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어긋난 것일까? 정보의 홍수라고는 하지만 매순간 쏟아지는 뉴스들은 이게 사람사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인가 싶다. 군대 보낸 자식이 다른 사람 구하는 일에 나섰다가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중학교 1학년. 만으로는 11살일지 모를 앳된 소녀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 아이들에게 지하주차장에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폭행을 당한다. 불볕더위에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이 그 더위 속에서 죽어 나간다. 냉방병 때문에 감기에 걸린 직원도 있는데 이게 이승인지 저승, 지옥인지 모르겠다.
나는 학창시절에, 정확히 중3 때 남자 담임선생님한테 교실에서 따귀를 맞았다. 고1 때는 운동장에서 남자 체육 선생님에게 발길질을 당했다. 둘 다 내 뒤에 있는 애가 말을 걸어서 돌아본 것인데 어쩌면 내가 그리 만만하게 생겼는지 그런 취급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겪었다. 아마, 그 두 선생님은 이 일을 티끌만큼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체육선생님은 그때도 나이가 있었으니 지금은 이 세상 분이 아닐지도. 그런데 지금 선생님들은 언감생심 애들 체벌(나는 폭력이었음) 생각은 커녕, 말조차 함부로 할 수 없단다.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떠받들고 사는 세상이 되어 그런가? 뺨 맞고 발길질 당하는 것은 차치하고 누가 봐도 억울한 일을 겪었는데도 내 편 하나 안 들어주던 반장만 예뻐라 했던 초등학교 6학년 때 나이든 여자 담임 얼굴이 지금까지 생생히 기억나는데. 그 선생님들 모두 별일이 하나도 없었다. 부모 말보다 선생 말이 더 무서웠던 시절이었고, 부모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의 선생님들의 말도 안 되던 권위를 되찾아올 이유는 없겠지만, 적어도 아이가 그릇된 행동을 했을 때 진정 꾸지람할 수 있는 권위는 있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자식 귀한 만큼 남의 자식 귀한 것을 알면 그리 할 수 없을 텐데.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나선 사람이 적어도 괜히 나서서 손해를 봤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게 해야 한다. 이렇게 더운 날, 야외에서 적절히 쉬는 시간을 챙겨주며 일을 시키든지, 에어컨을 가동할 수 없으면 강풍기라도 구비를 하든지, 사람을 더 구해 근로시간을 나눠가며 교대로 일을 시키든지, 어찌하여 사람이 더위 속에서 무자비하게 죽게 하는가. 그에게 일을 시킨 사람들은 그 현장이 그리 더운 것을 몰랐을리 없다. 모든 사건사고는 이건 내 일이 아니다. 그건 내 권한 밖의 일이다. 그 순간을 자신이 손해 보는 것 없이, 야단 없이 무마하려고 할 때 빚어진다. 따지고 보면 하나하나가 다 그렇다. 비단 뉴스에 소개되는 대형 사고뿐만 아니다. 우리네 일상에서 사소하게 했던 말과 행동에 위험한 결과는 예고되어 있다. '나한테 그런 말해도 소용없어요. 나는 힘이 없어요. 위에서 시켜서 나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에요.'
외면하고 침묵하지 말라. 나밖에 모르는 자들의 세상에서 누구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으니. 생은 스스로 돕는 자에게 복을 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