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와 입사 사이, 딱 5일
나는 단 5일의 텀을 두고 이직에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고, 또 다르게 보면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감사보다는 혼란과 고민이 먼저였다.
연예부 기자라는 일이 어떤 건지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으니까.
쉴 새 없이 터지는 열애설과 논란, 일반 직장인들처럼 평범하게 평일 9-6 근무 스케줄에 칼퇴를 꿈꾸지만 늘 퇴근할 때 즈음 울리는 긴급 속보, 주말에도 쉴 틈 없이 울리는 알람과 “빨리, 다른 데보다 늦으면 의미 없어!”라는 선배의 다급한 목소리.
처음 사직서를 냈을 때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이제는 좀 덜 바쁘고, 덜 치열한 일을 찾아보자. 나름 재미있었지만, 인생이 다 속보 경쟁일 필요는 없잖아?’
이런 생각도 했다.
‘그래, 잠깐이라도 쉬자. 늦잠도 자고, 밀린 드라마도 보고, 여행도 한 번 다녀오고.’
그런데 퇴사와 함께 찾아온 짧은 여유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복잡했다.
조금만 더 쉬고 싶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대로 현장을 떠나면 아쉬울 것 같다는 마음이 따라왔다.
신인 아이돌의 첫 데뷔 무대, 무대 뒤에서 떨던 표정을 본 건 기자였던 나였고,
배우가 인터뷰 중 눈시울을 붉히며 진짜 고민을 털어놓을 때, 그걸 글로 기록했던 것도 나였고,
새벽까지 기사를 다듬으며 ‘내 이름’을 걸고 송고 버튼을 누를 때의 뿌듯함도 나만 아는 감정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떠난다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이런저런 고민 속, 나는 운명처럼 만난 새로운 곳으로의 첫 출근을 확정하게 됐다.
"다시 할 수 있을까?"
"아니, 다시 해도 괜찮을까?"
생각보다 빨리 합격 소식을 받은지라 새롭게 뭘 준비하거나 재정비할 생각은 못했다.
퇴사와 입사 사이, 딱 5일.
첫 출근날 아침.
새 회사의 사무실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같은 연예부 기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책상의 위치, 동료들의 얼굴, 단톡방의 말투까지 사소한 것들이 모두 달랐다.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신입'이 되었고, 동시에 '경력직'이라는 꼬리표도 달고 있었다. 경력이라고 해봐야 얼마 안 되는데 그것도 나름 경력으로 보일 수 있었나 보다. 어떻게 보면 ‘중고신입’이었던 거겠지.
"이 기사 먼저 써주세요!"
낯선 회사의 시스템에 로그인하고, 기사 작성 툴을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순간, 보도자료 메일함을 열고, 메모장을 띄우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순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다시 이 일을 선택했구나.
결국, 나는 이 일을 ‘좋아해서’ 돌아온 거구나.
솔직히 말하면, 연예부 기자라는 일이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매일 느끼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스타의 이름과 소식을 확인하고, 때론 불필요한 논란 속에서 진실과 소문을 가려내야 하는 일. 퇴근과 동시에 터지는 열애설과 해명 기사에 야근은 기본이고, 쉬고 싶은 주말 당직 근무 스케줄은 참 자주 돌아오고, 독자들의 반응은 때로 따뜻했지만, 때로는 가시처럼 날카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이 길을 선택했다.
왜일까.
스타들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는 짜릿함, 인터뷰 중 예상치 못한 답변을 끌어낼 때의 성취감, 기사 써줘서 고맙다는 메일을 받을 때의 뿌듯함. 그런 순간들이 이 일을 단순한 ‘직업’ 이상으로 느껴지게 만들었다. 그 모든 순간이 그리웠던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꿈과 노력의 순간을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모든 고민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속보는 나를 쫓아오고, 퇴근 무렵에 터지는 이슈는 하루의 끝을 미룬다.
그럼에도 하나는 확실하다.
이 일이 나를 지치게도 하지만, 동시에 살아있다고 느끼게도 만든다는 것.
결국, 고민의 끝에서 나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좋아하는 일을 선택했다.
새 회사에서의 첫 일주일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퇴근길에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은 몹시 피곤해 보였지만, 이상하게 마음은 가벼웠다. 쉬지 않고 달려온 것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계속 좋아하는 일을 이어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5일의 텀.
누군가에게는 짧은 휴식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돌아갈 이유를 찾는 데 딱 필요한 시간이자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한 딱 적당한 숨 고르기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인터뷰를 준비하고, 알람을 확인하고, 기사를 다듬으면서.
플래시가 터지는 무대를 뒤에서 바라보며, 키보드 위를 빠르게 누비며, 세상의 관심과 무관하게 묵묵히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으로.
그러니까, 다시 기자로, 다시 내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