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나만의 공간
아홉 살 때였다. 엄마가 물었다.
"이번에 시험 잘 보면 뭐 해줄까?"
나는 책상을 갖고 싶다고 했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고, 그릇을 치운 자리에 책을 펼쳐놓고 공부를 하다가, 밤이면 이부자리를 펴기 위해 접어 놓아야 하는 '밥상'말고, '내 책상'.
좁은 단칸방에 엄마와 아빠, 나와 남동생 네 명의 식구가 함께 살던 우리 집엔 가구가 몇 개 없었다. 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장롱과 아빠가 직접 만들었던 TV장, 그리고 잡다한 물건들이 수납되어 있는 선반 정도가 다였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에 내 책상이 놓일 자리를 살며시 그려보았다. 엄마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했다.
내가 얼마큼이나 기대하고 설렜던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시험을 꽤나 잘 봤다. 엄마는 기뻐했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책상 말고 이모네 집에 가는 건 어때?
나는 이모네 집에서 사촌언니들과 노는 걸 좋아했다. 이모네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동네에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 순간만은 영원히 잊히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종종 그때 내가 시험을 잘 봤던 것과, 약속한 책상을 사주지 못해도 순순히 받아들였던 착한 딸의 태도를 뿌듯하게 떠올리곤 했다. 어린 나는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에서 내 책상을 갖는 것이 애초에 무리라는 것을.
그 후 열세 살쯤 되었을 무렵에는 상황이 더 좋지 않았다. 여전히 단칸방에 살고 있었고 나는 성인만큼 자랐다. 엄마가 운영하던 슈퍼마켓 한 구석에 딸린 작은 방에도 내 책상은 없었다. 사춘기 소녀는 책상뿐 아니라, 나만의 공간이 간절했다. 그러나 현실은 엄마가 쿡쿡 웃으며 아빠에게 내가 쓴 일기의 내용을 전하는 말을 잠결에 듣게 되는 것이었다.
밤이 되어 한줄기 빛도 들지 않는 암흑 속에 누워 있으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뒤척일 때마다 부대끼는 식구들의 나직한 숨소리 속에서, 이다음에 죽으면 절대로 관 속에 묻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그 무렵 부모님은 아파트 청약에 몇 년째 실패 중이었다. 나는 틈만 나면,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아파트 평면도가 그려진 팸플릿을 펼쳐놓고 내가 그 아파트에 사는 모습을 상상했다.
학교에 다녀오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안방에 있는 엄마에게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열어 물을 마신다. 그리고 내 방으로 들어가 내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는다... 잠을 자려고 누워서도 그 장면은 계속됐다.
그리고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드디어 내 방, 내 책상, 심지어 내 침대도 생겼다. 엄마 눈을 피해 몰래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다가 공부 안 하고 뭐 하냐고 호통을 맞을 일도, 뒤돌아 앉아 아무도 못 보게 쓴 일기나 소설을 가족들이 훔쳐볼까 봐 조마조마할 일도 없었다. 나는 문을 닫고 혼자서 시를 쓰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할 부끄러운 마음을 노트에 써 내려가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책상은 완벽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그 후 어디를 가더라도 '내 책상'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비록 공부를 잘하지도, 멋진 글을 써내지도 못했지만 내가 가장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은 내 책상 앞이다. 지금도 여전히 책상에 대한 로망은 계속되고 있다. 눈을 감고 도서관 열람실의 커다란 책상이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나만의 서재를 꿈꿔본다. 도서관 책상이 들어가려면 집이 몇 평 정도 되어야 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