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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육아 우울증?

내 인생의 소울 레시피(마음 처방)

문득 바라본 창 밖으로
노란 은행잎이 힘없이 떨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잠이 깬 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낑낑댄다. 언제나 늘 그렇듯 아이의 칭얼거림엔 반사적으로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작동한다.

'무슨 소리지?'

'킁킁킁... 오줌 쌌나?'

'얼굴색이 안 좋은가?'

'열은 없나?'

작동된 감각은 이상이 없음을 진단했고, 알았다는 듯 젖꼭지를 내밀며 아이의 칭얼거림을 달래 주었다. 아침이니 배가 고팠겠지. 별 일 아님을 감사하며 잠시 숨을 고른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떤 날이 될지 스쳐가는 생각들을 애써 붙잡지 않으려고 남편을 찾았다. 침대에 남편이 없는 것을 보니 벌써 화장실에서 명상 중인가 보다. 얼른 모유 먹이고 아침을 차려야 한다.


국 없이 아침밥이 넘어가지 않는다는 남편을 위해 된장국을 끓이고, 된장 국밥으로 담아주었다. 남편은 습관처럼 된장국에 만 밥을 후루룩 먹고 일터로 나선다.


남편이 출근하고, 엉덩이 비빌 새 없이 큰 아이 밥을 챙긴다. 숟가락을 놓고, 식탁을 차리는데 물컹하니 가슴이 요동친다. 머리가 숮 검댕이처럼 화끈거린다. 온갖 부정의 언어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제 2살인 둘째는 모유가 만족스러웠는지 한쪽 편에서 물티슈를 흩어가며 놀고 있다.

문득 바라본 창 밖으로 노란 은행잎이 힘없이 떨어진다......


쿵쾅!! 쿵쾅!!

방망이질하며 심장을 두드려대는 소리에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뭐라도 집어던질 기세다. 어쩌면 그것이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그 짧은 순간 머리를 스쳤다.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졌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주섬주섬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챙겼다. 큰아이가 밥먹은 것을 확인하고는 옷을 입으라고 주문했다. 물티슈를 흩으며 놀고 있는 둘째는 번쩍 안아 세수를 시키고 옷을 갈아입혔다.


"엄마, 우리 어디가?"

"으으응... 공원 가자. 우리 공원 가서 놀고 오자"


그랬다. 집에 있다가는 폐소 공포증이라도 걸린 듯 가슴이 답답했다. 벽이 내게 달려드는 것만 같아 소리를 지르고 싶은 걸 꾹 참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없는데 왜 이럴까?

으악~~~ 미칠 것만 같다. 최대한 빨리 나가야 한다. 아니 집을 탈출해야 한다. 아이가 먹고 난 설거지는 싱크대에 던지다시피 담아놓고 간식과 가방을 챙겨 아이들과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제 2살인 둘째는 유모차에 태우고, 4살인 큰 아이는 엄마 바짓가랑이를 잡고 졸레졸레 걷는다. 10분만 걸어가면 공원이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가슴은 쿵쾅거리고, 걸음은 빨라지지만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일찍부터 나선 바깥 풍경에 그저 신이 났다. 재잘거리는 아이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느새 공원에 다다랐다.


휴~~~~~


공원의 공기를 창자까지 닿게 하고 싶은 욕심으로 힘껏 들이마셨다. 그리곤 후~~~~~~~하고 길게 내 쉬었다. 마치 불을 품은 용이 모든 것 태워버릴 듯 내뿜는 불처럼 날숨이 화르르 내뱉어졌다.


"아! 이제야 살 것 같다"

나의 외침에 큰아이가 바라보았다.

"으응~ 공기가 너무 좋아서, 엄마가 살 것 같아. 바람도 너무 좋다. 너도 눈감고 엄마처럼 느껴봐 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느낌이 참 좋아"

나의 말에 아이는 눈을 감는다.

"엄마, 바람이 볼을 간지럽혀"

"글치, 바람이 막 간지럽히지"

아이는 마치 바람이 간지럼을 심하게 태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외마디 소리친다.

"앗 간지러워"

그리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엄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주었다. 언제나, 갤러리 속에는 아이들 사진이 가득했는데, 이날은 나의 30대에 느끼는 마지막 가을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게 쿵쾅대던 마음이 진정이 되고 아이들과 공원을 돌며 가을을 수집했다. 

노랑 나뭇잎, 갈색 나뭇잎, 빨간 나뭇잎, 사철나무 열매... 그리고 도토리 몇 알.

세상의 아이들은 모두 어린이집을 갔는지, 꼭꼭 숨어 보이지 않고 공원은 온통 우리 세상이었다. 낙엽과 함께 뒹굴어도, 낙엽을 뿌리고 놀아도 자연은 우리 편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내 안에 숨겨져 있던 불덩이는 자연과 함께 사그라들었고, 신나게 공원을 뛰어노는 아이들은 더 건강하게 자랐다. 아이의 건강만큼 나의 마음 온도도 1도씩 건강해 짐을 느낄 때 즈음,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후 나는 불덩이가 쏟아져 나오려 할 때면 아이들과 공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 공원을 다녀오고 나면 내 안의 화룡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김지영 씨는 뜨거운 커피를 손등에 왈칵왈칵 쏟으며 급히 공원을 빠져나왔다.
중간에 아이가 깨서 우는데도 모르고 집까지 정신없이 유모차를 밀며 달렸다.
오후 내내 멍했다.   (82년생 김지영 중에서...)

가족과 함께 책 낭독시간에 [82년생 김지영] 을 보며 이 대목에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 울렸다.

10여 년 전, 집에서 뛰쳐나가야 할 만큼 숨통을 조여오던 답답함이 육아 우울증이었음을 이제야 느꼈다. 김지영의 허둥대는 장면이, 아이의 밥그릇을 싱크대에 던지듯이 놓고 집 밖을 나오던 내 모습과 오버랩되어 나의 뇌를 흔들었다. 넌 몰랐지만 그게 육아 우울이었다고, 너의 공원행은 셀프 치유의 시간이었다고 말이다. 


지나 놓고 보니 더 이상의 탈이 없었음이 참 감사하다.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목표로 아는 이 하나 없는 안산행은 독박 육아도 견뎌야 했고, 커피 한 잔도 아껴야 했다. 참아내며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그 팍팍한 삶을 자식 사랑이란 이름으로 행복하다 여겼었는데, 웃으면서도 가슴에 불덩이로 남아있었던 게다. 웃는다고 문제가 없었던 게 아닌 거지.


만약 불덩이를 안고서도 뛰쳐나가지 않았더라면,

집 가까이 공원이 없었더라면,

아프다고 고백할 신앙이 없었더라면...

한 움큼의 약으로 버텨야 하지 않았을까?


그 시절 공원이, 신앙이 내게 비결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육아 우울 인지도 모르고 참아야 했던, 그래서 멍들어 버린 마음에 연고가 되어 준 나만의 치유 공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나, 엄마, 아내, 작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이 천운이다.


가을이다.

10여 년 전 그 하늘과 똑 닮은 파란 하늘이 넘실댄다. 하지만 나는 이제 공원으로 뛰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불덩이가 되기 전 내 마음을 다스리는 recipe가 차곡차곡 쌓여있기 때문이다.



가슴 답답함을 이겨 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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