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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김지영은 추석을 어떻게 지냈을까?

'가족이 함께 읽는 책_82년생 김지영'_1편

82년생 김지영은 올해로 마흔 살이다.


들어가기 전에...
아이들의 청소년기를 의미 있게 보낼 방법을 고민하다, 가족이 함께 책 읽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보통 1달에 1권 정도의 속도로 책을 낭독하고, 궁금한 것에 대해 혹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가족 토의활동을 한다. 이번 달은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 책을 읽었다.


책을 읽기 전 책이 갖고 있는 유명세에 대해 이야기했다. 작가의 이력을 보니 과히 놀랍다. 조남주 작가는 [PD수첩], [불만제로], [생방송 오늘 아침] 등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작가로 10년 동안 일했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82년생 김지영]은 2016년 세상에 나왔고, 2017년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다.


읽기 전에...

이 책은 여성이라는 패러다임에 변화를 가져온 책이기도 해서 왜 이런 책이 이 사회에 큰 파장을 가져왔는지 생각해 보는 질문을 했다.

 작가가 성 차별에 대한 소설을 쓴 이유가 있을까?

 여자라는 이유로, 혹은 남자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이 존재할까?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위 질문에 두 아이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10대가 뭘 알겠냐?라는 비하가 아닌, 현재는 그나마 여성 차별이 사회 곳곳에서도 학교에서도 교육을 통해 변화되고 있기에  체감하기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라고 있다. 남자라고 설거지 안 하고, 여자라고 망치질 안 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집에서는 남자라도 배고프면 볶음밥을 해 먹고, 여자라도 자기가 하고 싶으면 나무를 깎아 칼을 만들며 놀기도 한다. 물론 관심도가 다르지만 분위기상 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우리 집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소설 속 장면에 대해 자연스럽게 토의가 이루어졌다.


토의하기.

김지영 씨가 이상 징후를 보인 것은 명절 전이었다. 늘 웃으며 묵묵히 육아를 감당하고, 직장 나가는 것을 포기하며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던 김지영 씨에게 빙의가 왔다. 차승연 씨를 흉내 내어 말하고도 정작 본인은 전혀 기억하거나 눈치채지 못했다. 정대현 씨는 아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추석이 되어 시댁에 갔을 때 일이 터졌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에 서운한 기색이 스쳤다.
"자기 가족 먹이려고 음식 하는 게 뭐가 고생이야? 명절이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음식 만들고, 먹고, 그러는 재미지."
그리고 어머니는 갑자기 김지영 씨에게 물었다.
"얘, 너 힘들었니?"
순간 김지영 씨의 두 볼에 사르르 홍조가 돌더니 표정이 부드러워지고 눈빛은 따뜻해졌다. 정대현 씨는 불안했다. 하지만 화제를 돌리거나 아내를 끌어낼 틈도 없이 김지영 씨가 대답했다.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
잠시 아무도 숨을 쉬지 않았다. 거대한 빙하 위에 온 가족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정수현 씨가 길게 한숨을 쉬었는데 찬 입김이 나와 하얗게 흩어졌다. (17쪽)

책을 읽으면서도 두 아이는 이 상황을 바로 인지하지 못했다. 

"김지영에게 나타 난 정신적인 이상 징후는 여성으로서 각인된 차별문화의 현실을 뚫고 나온 페르소나가 아닐까?" 

"이러한 상황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아이들은 새삼 엄마가 명절에 겪었을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다행인 건 내 남편은 정대현 씨가 아니다. 나는 소설 속 정대현 씨가 아내를 위할 줄 아는 멋진 사람이지만 결정적 상황에서는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김지영의 상황을 인지했다면 시댁에 가는 것을 어떤 핑계를 만들더라도 피했다거나, 식사가 끝난 후 엄마에게 적당히 둘러 대고 시댁을 빠져나왔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랬다면 이 소설의 이야기는 전개되지 못했겠지.


나 또한 시댁에 가면 친정을 가야 한다는 말이 목구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벙어리 냉가슴이었지만 당당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혹여라도 눈밖에 날까? 가족 간 섭섭함이 생길까 봐 노심초사했다. 지금의 MZ세대는 이런 기성세대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물론 지금도 가정 분위기나 성격에 따라 여전히 말하기 힘든 며느리가 많지만) 며느리는 눈치만 볼 뿐이었다. 눈치 보는 일이 반복되자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내가 말하기 곤란한 이야기는 남편을 통해서 적당히 둘러대도록 우린 미리 입을 맞췄다. 지금 생각하면 참 지혜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내겐 명절이 그나마 괴롭지 않았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며 너희 아빠는 참 지혜로운 남편이라고, 아들도 나중에 결혼하면 아빠처럼 아내와 엄마 사이에서 적당히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해주었다. 딸에게도 시누이 노릇하기보다 입장을 바꿔 행동하고, 시댁에서는 무조건 참기보다 남편과 이야기해서 슬기롭게 대처하라고 일러주었다. 남편은 나의 칭찬에 으슥하며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사실 남편의 중재도 어머님의 어진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우리 부부는 잘 알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댁과 친정을 똑같이 방문했던 평등의 룰 또한 한몫했으리라.


나눈 질문들
- 각자의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기.
- 내가 만약 김지영 씨였다면? 시어머니였다면? 시아버지였다면? 정대현 씨였다면? 시누이였다면?
- 명절이 즐거워지려면 어떤 가족의 문화가 필요할까?




82년생 김지영은 올해로 마흔 살이다. 마흔 살이 된 김지영 씨가 맞이 할 추석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 사이 지원이도 조금 컸고, 정신적 징후들도 잘 치료했겠지?

몸과 마음이 힘들면 힘들다고 지혜롭게 말할 수 있는 호기가 생겼을 것이다.


정대현 씨는 또 어떤가?

아내의 변화에 무척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어려운 터널을 잘 빠져나왔을까?


남편은 토의를 마무리하며,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 옳은 말을 했다고 말했다. 명절이면 다 같이 모여 식구끼리 음식도 하고, 먹고 하는 것이 재미라는 시어머니의 말도, 가족이 다 같이 얼굴 보는 게 1년에 몇 번이나 되냐고 반문한 시아버지의 말도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상황은 좋지 않게 스토리가 치달아갔고, 우리에겐 명절에 대해 또 여성에 대해 생각할 숙제를 던져주었다. 더 이상은 명절이 누구 한 사람만 힘들어야 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운전도 아내와 남편이 번갈아 가며 즐길 수 있고, 죽을 것 같이 힘들면 가는 것을 쉬더라도 자식으로서의 예의는 지킬 수 있는 그런 명절이었으면 한다.


어쩌면 지금의 팬데믹 상황이 명절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다. 이 사회에서 명절 문화가 암묵적으로 여성의 노동을 강제했다면 명절의 무게에 거리를 둘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닌가? 

명절 스트레스가 없도록 어떻게 지혜를 발휘할까?

명절이 화병이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스리는 나만의 처방으로 미리 예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은 없기를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의 명절이 즐거워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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