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뭘 그렇게 자꾸 빛나려고 하세요? 그냥 벌레 하세요.
나는 반딧불 가사 © Peermusic Publishing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거나
언젠가는 성공하고 부자가 될 줄 알았는데
가혹한 현실에서 녹록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는 가사다.
이 노래의 유튜브 채널을 보면 몇 천 개가 넘는 댓글에
'위로가 된다, 희망을 가져 본다'
'맞아 괜찮아, 나는 빛나니깐'등의 댓글이 수두룩 하다.
필자는 운전 중에 처음으로 이 노래를 들었는데
이 후렴구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비웃음은 아니었다.
SNL을 보며 빵 터져서 웃는 웃음도 아니었다.
피식+미소+웃음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잘 살고 성공한 부자인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질투를 하는 벌레이면서 “눈 부신 벌레"라며 자존감에 위로를 받는다.
“그래도 빛나니까”라며 “희망을 가져본다”라고 한다.
"나는 벌레긴 해도 개똥벌레(반딧불과로 한국에서 불리는 이름)라서 빛나니깐, 그나마 다른 벌레보다는 괜찮잖아" 이런 정신 승리적 가사에 감동받고 호응하는 댓글을 보면 그저 암담할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하찮은 벌레라고 하면서 빛을 내는 반딧불을 우위선상에 두고 있다.
그나마 나는 빛나는 벌레니깐 괜찮다며 위로가 된다고 한다. ㅎㅎㅎ
아니, 뭘 이렇게 까지 비약하냐고?
그냥 우리 모두가 반딧불이면 되지 않냐고? 흠...
그럼 생태계가 무너져 결국 우리 모두 죽고 말 것이다.
현실적으로 자연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라도 우리의 자식,
조카들이 떼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가 빛나는 반딧불(수컷 반딧불)은 되지 못한다.
그럼 또 여러분은
“나는 나쁜 균이나 옮기는 바퀴벌레야”
“빛도 나지 않고 소음만 내는 귀뚜라미“ 라며 자책하고
“나는 남들 다 내는 그 작은 빛도 못내 ㅠㅠㅁ(나는 수컷 반딧불도 아니야ㅠㅠ)”라며 한탄을 한다.
나를 거지라고 가정해 보자.(여기서 말하는 거지의 기준 : 노숙하며 구걸하면서 생활하는 사람)
누군가 거지인 나에게
"당신은 거지네요?"라고 하면
"네. 맞아요. 저는 거지예요"라고 답하고
여기서 끝-이다.
거지가 된 이유를 설명, 해명,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지라서 뭐? 내가 피해준거 있어? 눈은 장식이야? 라며 세상에 불만을 가지거나 타인과 대적하려거나,
'나는 거지니깐 루저야, 사람들 눈에 띄지 말고 숨어 다녀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벌레이면
"너는 벌레구나?"라고 한다면, "응 난 벌레야."
"너는 부자구나?" "응 난 부자야."
그냥 이게 전부다.
성별이 여성인 내가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여성인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너무도 당연히
"네, 여성이예요"라고 답할 것이다.
이 질문에 발끈하거나,
내가 여성인 이유를 설명하거나,
여성이라고 죄책감을 가지거나 해명하지 않듯이
나의 존재 자체를 일말의 의심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반딧불” 가사를 아래처럼 바꿔 보니 필자의 마음에 딱 든다!!
<번외>
필자가 "나는 반딧불"가사에서 시적이라 좋아하는 가사이다.
이 부분은 작사가의 문학적 재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출처 : 소스: LyricFind 작사: Joong SIk J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