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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닫는 연습

an open door

by 나작

몇 주 전, 밖으로 나갔던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한쪽 문이 활짝 열린 채로 주차되어 있는 어느 차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있던 나는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고 순간 터져 나오는 비명과 함께 입을 틀어막았다. 손가락 틈으로 "어머, 미쳤나 봐." 하는 말이 새어나간다. 그 차가 어떤 차인가 하면, 내가 몇 시간 전에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였던 것이다.


'꼬리가 길다'는 말이 있다. 옹기종기 한 방에 모여 살던 시절에 방문을 안 닫고 나가는 사람에게 어른들이 하던 핀잔이다. 설날 같은 명절에 온 식구들이 모이면, 작은 방에 사촌 예닐곱 명이 이불 하나를 나눠 덮고 귤을 까먹으면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모인 사람이 많다 보니 각자 볼 일도 다양해서 몇 분에 한 번씩 꼭 누군가 들락거려야 했다. 밖에 일하고 있는 어른이 불러서 나가는 애, 뭐가 궁금한지 자꾸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애, 아까 나갔다가 들어오는 애, 이번엔 참다 참다 화장실로 향하는 애... 그때마다 문이 살짝 열리고 그 틈으로 산골마을 특유의 쨍하게 시린 바람이 매섭게 들어왔다. 그중 누군가는 문을 끝까지 닫지 않고 훌쩍 나가버리기도 한다. "아, 누구 꼬리가 이렇게 길어!" 원성이 들려오면 그제야 후다닥 닫으러 되돌아간다. 그게 누구냐면, 나다.


한 번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골목이 있는 밖으로 통하는 구조의 작은 원룸에 혼자 세 들어 산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밤새도록 문을 화알짝 열어 놓고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누가 골목을 지나다가 슬쩍 고개만 들이밀어도 나와 눈이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엔 혹시나 간 밤에 누가 침입을 한 것일까 겁이 나서 집안을 둘러보았지만, 내가 문단속을 하지 않고 잔 것이 맞는 듯했다. 골목 한가운데에서 잔 것과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달까.


그뿐이랴, 내가 챙기지 못하고 단속하지 못하는 것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문과 얽힌 에피소드도 많다. 외출하고 돌아오니 문에 열쇠가 그대로 꽂혀 있는 경우도 있었고, 키를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서 들어가지 못하기도 하고 말이다. 사람들은 "은근히 허당이야."라는 평을 하곤 한다. 나는 속으로 '은근히'라는 말에 안도한다. 실제로는 허당 그 자체이니까. 그날은 아이와 함께 외출을 했다가 마트에서 무언가를 잔뜩 사 온 날이었다. 차에서 내려 아이를 챙기고, 물건들을 꺼내 들고는 문을 닫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올라왔나 보다. 남편에게 닫아달라고 말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이런 내가 무사히 긴 세월을 통과해 온 것이 감사할 노릇이다.


문을 열고 나온 후 다시 문을 닫는 것, 집 안으로 들어갈 때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는 것, 가위를 쓰고 다시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 같은 사소하고 세심한 습관이 부럽다. 머릿속 생각이 어딘가로 정처 없이 향하고 있을 때, 내가 잡은 문의 손잡이를 놓치고 만다. 한없이 꼬리가 늘어진다. 연습이 더 필요하다. 지금 현재, 이곳에서, 잠시 멈추고, 방금 열고 나온 문을 닫는 연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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