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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17. 2018

점점 작아지고, 내 안에서 멀어지길

강릉단편 #1

     



소나무 숲 사이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소진은 이 길이 맞는가 고개를 갸우뚱하다 우산 끝에 시선이 가 닿았다. 빗방울을 그러모아 떨어뜨리길 반복하는 우산은 조용히도 제 역할을 하느라 분주했다. 비가 오며 숲은 길을 들어섰을 때보다 더욱 진해져 있었다. 우산을 든 손이 점점 차가워졌지만 소진은 걸음에 속도를 내지 않았다. 제 안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여기까지도 따라온 묵직한 무언가가 점점 작아지고, 그 안에서 멀어지길. 소진은 우산 끝에 매달린 빗방울 너머로 갈 길을 넘겨보듯 점을 찍은 채 소나무 숲길을 벗어났다.

길 건너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본 카페가 보였다. 매트에 쿵쿵 신발을 털자 모래가 후득 떨어졌다. 소진이 입장하길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내밀자마자 카운터에서 인사가 건네졌다. 

“어서오세요.” 

여름도 가을도 아닌 계절의 경계에 비가 내리니 오슬오슬 한기가 전해져오는 듯했다. 소진은 출입구 옆에 우산을 꽂아두고 카운터에 다가섰다.

“아메리카노, 따뜻한 것으로 한 잔 주세요.”

“네. 자리에 앉아 계시면 차는 가져다 드릴게요.”

소진은 남자가 계산을 하는 동안 카페를 바라보았다. 구석진 자리에서 책을 읽고 있는 여자가 유일한 손님인 것 같았다. 

“2층에도 자리가 있어요. 저기 계단 따라 올라가시면 돼요.”

카페에서 일한 지 오래되었거나 혹은 타고난 배려심인지 남자는 계산에 집중하면서도 소진이 카페를 둘러보는 모양새를 놓치지 않았다. 남자가 가리킨 곳에는 2층으로 향하는 나무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간 소진은 짧은 탄성을 질렀다. 통유리 밖으로 바다가 선명하고도 가까이 보였다. 긴 바에 앉아 소진은 바다를 바라보았다. 저만치 파도가 만들어져서 해변에 다가서고 부서졌다.      

“혼자 여행 오셨나 봐요?”

나지막한 물음과 함께 여자가 소진 앞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1층에서 책을 읽고 있던 유일한 손님이었다. 대화가 익숙한 사람 특유의 말투가 느껴졌다. 주어도 꼭 받아야겠다는 다짐이 없는 말투였다. 

“아, 네. 그냥 바다가 보고 싶어서...”

소진의 대답에 여자가 입꼬리를 가득 들어올렸다. 부드럽게 패어진 주름이 인상 깊었다. 

“강릉엔 혼자 찾아오는 여자 분이 많아요. 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어요.” 

“아, 네.”

중년의 여자가 혼자 여행을 온 것은 언제일까? 소진은 자신이 무언가 질문을 할 차례인 것 같아 머릿속에 생각을 물었다. 그런 고민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여자는 소진의 짧은 반응이 끝나기도 전에 재차 물었다.

“다음 행선지는 정했어요?”

“아뇨. 갑자기 온 거라, 여기 있다가 집에 올라갈 것 같아요.”

“음. 제가 추천 하나 해도 될까요?”

소진은 굳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 ‘네’라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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