사둔 배추 모종을 심어야 한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쓰고 장화를 신고 준비를 단단히 한다. 누가 보면 밭이 참으로 드넓은지 알겠지만, 고작해야 10 평 짓이다. 그게 어디냐, 손바닥만큼 작은 땅이지만 있을 건 다 있다.


봄에는 쌈채류, 당귀, 부지깽이, 머위, 곤드레, 명이, 부추, 딸기, 쪽파, 앵두, 매실, 보리수, 미나리, 민들레, 양파, 마늘, 고수, 두릅, 엄나무, 돌나물, 참나물

여름에는 고추,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 깻잎, 열무, 대파

가을에는 단호박, 배추, 쌈채류, 도라지, 당근, 총각무, 갓, 무, 감


나열해 보니 참 많기도 하다. 1년 내내 우리 가족에게 쏠쏠하게 먹거리를 제공하기에 나는 오늘도 땅에 투자한다. 텃밭 농사를 위해 땅을 준비할 때 늘 아이들과 함께다. 어릴 땐 서로 하겠다고 난리 더니, 이젠 제법 컸다고 "텃밭 정리 좀 할까요?" 정중히 부탁해야 한다. 치사하지만 뭐, 같이 먹을 건데 이 정도 예의면 최고 엄마 아닌가.


남편은 땅을 파거나, 무거운 것을 옮기는 역할을 하고, 큰아이와 나는 비닐을 씌운다. 둘째 아이는 모종을 비닐 위에 가지런히 놓는다. 그러다가 비닐 씌우는 일이 재밌어 보이면 자기도 해 보겠다고 한쪽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을 씌우기도 하고, 배추 심는 게 재밌어 보이면 배추를 심겠다고 어느새 달려와 모종삽을 들고 애쓴다.

배추 간격은 배춧잎이 손을 뻗더라도 바람길 잘 들도록 사이를 두고 심어야 한다.

이랑에 비닐 씌우고, 배추를 심는다.

가을에 수확할 농작물을 기대하며 온 가족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텃밭 이랑에 잡초도 뽑고, 퇴비도 주고, 비닐도 씌우고 훌쩍 자란 고추와 가지, 토마토는 열매를 잘 맺으라고 가지를 깨끗하게 전지해 준다. 이제 막 싱싱하게 올라온 쪽파는 더 굵게 자라도록 흙을 돋우어 준다.

나는 쪽파!

처음 텃밭을 가꿀 때는 땅에 투자해야 함의 진리를 몰랐다. 그저 퇴비를 듬성듬성 뿌려주고 모종을 심으면 그만인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열매가 작았다. 해를 거듭하며 이 방법 저 방법 여러 가지로 실험해 보니, 잘 자란 농작물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땅을 잘 가꿔야 한다.


우리 부부는 텃밭을 가꿀 때  대단한 수확을 바라지는 않는다. 농약 한번 덜 뿌리고, 음식물 쓰레기를 퇴비로 사용하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얼마나 애정을 갖고 가꾸는지에 따라 열매는 보상하듯 달라짐을 깨달았다. 그 조건엔 영양을 위해 음식물과 퇴비를 잘 섞어 이랑을 두둑이 만들고 모종을 심어야 한다. 퇴비가 충분하면 굳이 화학비료를 주지 않아도 튼실한 채소를 얻을 수 있다.


옛말에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 말이 실감 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은 명언 중 명언이다. 모든 일에는 원인에 걸맞은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다. 비록 작은 텃밭일지라도 땅에 투자하지 않으면 땅의 솔직함에 놀라 실망하는 날이 온다.


아직은 한낮 온도가 30도를 웃돌아 덥지만, 손에 쥔 호미를 놓을 수 없다. 물장구친 김에 가재 잡는다고 무더위에 미뤄두었던 것까지 텃밭 정리를 끝냈다.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그 느낌은 우리들의 수고를 알아준다는 무언의 칭찬인가. 지금 배추 모종을 심지 않으면 속 노랗게 잘 자란 가을배추를 얻을 수 없다. 당근도 진한 주황빛의 달고 맛있는 당근을 얻을 수 없다.

나는 당근!

나는 좋은 열매를 위해 땅에 시간과 퇴비와 땀의 수고를 투자하며 언제나 생각한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다고...'

마찬가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월급을 받을 수 없고, 투자하지 않으면 이익을 낼 수 없다. 아마도 이것은 사람이 게으르지 말라고 신이 준 진리가 아닐까 싶다.


30도 땡볕에 심어 놓은 농작물을 보니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니캉 내캉 나눠 먹을 생각에 11월이 기다려진다.

땅아, 배추를 잘 부탁해!

나는 배추!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올린다.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한다.

'어제 배추 모종 심기 참 잘했다. 힘들다고 미뤘다면 큰 후회할 뻔 했구나!'

'하늘도 돕는구나! 배추야, 물 먹고 쑥쑥 자라렴'

매거진의 이전글 전원주택 살이 5년 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