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로 접했던 모습과 현실은 비슷한 듯 달랐다
드라마 속 연예부 기자는 뭔가 늘 바빠보이면서도 왠지 모르게 멋졌다. 가끔 스타들의 비밀이나 사생활을 비밀요원처럼 캐내는 모습 보면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치열하게 진실을 쫓고 인터뷰 현장에서 스마트폰과 녹음기를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스타의 속내를 캐내는 모습. 플래시가 터지는 시사회장에서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쥔 채 현장을 누비는 모습. 밤샘 끝에 '단독' 딱지가 붙은 기사를 송고하고는,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기며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는 장면은… 솔직히 좀, 멋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멋진 연예부 기자가 된 나.
지난 6개월간의 인턴 기자 때와는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회사로 향했다.
막상 첫 출근을 하니, 상황은 드라마와 닮은 듯 달랐다.
현실은? '단독' 대신 '단톡'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엔터팀 단톡방 들어왔죠? 기사 속도 너무 중요해요. 다들 손 빠르니까 긴장하시고요."
"오늘 이슈는 뭐야? 트위터, 인스타, 더쿠 다 돌려봐요!"
드라마에서는 기자가 스스로 이슈를 찾아내지만, 현실에서는 세상이 던져주는 이슈를 먼저 캐치하고 낚아채는 게 생존의 첫걸음이었다.
오전 9시.
보도자료가 메일함에 폭탄처럼 쏟아졌다.
"이거, 보도자료 베이스로 30분 안에 기사 하나 써요!"
드라마에선 기자가 발로 뛰어 특종을 따내지만, 현실은 Ctrl+C와 Ctrl+V 사이에서 문장을 재구성하는 일이 먼저였다.
오후 2시.
첫 기자간담회 현장.
드라마에선 기자들이 날카로운 질문으로 스타를 당황시키지만, 현실에선 그저 분위기를 잘 맞추는 기자가 '성공한' 기자였다.
"요즘 제일 빠져 있는 취미는 뭐예요?"
"팬들이 보고 싶어할 것 같아서요!"
날카로운 질문 대신, 독자들이 좋아할 대답을 끌어내는 게 더 중요했다.
오후 6시.
퇴근? 그런 건 내게 사치였다.
퇴근 시간 임박해 어느 아이돌의 열애설이 터졌고, 사무실은 난리가 났다.
"확인됐어? 소속사 입장은? 아, 쟤네는 항상 답 늦어!"
드라마에선 한 명의 기자가 모든 걸 해결하지만, 현실에선 단톡방의 '총공 모드'가 발동됐다. 물론 소속사와 연락을 취하고 빠르게 공식입장 기사를 내보내는 건 가장 손이 빠른 기자의 몫이 됐다.
밤 10시.
비로소 사무실을 나서는 길, 드라마 속 기자와 현실의 기자는 같은 무대, 다른 배역을 맡았다는 걸 깨달았다.
드라마는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리지만, 현실의 기자는 무대 뒤에서 주인공을 비추는 조명이었다.
‘그래, 멋지진 않아도 좋다.
진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면, 오늘 하루도 단톡방 속 '단독'처럼 반짝였으니까.‘
그렇게 쏜살같이 첫 출근 날이 지나고, 다음 날이 됐다.
오전 8시 30분.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선배 기자가 무심하게 말을 던졌다.
"출근하면서 기사 검색했지? 오늘 이슈 뭐야?"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멋지게 사건을 파헤치는 데 집중하지만, 현실의 첫 단계는 '트래픽'이었다. 포털사이트 랭킹에 오른 기사들과 각종 SNS를 스크롤하며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빠르게 파악해야 했다.
오전 10시.
보도자료가 계속해서 메일함에 도착한다. 그중 눈에 띄는 게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새 앨범 발매 소식이었다.
"이거 간단하게 베끼면 돼."
베낀다고? 드라마에서는 기자들이 발로 뛰어 정보를 얻는 모습이 전부였는데, 실제로는 보도자료를 재구성하는 작업이 하루의 절반을 차지했다. 하지만 몇 시간 뒤, 내가 쓴 기사에 내 이름이 올라간 걸 보니 묘한 성취감이 밀려왔다.
오후 2시.
선배를 따라 두 번째 현장 취재에 나섰다. 한 배우의 인터뷰 자리였다. 드라마 속 기자들은 매서운 눈으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지만, 현실에서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인터뷰 내내 선배는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읽고, 배우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오후 6시.
오늘은 일찍 퇴근할 줄 알았던 내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유명 가수가 사고쳤다. 가벼운 사고가 아니다. 하.. 왜 하필 오늘, 왜 하필 지금이니. 드라마에서는 한 명의 주인공이 모든 걸 해결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손과 눈이 빠르게 움직이며 기사를 완성해 나갔다.
밤 10시.
사무실을 나서는 길, 문득 생각했다. 어제도 느낀 부분이다. 내가 본 드라마 속 연예부 기자는 주인공이었지만, 현실의 연예부 기자는 주인공을 비추는 조명 같은 존재라는 것 말이다.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순간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치열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버스에 녹초가 된 몸을 실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화려한 무대 뒤편에서, 나만의 조명을 비추는 사람이 되어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