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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부 기자, 명함이 나왔다

by 김뤂

처음 그 명함을 손에 쥐었을 때, 웃음이 나왔다.

기자. 그것도 ‘연예부’라는 타이틀을 단 기자.

학창 시절 기자를 꿈꾸면서도 열렬히 원했던 부서도 아니었고, 언론고시를 준비하며 연예 기자가 되고자 치열하게 경쟁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어느샌가 이 자리에 서 있었다.

첫 명함은 처음 산업부 인턴이었을 때 받았었고, 이번이 두 번째 명함이다. 기분이 새로웠다.


명함은 얇고 가벼웠지만, 그 속에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회사의 이름, 내 이름, 그리고 ‘기자’라는 단 세 글자가 어쩐지 어깨를 더 무겁게 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이 작은 카드를 건넬 때마다 나는 어딘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가 생각난다. 제작발표회, 기자간담회, 쇼케이스, 영화 시사회. 화려한 조명 아래 선 스타들을 마주하고, 다른 기자들 틈에서 마이크를 들고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내 질문에 배우나 가수가 시선을 돌려 답변할 때, 순간적으로 두근거렸다. ‘아, 정말 기자가 됐구나.’


하지만 연예부 기자의 하루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벽부터 뉴스가 쏟아졌고, 주말과 휴일의 경계는 희미했다. 누군가의 열애설과 결별, 논란과 해명. ‘단독’이라는 굵은 글씨를 보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기사 한 줄 한 줄을 확인했다. 누군가는 가십이나 쫓는 직업이라 말했지만, 그 속에서도 내게 이 일은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이었다. 누구보다 스타들을 이해하려 애썼고, 조회수는 밑바닥을 웃돌아도 최대한 자극적이지 않게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내 철칙과도 같았다. 누군가의 꿈과 실패, 노력과 상처를 글로 옮기는 일이 결코 가벼울 수는 없었다.


명함을 건네는 일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깨달았다. 이 얇은 종이는 단순한 직함이 아니라, 세상과 나를 연결하는 매개체였다. 누군가는 나를 기자로 기억하고, 또 누군가는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경계했다.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계속해서 정의해 나가야 했다.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오늘도 나는 가방 속에 명함을 두둑히 챙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명함을 내밀 때마다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한다. 화려함 너머의 진짜 이야기를 찾는 기자가 되겠다고.


명함 한 장에 담긴 무게를 조금은 이해하게 된 지금, 나는 이 길을 조금 더 당당하게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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