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나와 내 친구들의 마음 거리

by 황규진

카페 테이블 너머로 친구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는다.


"그래서... 아직도 그 사람 생각해?"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당신이 꺼낸 이야기는 또 그 사람이다. 석 달 전 헤어진, 이제는 남인 그 사람. 친구는 컵을 내려놓고 잠시 창밖을 본다. 비 내리는 거리, 우산 없이 뛰어가는 사람들. 그 침묵 속에서 당신은 알아차린다. 아, 이제 한계구나.


처음 이별을 고백했을 때를 떠올려보자. 친구들은 즉시 달려왔다. 새벽 2시에 "지금 나와, 술 마시자"고 하면 군말 없이 나왔고, 당신이 울면 같이 울었고, 당신이 욕하면 더 심한 욕을 보태줬다. 그게 친구니까. 당연한 거라고, 그때는 서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의 공감 능력에는 바닥이 있다. 그릇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는 넉넉하다. 쏟아도 쏟아도 받아준다. 그런데 두 달, 석 달이 지나면 가장자리까지 차오른다. 친구들에게도 각자의 일상이 있고, 연애가 있고, 직장에서 쌓인 스트레스가 있다. 당신의 이별 이야기가 그들의 하루를 계속 채울 수는 없다.


이별 직후 한 달. 그게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허용하는 애도 기간이다. 이 한 달 동안 친구들은 무조건 받아준다. 새벽 통화도, 반복되는 하소연도, 술 먹고 우는 것도. 그런데 한 달이 지나면 미묘한 변화가 온다. "그런데 말이야..."로 시작하는 조언이 늘고, "이제 그만 잊어야지"가 슬며시 끼어든다.


두 달째에는 카톡 답장이 느려진다. "그 이야기만 안 하면 만나자"는 전제 조건이 붙는다. 석 달째가 되면, 당신은 '아직도 못 잊은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친구들 사이에서 살짝 피곤한 존재가 된다.


10년 우정인 친구 A를 생각해보자. 그 친구는 당신을 진짜 아낀다. 그런데 매번 만날 때마다 똑같은 이야기, 똑같은 눈물, 똑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왜 헤어졌을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다시 연락해볼까?" 할 수 있는 조언은 다 했다. 건넬 수 있는 위로도 다 건넸다. 이제 남은 건 침묵뿐인데, 침묵하면 당신이 상처받을 것 같아서 억지로 반응을 짜낸다. "그래, 힘들겠다." "응, 이해해." 대답이 점점 짧아진다.


그 친구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맴돈다. '대체 언제쯤 앞으로 갈까.' 그러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자기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낀다. 좋은 친구라면 끝까지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솔직히 지친다. 자기 연애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당신 앞에서 행복한 모습을 보이는 게 미안해서.


위로하는 사람도 위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별한 사람 앞에서 그 필요는 자동으로 뒤로 밀린다. 친구들은 당신의 슬픔을 받아주는 그릇이 되어야 하지만, 그릇은 넘친다. 넘친 물은 어디로 가나. 조용히 흘러내린다. 연락이 뜸해지고, 약속이 줄고, 관계가 소원해지는 식으로.


당신은 억울하다. 이별이 이렇게 아픈데 왜 아무도 끝까지 안 들어주나. 영화에서는 친구들이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던데. 현실은 왜 이런가.


입장을 바꿔보자. 당신도 누군가의 이별을 위로해본 적이 있을 거다. 처음엔 진심이었다. 빨리 나아지길 바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을 때, 슬쩍 피로감이 올라왔을 거다. '대체 언제까지...'가 스쳐 지나갔을 거다. 그때의 당신과 지금 당신 곁을 떠나가는 친구들이 뭐가 다른가.


누구도 타인의 고통을 끝까지 함께 짊어질 수는 없다. 공감에도 바닥이 있고 위로에도 한도가 있다. 매정한 게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완전히 빠져들면 자기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상담실에서 한 내담자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친구들이 점점 멀어지는 게 느껴져요. 제가 무슨 전염병 환자 된 것 같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깊은 슬픔에는 전염성이 있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 자기도 거기에 빠질까 봐.


그렇다고 혼자 고립돼서 삭을 거라는 뜻이 아니다. 슬픔을 나누는 방식을 바꿔보는 거다. 한 사람에게 전부 쏟아내는 대신,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는 거다. 이 친구에게는 좀 꺼내고, 저 친구에게는 좀 꺼내고, 나머지는 일기장이나 상담사에게. 그래야 관계도 보호되고, 감정도 처리된다.


동시에 친구들의 한계를 인정하는 게 낫다. 덜 사랑해서가 아니다. 그들도 자기 상처와 피로를 안고 사는 사람이니까.


이별 후 석 달, 당신은 여전히 힘들다. 친구들은 당신의 이별 이야기에 시큰둥하다. 그런데 이상한 게, 이 거리감이 때로는 약이 된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당신은 자기 자신과 대면하게 된다. 친구들의 위로 없이도 스스로를 달래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좀 지나면 알게 된다. 친구들이 떠난 게 아니라 적정 거리를 찾아간 거라는 걸. 여전히 당신을 좋아한다. 다만 당신의 슬픔에 같이 잠기지 않으면서 곁에 있는 법을 택한 거다. 오래 가려면 그 수밖에 없으니까.


당신이 나아지고 나면, 이 과정이 다르게 보인다. 지쳤던 친구들이 나름대로 최선이었다는 게 보인다. 그리고 언젠가 당신도 누군가의 이별을 듣게 될 때, 그때가 떠오를 거다. 공감과 거리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면서, 친구를 아끼되 자기를 지키는 그 아슬아슬한 자리.


완벽한 이해도, 끝없는 공감도 없다. 서로의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 붙어 있는 것. 그게 전부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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