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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pr 27. 2022

유리궁전,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유리 궁전, 아미타브 고시


소위 '3세계'라고 불리는 국가들, 우리에게는 가난한 나라 혹은 개발도상국이라고 알려진 나라들이 있다. 유리궁전의 배경은 버마와 인도  말레이반도를 아우르는 동남아시아의 식민시절이다. 우리도 아시아의 식민지였음에도  시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같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문학을 읽기 시작했던 것은 10  , 국제개발협력 활동을 하는 동료들과 함께 그들을   이해해보자는 취지로 그중에 유명한 작품들을 골라서 읽었다. 거의 초기에 읽었던 작품이 유리 궁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리뷰를 남겨보려고 한다.


왜 역사책 대신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이야기는 1885 영국의 버마 침공 시기부터 시작되어 1996 미얀마에서의 아웅산 수치 여사의 연설 장면에서 끝난다.  권의 책에 100년이 넘는 세월을 담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제국주의와 세계전쟁으로 진통을 앓고, 많은 식민국가들이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싸워나가는  과정의 한가운데에서 버마의 마지막 왕조, 라즈쿠마르와 돌리, 우마, 사야 존의 가족들이 겪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다. 우리가 보아왔던 역사책에는 없는 버마, 인도, 말레이의 현대사와 역사책에서는 감히   없었던  시대를 사는 개인들의 처절한 고뇌가 그려져 있다. 제국주의가 짓밟아 놓은 식민지 역사의 흐름에 대해 알고 싶다면 바로  책을 읽으면  것이다.


사람들은 나라를 빼앗기고, 가족들을 잃고, 전쟁을 겪는 와중에도 저항하고, 현실에 타협하기도 하고,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며 무엇을 위한 삶인지 고뇌한다. 그리고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또 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우리 역시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인도인과 버마인들의 삶에 거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역사책 대신 소설을 읽어야 하는가? 아미타브 고시의  작품은 너무나 매혹적이어서   페이지만 읽어도 저런 질문을 하지 않게  것이다.

- 타임스 추천사 -



침략, 그리고 100년의 이야기


 책에는 등장인물들이 굉장히 많지만 책을 덮고 나서도  많은 인물들이 입체적으로 살아서 생생하게 머릿속에 그려지는  같다.


라즈쿠마르와 매슈는 식민시절과 전쟁을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독단적으로 사업을 끌어가면서 그에 필연적으로 희생되는 약자들의 삶을 정당화하는 인물들이다.


그러한 그들의 대척점에 제국주의의 침탈을 비판하고 인도의 독립을 주장하는 우마가 있다. 우마는 남편의 생활방식에 맞추어 살아가던 인도의 평범한 주부였으나, 돌리와 우정을 쌓으며 성장해 가는 인물이다. 돌리는 차분하고 냉정하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강인한 인물로 그려진다.


라즈쿠마르, 매슈, 돌리, 우마의 이야기는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는 버마와 인도에서 벌어지는 혼란과 이를 극복하려고 하는 당시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들의 다음 세대, 라즈쿠마르와 돌리의 둘째 아들 디누와 매슈의  앨리슨, 우마의 조카 아르준의 이야기는 세계전쟁이 발발하고 식민지들이 독립운동을 격렬하게 진행하던 시절에 이념을 따르고 전쟁에 뛰어든 젊은이들의 이야기다.


아무도 굶지 않고, 아무도 가난하지 않고, 누구나 글을 읽고   아는 우리 황금의 버마에 결핍과 무지, 기근과 절망만이 남게  거예요. 우리는 소위 발전이라는 미명에 갇힌 최초의 사례예요.


영국의 침략으로 몰락한 버마의 수파야트라왕비의 말이다. 이것이 식민지배의 본질을 말해주는  같다. 당시 버마로 불렸던 미얀마는 지금도 가난한 나라로 분류되며, 최근에는 독재 군부에 저항하며 민중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식민지배의 역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슈는 말레이에 거대한 고무농장 사업을 운영한다. 당시에는 남반구 국가들의 원자재를 무분별하게 탈취해가던 시기였고, 발 빠르게 유럽의 구미에 맞는 사업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매슈가 "이건 나의 자그마한 제국이에요."라고 말하면서 고무나무 농장이 질서 정연하게 갖추어져가고 있음에도 그 길들임에 저항하는 나무가 있다는 설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그러한 나무를 반항기를 타고났다고 설명한다. 식민지 국민이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지는 장면이다.


19세기의 미국과 유럽 문학이 우리에게 훨씬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방식도 그들의 기준에 맞춰져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버마인의, 인도인의 말에 귀 기울여 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잃어버린 지평선'을 읽을 때 매우 불편함을 느꼈던 이유다.


우마의 조카 아르준이 영국군의 인도 장교로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외부적인 도전을 받고, 내부적으로 균열되어 가는 과정도 기억에 남는다. 식민시절에 태어나 식민교육을 받고 자라 직업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는 아르준에게 하디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이라기보다 그저 하나의 수단이나 도구에 불과한 느낌이야. 그래서  자신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게 . 어떻게 하면 다시 인간이   있을까?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누구나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한다. 그리고 가끔은 깨닫지 못했다면  편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건너오면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앨리슨은 전쟁 중에 도망을 다니다가 결국 목숨을 는다.


그녀로서는 반격하지 않고 묵묵히 참는다는 것은 있을  없는 일이었다. 앨리슨은 숨을 거두기 전에 그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것이 너무 후련했다.


앨리슨은 포로를 지키는 병사와 사탕을 나누어 먹었던 돌리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떠올리지만,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면서 비겁한 목숨을 이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장면이 종종 떠올랐다. 내가 실패나 손해를 감수하면서 결국  고집을 밀고 나갈 수밖에 없을  말이다. 여전히 무엇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라즈쿠마르와 우마가 노인이 되어 아름다운 결합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이다. 무엇을 의미하는 장면일까? 침략과 전쟁과 분열로 얼룩진 20세기의 상처에 대한 치유를 나타내는 것이었을까?



지금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의 눈에 세계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아직도 미얀마에서는 억울하게 죽음을 맞는 민중들이 있고, 독재와 가난과 분쟁으로 여전히 국가의 보호도 관심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구 상에는 훨씬 더 많다. 그들에게 코로나 시대는 더욱 가혹할 것이다. 당장 무엇인가를 해 줄 힘은 없지만, 잊지 않고 지지해주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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