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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Jul 21. 2018

속초를 간직하다. 좀 더 다른 것들로.

@오경아 정원학교 그 외



이틀동안 속초에서 홍천까지를 다녀왔다. 

서울의 뉴스에는 기상 소식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는데, 30도는 우습고 40도에 가까운 고온이 사람들을 잡아먹을 듯 아스팔트를 뚫고 나왔더랬다. 그런 중에 바다가 있는 속초, 산이 푸른 홍천은 밤이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 이불없으면 잠을 못 이룬다니 다른 지역이 아니라 다른 나라 같았다. 

사진은 죽도해변

속초에서 맨 처음 들른 곳은 맛있는 물회를 파는 '청초수물회'였다. 이름이 자꾸만 청수호니, 청초호로 불려져서 말하기 전에 한 번씩 곱씹어야 했다. 몰랐는데 많이들 다녀가는 물회 전문집이라고 했다. 사실인즉 건물 전체가 청초수물회였다. 앞에는 주차를 돕는 분들이 나와 계셨고, 주말에는 틀림없이 대기인원도 있을 것 같았다. 

청초수물회 2인분, 소면과 밥 말아서 후루룩

속초에 가면 언제나 만석이니 중앙이란 이름으로 닭강정을 파는 속초중앙시장이 1순위였던 내게, 이곳 엑스포로는 처음 와보는 속초였다. 느낌이 사뭇달라서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으니 곧 물회를 내어준다. 꼬들하고 쫀득한 해산물이 입 속에 들어오니 시원하고 흐뭇했다. 싫어하는 멍게를 모르고 먹었지만 그냥 잘 씹어 삼켰다. 반찬으로 인절미가 나온 이유가 신기했는데, 물회 양념으로 얼큰해진 혀를 달래주기 위함인 듯 했다. 

저 멀리 에어컨이나 그늘을 피신처 삼아 일하고 있을 지인들에게 물회 사진을 전송해주니 다들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본다. 사진발도 있겠지만, 한 번쯤 들러봐도 좋을 곳이라고 여겨진다. 시원한 물회 국물에 후루룩 밥을 말아 먹고 일어나 오기 전부터 찍어둔 카페에 가기로 했다. 그곳은 '칠성조선소'로 할아버지에서 아버지때에 이르기까지 배를 만들었고, 아들이 카페를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속초 카페하면 이곳이 거의 첫 번째로 등장했다. 하, 그러나 찾아간 그 날이 카페의 정기휴무여서 아쉬운 맘 가득안고 다른 곳을 검색했다. '비단우유차'


테이블 없이 목재로 만든 기다란 의자가 쿨하게 놓여있다

이곳은 서울 염리동에 있던 카페인데 올 4월 속초로 이전을 했단다. 칠성조선소와 비단우유차는 아주 근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물회집에서는 차로 3분 거리가 된다. '비단우유차'는 문을 열었겠지? 하며, 2층 계단을 따로 올라갔다. 테이블 없이 목재로 만든 기다란 의자가 쿨하게 놓여있다. 손님이 와도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인사는 들리지 않는다. 아 카페의 컨셉이다. 비치된 메뉴판을 읽어보고 마음에 드는 음료를 종이에 적는다. '땡'하고 종을 치면 사장이 나와 주문을 받는다. 재밌다. 

비단우유차의 사장님은 속초로 오고 싶어 내내 부동산을 살펴봤다고 한다. 여기는 몇 년동안 방치된 건물로 이전에는 라이온스 사무실로 썼었다고 한다. 그래서 카페 문 앞에는 '회의실'이란 펫말도 그대로 붙어있다. 중경삼림 영화 음악이 흐르고, 갈색의 나무 집기, 무늬창, 낡은 손잡이에 사장님과 그의 파트너가 직접 편집한 디자인 패키지가 이곳의 고유한 감성을 잘 전하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이 건물도 언제까지나 유효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주변에 개발이슈가 있어서 사장님 맘과 달리 곧 매매가 될 수도 있고, 헐릴 수도 있다고 하고. 이래저래 속상했다. 서울 여기저기만큼이나 속초 여겨저기도 만만한 곳이 없다. 

비단우유차의 시그니처. 오리지널 300ml

주문한 오리지널 밀크티는 잘 밀봉한 플라스틱 컵에 담겨 있어 한 모금을 하고 뚜껑을 닫았다. 물회로 이미 배가 빵빵이라 저녁에 먹으려고 아껴둔 참이다. 빨간색으로 포장된 컵이 예뻐서 그날 먹고 잘 씻어 집에 모셔갔다. 여행을 올 때마다 위가 두 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봉브레드'도 들르려고 했는데, 주차를 할 수가 없어 그냥 돌아갔다. 나는 언제쯤 그 맛있다는 마늘바게트를 먹어보려는지 군침만 삼켰다. 대신 가는 길에 와이에이티라는 카페에 들렀다. 여기도 칠성조선소, 비단우유차와 더불어 속초에서 소문난 카페였다. 큰 마당이 있고 검은색 지붕이 모던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실내는 그리 크지 않았는데 몇 개의 테이블에는 이미 손님들이 자리해 있었다.  라임티와 뉴욕치즈타르트를 포장하고 하나 남은 테이블에 잠시 앉아 가기로 했다. 큰 창으로 보이는 돌담이 꼭 제주같다. 마을에는 예전부터 돌이 많았다고 한다. 타지에서 온 내게는 이곳에서 흔한 돌담도 예사롭지 않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큰 창으로 돌담이 보인다 @와이에이티카페

