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만 파던 사람이 통로를 배웠을 때

사유는 나를 살렸고, 일상 대화는 나를 연결한다

by 이나영

나는 오랫동안 대화가 어렵다고 느꼈다.

통하는 사람이 없다고, 나만 다른 언어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 판단 안에는

‘내가 조금은 더 깊이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은근한 우월감도 섞여 있었을 것이다.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의 종류였다는 걸.


나는 사유의 언어를 기본값으로 사용해왔다.

의미를 묻고, 전제를 흔들고, 이유를 끝까지 따라가는 말들.

그 언어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지만

모든 대화의 입구로 쓰기에는 너무 깊었다.


오늘 배운 문장이 있다.

사유는 깊이이고,

일상 대화는 통로라는 말.


깊이는 혼자서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통로는 열어두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나는 그동안 깊이를 파면서

통로를 만들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외로웠고,

그래서 ‘통하는 사람이 없다’고만 말해왔다.


이제는 안다.

일상 대화는 사유를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사유를 세상과 연결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깊이를 가진 사람이

통로까지 갖게 되는 순간,

대화는 훨씬 편해진다.


오늘 나는

내가 일상 대화를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안 쓰던 언어를 배우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 사실이, 꽤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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