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등급 밖의 사람들

이별이라는 무인도에서 보내는 편지

by 황규진

상담사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배운 것이 있다.


내담자의 감정에 휘말리면 안 됩니다.
거리를 유지하세요.
당신이 무너지면 그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맞는 말이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쓰여 있다. 감정적 거리 유지, 전이와 역전이의 관리, 전문가로서의 경계 설정. 시험에 나오면 정답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런데 상담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앉으면, 교과서가 무력해지는 순간이 온다.


한 내담자가 있었다. 이름은 밝힐 수 없다. 그녀는 상담실 소파에 앉자마자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지퍼백에 넣어온 강아지 목줄이었다. 낡은 가죽, 닳은 버클. "이것만 남았어요." 그 한마디에 목소리가 갈라졌다. 13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떠나보낸 지 보름째였다.


회사에는 말도 못 꺼냈다고 했다. 한번 꺼냈다가 "강아지가 죽었다고 휴가를 달라는 거야?"라는 시선을 받았다고. 남편은 "새로 한 마리 데려올까?"라고 했다고. 선의인 건 안다. 그런데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고. 13년이 '한 마리'로 치환되는 느낌이었다고.


그녀가 목줄을 만지작거리며 울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배운 문장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충분히 슬퍼할 자격이 있습니다"도, "그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예요"도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냥 같이 앉아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날 상담이 끝나고 혼자 남은 상담실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그때 알았다. 배운 게 틀린 게 아니라, 맞는데 안 되는 순간이 있다는 걸.


우리 사회는 슬픔에 계급을 매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일 휴가가 나온다. 조문객이 줄을 잇고, 조의금이 모이고, 화환이 도착한다. 슬퍼해도 된다는 허가가 사회적으로 주어진다. 그런데 5년 사귄 연인과 헤어지면? "또 만나면 되지." "시간이 약이야." 13년 함께한 반려동물이 죽으면? "그래도 개잖아." 한 번 만난 소개팅 상대에게 거절당하면? "그걸 가지고 뭘."


누가 이 서열을 정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다들 따른다. 혈연의 죽음은 1급이고, 연인의 이별은 3급이고, 반려동물의 죽음은 등급 밖이다. 소개팅 거절쯤 되면 슬퍼할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상담실에는 이 등급 밖의 사람들이 온다.


3년 만난 사람과 헤어지고 석 달째 출근을 겨우 하는 사람. 10년 된 고양이를 떠나보내고 아직도 창가 자리를 비워두는 사람. 5시간 만난 소개팅 상대에게 거절당하고 일주일째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사람. 세상은 이들에게 말한다. "별일 아니야." 그래서 이들은 상담실까지 와서야 비로소 말한다. "저 좀 이상한 건가요?"


이상하지 않다. 이상한 건 슬픔에 등급을 매기는 쪽이다.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면 하나 알게 되는 게 있다. 슬픔의 크기는 관계의 길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10년을 만나고도 담담하게 헤어지는 사람이 있고, 단 한 번의 만남 뒤에 무너지는 사람이 있다. 그걸 겉에서 보고 "저건 좀 과하다" "저건 당연하다"라고 재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상담사도 마찬가지다. 나도 재단할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 앞에 앉아서, 그 사람의 슬픔이 진짜라는 걸 인정해주는 거다. 크기를 재지 않고, 등급을 매기지 않고, "아프겠다"라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거다. 그게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상담실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걸 한 번도 못 들어봤다.


배운 것은 틀리지 않았다.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내가 무너지면 도울 수 없다. 그런데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같이 아파하는 방법이 있다는 걸, 대학에서는 안 가르쳐줬다. 그건 사람 앞에 앉아봐야 안다.


이 책은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별 후 새벽마다 전 연인의 카톡을 처음부터 다시 읽던 사람. 유령 계정을 만들어 6년 전 첫사랑의 인스타를 염탐하던 사람. 소개팅에서 한 번 거절당하고 자기 전체가 부정당한 것 같아 일주일을 방에서 나오지 못한 사람. 이름과 상황은 바꿨다. 감정은 바꾸지 않았다. 바꿀 수가 없었다.


이 책이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다.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는 걸 말해주는 것. 당신의 슬픔은 정당하다는 것. 누가 뭐라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