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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작 Apr 29. 2022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상처와 분열의 아이덴티티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


언젠가 신촌의  작은 서점에서 '존재의  가지 거짓말'이라는 책을  왔다. 그리고 어느 토요일, 하루 종일  소설을 읽었다.  읽고 나서 다시  페이지로 돌아가 한번  읽었다.


나는 한참 동안  가지 거짓말이 뭘까 고민했는데(거짓말인  같은 것이 너무 많아서), 그럴 필요가 없었던 것이  책은 '커다란 노트', '증거', ' 번째 거짓말'이라는 제목을 가진  개의 소설을 합본해 놓은 책이었고, '존재의  가지 거짓말'이라는 제목은 작가가 지은 제목이 아니었다. 어쨌든 작가가 3부의 제목을 ' 번째 거짓말'이라고 붙였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되지만, 번역하면서 출판사에서 원제를 바꾸는 바람에  혼란스러워졌다.


소설은 1부에서는 어린 쌍둥이 형제가 '우리는'이라고 지칭하며 서술하다가 2부에서는 루카스를 중심으로하는 3인칭 시점으로 바뀌고, 다시 3부에서는 1인칭 시점으로 바뀐다. 이렇게 시점이 이동하는 방식은 요즘 소설에서 자주   있는 방식인데, 같은 상황을 다른 시각으로 전환해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인  같다. '존재의  가지 거짓말' 경우에는 시점이 바뀌면서 이야기 자체가 부정되기도 한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었다.


1부를 읽고나서 2부로 넘어가면 1부의 내용이 의심된다. 쌍둥이가 정말로 있었던 것인가? 그리고 3부로 넘어가면 혼란스러워진다. 2부까지의 내용이 거짓말인가, 3부의 내용이 거짓말인가? 거창한 제목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서술하는 주체와 등장인물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에 붙인 제목이었을까?




제1부, 비밀노트


나는 원제인 '커다란 노트' 내용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전쟁 중에 작은 국경도시의 할머니에게 맡겨진 쌍둥이들이 들은 '커다란 노트' 작문 연습을 시작한다. 주관적인 판단이나 감정을 삭제한 문체로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 적기로  쌍둥이들의 글처럼, 노트는 비밀노트가 아니라 그저 커다란 노트라고 해야 맞다.


어린아이가 하는 말처럼 천진하고 때로는 유머러스하기까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전개되는 내용은 끔찍하고 충격적이다. 전쟁이 남기는 참혹함, 이념이나 전쟁과 상관없이 생계를 이어가야만 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삶이 단편영화처럼 지나간다. 어린시절 순간순간들의 기억이 깜빡깜빡하고 떠오르듯이.


누구의 이름도 나오지 않으므로 정확하게 누구인지 모르고, 무엇이 어떻게  일인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인물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전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사건들의 충격을 오롯이 받을  밖에 없다. 나는  번인가 잠시 책을 덮고 울었다.


쌍둥이들은 자신들을 할머니집에 남겨두고 간 엄마를 추억한다. 엄마가 했던 사랑의 말들이 떠오른다. 그러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정신을 단련 하기로 한다. 엄마가 했던 말들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도 차츰 의미를 잃고 고통이 줄어든다.


그들은 구걸연습을 하기도 하고 장님과 귀머거리 연습도 한다. 구걸하는 쌍둥이에게 사과, 과자, 초콜릿, 동전 등을 던져주던 사람들은 '구걸하는 기분이 어떤지, 사람들 반응이 어떤지 궁금해서' 구걸한다고 말하자 건방지다며 소리를 지른다. 쌍둥이들은 사람들이  것들을 모두 풀숲에 버린다. 그러나 머리를 쓰다듬어 줬던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고 말한다. 장님과 귀머거리 연습을 통해 얻은 것은 '장님은 단지 시선을 내부로 돌리면 그만, 귀머거리는 모든 소리에 귀를 닫아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한 몸처럼 살아가는 쌍둥이가 나약해지지 않도록 단련하는 이 장면들은 기괴하면서도 슬프다. 쌍둥이를 둘러싼 어른들은 그들을 가르치려들지만 하나같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약한 어른들처럼 보인다. 그 나약함이 때로는 잔인함으로 변한다. 쌍둥이들의 단련은 나약해지지 않음과 동시에 잔인해지지 않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제2부, 타인의 증거


