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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May 18. 2018

성난 파도 앞에서 공중그네를 타는 여자

강릉단편 #2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허난설헌 생가가 있어요. 가본 적 없다면 강릉까지 온 김에 가보면 좋을 거예요.”

“허난설헌 생가요?”

소진은 몇 개 떠올랐던 명소들 중에 이곳이 없어 의외라는 듯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딱히 재미있는 건 없지만, 간 것을 후회할 일은 없는 곳이죠.”

여자의 입가에 예의 부드럽게 주름이 패였다. 습관처럼 말끝에 입꼬리를 올리면 저런 주름을 가질 수 있을까? 고집스럽게 패인 그런 주름 말고. 소진은 말갛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시간 되면 꼭 가볼 게요. 고맙습니다.”

“혹시나 집에 가는 시간이 많이 늦어지면 다시 우리 카페로 와요. 게스트하우스도 같이 하니까 하룻밤 자고 가도 좋을 거예요.”

네. 라고 하면서도 소진은 자고 갈 일은 정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가 추천해준 허난설헌 생가나 둘러보고 올라가면 터미널에서 서울까지 가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여자가 자리를 떠나고 소진은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푸르디푸른 강릉 바다는 소진이 걸어온 처음부터 이곳까지도 끝날 줄 모르고 펼쳐져 있었다. 보이는 곳에는 갈매기 무리가 온기를 나눠갔듯 앉아 사람 없는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허난설헌, 허초희.”

소진은 성과 이름을 끊어 불러보았다. 경포대로 소풍을 왔던 그 시절에 낯설고 어여뻐서 오래 입가에 맴돌았던 이름이었다. 조선시대의 익히 알려진 몇 여성에 신사임당, 논개, 황진이, 그리고 난설헌이 있다. 하나같이 조선 중기 때의 재능 있는 인물들이다. 성난 파도를 앞에 두고 화려한 공중 그네를 타는 모양새처럼 여자들의 재능은 뛰어났으나 아슬아슬 위태로웠다. 그 중에서도 난설헌이 그랬다. 

“가봐야겠다.”

한참을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던 소진은 누군가에게 고하듯 자리를 일어섰다. 언제인지 비는 그치고 햇살이 바다에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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