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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위 소개할게

엄마와 지키지 못한 약속

"언니! 소개팅할래?" 뜬금없이 묻는 후배의 말에
"소개팅? 좋지~ 괜찮은 사람 있어?" 하고 물었다.
"응, 나랑 같은 교회 다니는 오빠인데 기타도 잘 치고 노래도 잘해. 언니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래? 그럼 한번 주선해 봐"하고 선뜻 후배에게 허락을 했다.


후배는 유치원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만났다. 매일 붙어 다니며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다니다 보니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세세한 것까지도 아는 사이가 되었다. 공부만 하다 보니 마음은 초췌해지고, 나이만 먹는 것 같아 심신이 허전하던 차, 후배가 넌지시 던진 말에 나는 그와의 만남을 시작했다. 소개팅이라고는 했지만 왠지 선뜻 만나는 것이 쑥스러워 후배를 통해 이메일 주소를 주고받았고 이메일로 서로를 알리며 조금씩 알아갔다.
 
편지와 사진을 주고받은 지 3개월이 지났을 즈음, 서로가 더욱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시간 약속하고 만나는 게 조금은 쑥스러워 007 작전처럼 얼굴을 공개하자며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는 종로에 있는 대형 서점이다. 종로는 캐럴이며 크리스마스 성탄 불빛이 유난히 눈부셨다. 약속 장소에서 책을 들고 심장이 떨리는 것을 감추려고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어떤 사람일까?'
'편지는 참 따뜻했는데...'
메일에서 본 그의 사진은 장동건도 울고 갈 v라인의 잘 생긴 옆모습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서점 어디쯤 계세요?"하고 다소 경직된 그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네... 잡지 쪽...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있어요." 3개월이나 편지를 주고받았건만 왜 이리 떨리는지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두근거리는 첫 만남의 시간은 그렇게 우리 앞에 놓여있다.
다소 작은 키에 얼굴이 참 커다란 그가 내게 성큼 다가왔다.

'아니, 사진 속의 잘생긴 얼굴은 어디 갔지? 왜 저렇게 머리가 큰 거야' 나는 실망을 감추며 애써 태연한 척 웃었다. 꿈에 그리던 장동건이 아니라 실망이었을까? 첫 만남에 국밥을 먹고 커피 마시며 대충 수다 떨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 오빤 어땠어?

"되게 편하지?"
"착하게 생겼지?" 그를 만나고 온 내게 전화해 후배는 질문이 쏟아졌다.
"으응~ 그렇지 뭐. 착하긴 한 것 같아"하고 건성으로 말했다.
3개월 동안 설레며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생각하니 차라리 만나지 말 것을... 후회가 밀려왔다. 첫 만남 이후 실망이 큰 내게 친동생은 한번 만나고 사람을 어떻게 아냐며 더도 말고 딱 세 번만 만나보라고 했다.

 
그 사람은 첫 만남에 국밥 먹는 나의 꾸밈없는 모습에 애프터 신청을 했고, 우린 그렇게 가끔 만나며 얼굴을 익혀 갔다. 동생의 말처럼 딱 세 번 만나고 그만 만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나지만 여러 번 만나고 보니 솔직하고, 책임감도 있고, 정말 뚝배기 같이 푸근한 점도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정이 들어갔고 '그와의 결혼은 어떨까?'를 마음 한편에 두게 되었다.


요란히 선거가 치러지던 2004년 4월, 동생과 나는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며 삼겹살을 사들고 버스를 탔다. 농사 준비로 봄볕에 그을린 엄마가 환하게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었다. 직장일도 힘든데 뭐하러 왔냐며 타박을 하셨지만 반가운 눈치다. 우린 삼겹살을 김치와 함께 구워 먹고 그간의 일들을 얘기하며 하하호호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예고 없이 갑자기 찾아서 인지 엄마도 좋아하셨고, 근래 들어 농사 준비로 바삐 움직였더니 고기도 못 먹었는데 김치와 함께 구워 먹는 삼겹살은 최고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엄마와 헤어지며 버스를 타러 가려는데 엄마가 나를 불러 세워 물으신다.

"결혼은 언제 생각이 있는 거니? 더 늦으면 안 되는데 사람이라도 만나야지?"

"...... 에이, 걱정 마세요. 엄마한테 멋진 사위 소개할 날이 올 거야"

"그게 언젠데? 결혼이 너무 늦어지는 것도 좋지 않아. 우리 딸 착한 사람 만나 예쁘게 사는 거 봐야지"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엄마 그 사람 참 따뜻한 사람이에요. 다음에 소개할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속으로 생각하며 엄마와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가 햇빛에 많이 그을렸다는 둥, 삼겹살을 그렇게 맛있게 드시는 건 처음 봤다는 둥 집에 다녀오길 잘했다고 동생과 맞장구를 쳤다.


선거일에 쉬지 않고 시골을 다녀온 탓인지 조금 피곤한 몸으로 출근을 했다. 피곤하긴 했지만 오랜만에 엄마를 만나고 와서인지 어린아이 젖 먹은 마냥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데 원장 선생님이 집에서 전화가 왔다며 부르셨다. 

'핸드폰이 있는데 왜 직장으로 전화를 했지?'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동생의 말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밭에서 일하시다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거다. 병원을 가야 하니 얼른 정리하고 버스터미널에서 만나자고 했다. 의식이 없다고 빨리 가야 한다고......

 

엄마가 쓰러진 건 선천성 지주막하 출혈이었다. 선천성이라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난 포기하지 않았다. 중환자실에 누워 아무 말도 못 하는 엄마에게 나지막이 소리쳤다.
"엄마 죽지 마. 나 결혼하는 것도 보고 아들 딸 낳고 잘 사는 것도 봐야지. "
"엄마가 좋아하는 착한 사람도 만났어. 엄마에게 소개할 건데 얼른 툭툭 털고 일어나"

세상이 노랬다. 착한 사람 만나 예쁘게 사는 게 보고 싶다 던 엄마를 그냥 이렇게 보낼 수는 없었다. 하늘에 원망도 하고, 엄마를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기도도 했다. 이제 66세인데, 감기한 번 걸리지 않고 그 누구보다 건강하던 엄마가 금방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벌떡 일어날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는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엄마에게 사위 인사시켜 드리겠다는 나의 약속은 지키지도 못한 채 엄마는 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와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던 장례식장에서 난 기도했다.

'하나님, 그냥 이렇게 엄마를 보낼 수는 없어요. 만약 그 사람이 당신이 보내주신 운명의 짝이라면 엄마가 천국 가시는 길 마지막 인사라도 할 수 있도록 이곳에 보내주세요'
아직 미래에 대한 그 어떤 약속도, 손도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않은 사람인데 참 어이없는 기도를 하며 행여나 올까 반신반의하며 슬픔을 삭였다. 


하지만 운명처럼 후배와 함께 나타난 그는 엄마의 영정에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를 드렸고, 엄마의 빈자리가 우리를 더 가깝게 엮어주었다. 엄마가 하늘에서 응원해 준 덕분일까?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그 사람과 아들딸 낳고 예쁘게 잘 살고 있다.


엄마 살아생전에 사위를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이
내게 커다란 아픔으로 생채기가 되어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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