루카스의 청년시절을 서술하고 있는 2부는 가장 전형적인 소설의 흐름을 취하고 있는 장이다.  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쌍둥이와 등장인물들이 이름을 갖는다.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나자 사건들의 서사가 또렷해지고 인물들의 세세한 과거사와 그들의 감정이 짙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읽는 사람은 오히려 점점 커다란 물음표를 그리다가 미궁 속으로 빠져버린다.  뒤표지에 "독자는 어느 페이지, 어느 줄에서나 문득 자신이 읽은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은 없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것이다."라는 ' 켕젠 리테레르' 추천사는 정확히  번째 이야기부터 실감하게 된다.


전쟁은 끝났다. 쌍둥이들은 1부에서 한명은 국경을 넘어가고, 한 명은 마을에 남는다. 루카스와 루카스를 둘러싼 인물들은 전쟁이 남긴 상흔을 침묵 속에 감추고 비틀린 일상을 살아간다. 모든 인물이 마치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웅크리고 있을 것만 같다. 마음 아픈 이야기와 사건들이 계속된다.


루카스는 집에서 쫓겨난 야스민의 아이 마티아스를 자식처럼 키운다.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클라라를 사랑한다. 노트와 연필을 사러 다녔던 서점 주인 빅토르는 글을 쓰겠다며 서점을 루카스에게 팔고 떠난다. 아이와 함께 서점을 꾸려나가는 루카스의 일상은 아슬아슬하다.


마티아스는 영리하지만 장애를 가졌다. 스스로의 존재를 확신하기 위한 질문을 끝없이 던지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임을 일곱살의 아이는 깨달아버린다. "똑똑한 건 아무 소용도 없어. 잘생기고 금발인 것이 중요해." 아이의 상처가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남편의 억울한 죽음으로 삶이 망가져버린 클라라와의 사랑도, 상처 받은 사람의 끌림이었을지 정말 사랑이었을지 루카스조차 알지 못한다. 청년 루카스의 삶은 아이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클라우스가 돌아온다.



제 3부, 50년 간의 고독


' 번째 거짓말'. 읽는 내내 혼란스럽게 했던 '진실' 클라우스와 루카스, '' 의해 서술된다. 그러나 지독한 고독을 짐작케 하는 40  간의 삶은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다만 거짓말들 속에서 진실을 하나씩 가려내는 작업을 하다가 무의미한 일임을 깨닫는다. 소설의 흐름상 1부와 2부의 이야기는 3부에서 허구로 드러난다. 그러나 3부조차 허구가 아닐까, 그것은  번째 거짓말이니까 말이다. 사람은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 한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믿고 싶은지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책이 있었는데 오래전에 읽었던 '파이 이야기'. 마지막 장을 덮고 다시  장으로 돌아가지 않을  없는 이야기다.


작품 해설을 읽다 보면 계속해서 '아이덴티티' 대해 언급한다. 3부에서 ''라는 1인칭 화자를 등장시킴으로써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의한 아이덴티티의 회복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쌍둥이와  주변 인물들이 과연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회복했다고   있을까? 마지막 장까지 인물들의 삶은 뿌연 안갯속에서 진실과 거짓의 혼돈을 헤매다가 끝이 난다.



발견할  아무것도 없어.
너는  찾고 있는데?"

, 내가 다시 돌아온 것도  때문이야."

 형제가 웃었다.

" 때문이라고? 너도  알잖아.
나는 단지 꿈일 뿐이라는 .
그걸 받아들여야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어디에도."


인문사회 서적으로는 얻을  없는 '사회' '개인' 긴밀한 연결고리를 읽는 감수성은 오직 '문학'으로만 해소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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