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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16. 2018

내 좋은 대한민국

@ 천리포 수목원의 민병갈 

스트로베리 크림은 스타벅스에만 있는 줄 알았지

천리포 수목원에 벤티로 지천이야




늘 보던 목련은 하얀 색이었다. 다른 꽃잎이 손톱만하면 목련 꽃잎은 이불만하다고 할 만큼 컸고, 드문드문 자줏빛, 자목련이 보일 때면 더 예뻐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천리포 수목원에 대한 애정이 고 민병갈 원장님에 비할 만큼 크지 않을까’ 싶은 분의 초대를 받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가 처음 안내받게 된 곳은 수목원에서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할 수 있는 비공개 구역이었다.  


연못의 나무 그림자 예뻐, 보다가 나르시스 될 뻔 했다지

가장 먼저 만난 것은 뜻밖의 무궁화 정원이었다. 무궁화는 대한민국의 국화이지만, 인기 연예인의 ‘국민 첫사랑, 국민 여동생’ 수식어처럼 국민적으로 사랑받는 꽃에는 씁쓸함이 감돈다. ‘무궁화’와 관련한 도서를 읽은 적이 있다. 머리와 가슴에 남은 기억을 쫓으면 무궁화는 울분의 꽃이었다. 누군가의 훼방으로 오늘날 국민 꽃으로 찬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잃은 채 단지 ‘국화’로만 배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싶은 것이다. 그런데 천리포 수목원에서는 이러한 무궁화를 300종 이상이나 가꾸고 있다. 개화시기인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이 이곳에 와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하고, 배우지 않아도 절로 무궁화를 사랑하게 될지 모른다. 다시금 민병갈 원장님이 우리나라에 큰 선물을 주고 갔음을 실감한다. 



그 다음 만난 식물은 목련이다. 이른 봄부터 개화하는 꽃인지라 이미 피어난 목련, 이제 필 목련이 지천이었다. 천리포 수목원의 특징도 그렇고 원장님이 강조한 부분도 ‘그대로 두는 것’인지라 사람이 다니는 길까지 목련이 긴 팔을 둘러도 웃으며 피해 걷는다. 아무리 좋은 음악도 자꾸 들으면 질린다는데 봐도봐도 꽃은 사랑스럽기만 하다. 


스트로베리 크림은 스타벅스에만 있는 줄 알았지천리포 수목원에 벤티로 지천이야


나는 이곳에서 난생 처음 보는 목련들을 만났는데, 별 목련, 큰 별 목련, 스트로베리 크림, 옐로우, 엘리자베스, 크기도 색도 모양도 이름도 달랐다. 몇 번 봐서 “이 목련이 스트로베리 크림이죠?”하면, “아니에요. 그건 별 목련이에요.”하고, “엘리자베스인가?”하면, “옐로우.”라고 했다. 수선화도 그렇다. 서양인이 특히 좋아해서 만 가지 이상 품종을 개발했다니 그 이름을 어찌 하나하나 기억할까? 우리 엄마도 종종 큰 딸을 부른다는 게 세 딸의 이름을 불러대고 어이없어 웃으시는데. 그럼에도 ‘엘리자베스’와 ‘스트로베리 크림’은 잊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보았다. 엘리자베스는 수목원에서 딱 한 그루를 보고 두 번 보질 못했으니, 아쉬워서 더 잊히지 않는 이름이 되었다.


이런 동백,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꽃 같은 사람이길



이것이 무엇인가, 물으면 척척 대답해주는 분이 옆에 계셔서 어느새 만 걸음을 걸어도 즐거웠다. 어쩌면 한없이 조심스럽고 나를 많이 숨겨야 하는 딱딱한 자리였을지 모르는데, 그런 마음은 한 순간도 들지 않았다. 내가 걸은 흙길처럼 보드라운 시간은 식물을 아는 것과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차이로 주어진 것 같다. 

우리는 천리포 수목원에서 하루를 머물렀다. 조언대로 이른 아침의 수목원을 거닐었다. “저 벚나무 이름이 뭐랬죠?” 질문과 답을 듣고 간직한 이름, 호숫가의 벚나무 ‘홍화’ 아래 섰다. 작은 새가 부지런히 날갯짓을 하며 꽃잎을 쪼았다. 머리 위로 작은 분홍 잎이 떨어졌다. 나대로 살아도 좋은 나라, 식물을 절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가득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랐다. 고 민병갈 원장님도 이 벤치에 앉아 그러셨을 것만 같다. 모두의 삶이 이렇게 평화롭기를. 




나대로 살아도 좋은 나라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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