이윽고 일어나 오늘의 목적지인 '오경아 정원학교'에 도착했다. 이곳의 주인은 가든 디자인을 컨설팅하는 이다. 강의도 하고, 정원도 가꾸고, 컨설팅도 하고 아주 바쁜 분이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생각지 못한 정원이 드러난다. 논 있고, 밭 있고, 시골의 모습이 다 그렇지 뭐에 스스로 뺨을 친다. 그녀는 마당의 한 귀퉁이를 십자 모양으로 해서 텃밭 가드닝을 했는데 그 안을 채우는 식물들이 우리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도 많다. 고추나 당근이 그렇다. 당근의 풀이 그렇게 예쁘게 자라는지. 피터 래빗이 왜 그렇게 당근을 좋아했는지 알겠다. 당근이 관상용이라니? 몰라봐서 미안해.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식물은 '은쑥'인데 보들보들한 촉감이 이 세상 식물 같지 않다. 이름도 예쁘다. 오경아 선생님이 올해 2월에 발간한 저서를 넘겨보다가 이 녀석의 학명이 'Artemisia laciniata Willd'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 신화의 신 중 '아르테미스(Artemis)' 처녀여신을 특히 좋아하는데, 아르테미시아, 아르테미스가 무슨 관련이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더욱 애정이 갔다. - 이즈음에서 인터넷을 더 살펴보니 그리스 신화의 'Artemis(Diana)' 여신을 기념하여 'Linné'가 명명하였다고 한다.-는 것을 찾았다. 나무 한 그루를 보면 그 나무의 크기만큼 땅에 뿌리를 내린다고 한다. 식물 하나가 보여지는 게 다가 아니라는 뜻 같다. 오경아 선생님도 그런 말을 건넸다. 정원 일을 일단 몸으로 부딪혀서 터특해야지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고. 

강의실 앞의 자작나무. 하얀과 초록의 어울림

정원 일이 너무도 좋아 오랜 방송작가 일을 그만두고 영국에서 공부를 하게 됐을 때, 식물에 대한 이해없이 가든 디자인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식물 하나하나의 특성과 속성, 기후, 환경,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세심한 이해가 필요한, 과학 공부와 다름없다고. 그렇게 영국에서 7년을 보내고 속초에 터를 잡은 지 4년. 이곳 오경아 정원학교는 비록 학교라는 큰 타이틀을 내걸었지만, 식물을 알고 싶고, 정원 가드닝이 궁금한 누구나 와서 몇 시간, 혹은 몇 개월 함께 공부하고, 실습도 할 수 있는 곳이다. 속초가 그곳에서 너무 멀다면 지금까지 집필한 8권의 책을 봐도 좋겠다. 특히나 그녀가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책들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르테미시아'를 발견한 책이 마음에 쏙 들었다. 봄부터 겨울까지 정원 일을 초보 가드너의 입장에서 계획하고 배울 수 있는 지식이 아기자기하고 정성껏 기록되어 있다. 

나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의욕이 불끈들게 하는 도서 '정원생활자의 열두 달'


잠시 쉬는 시간이 되어 아까 안내받은 살림집 뒷 정원을 홀로 돌아보았다. 원래 이 집에 있던 밤나무와 감나무 외에는 선생님이 하나하나 새로 심고 가꾼 것들이라는데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일부러 가지치기를 했다는 감나무는 민낯도 예쁘지만 모처럼 화장한 여자처럼 또 다른 예쁨이 있었다. 벌레가 많이 꼬여 심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정원에 잘 어울릴겠다 싶어 들인 검은 줄기의 '오죽'도 근사했다. 대나무를 흔히 선비에 비유하는데, 나는 왜 자꾸 고고한 여자가 생각나는지 팔이 안으로 굽어 그런 건지, 오죽헌의 신사임당이 그려져 그런지 알 수 없다. 선생님이 한 번 만져보라고 했던 '램스이어' 앞에 앉았다. 우리말로 양의 귀이다. 어른들이 하얀색 털은 '흰둥이', 바둑무늬 있는 멍멍이는 '바둑이'로 이름 지은 이유와 같다. 방금 물을 한껏 마신 '램스이어'를 만져봤다. 우리집 강아지 '햇쌀'이 털처럼 보드랍고, 촉촉했다. '꺄', '히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는 반려동물과 반려인의 관계보다 반려식물과 반려인의 관계가 마음이 덜 아프다는데, 이곳 정원에서 식물에 대한 애정이 좀 더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아직 나는 보는 것이 더욱 좋다. 마음이 알아서 준비가 될 때까지는 이렇게 누군가의 정성으로 가꿔진 정원으로 눈과 마음 호강을 해야겠다. 

하얀색 솜털이 강아지를 만지는 것 같다. 촉감이 매력적인 식물 '램스이어'

정원학교에는 살림집도 있어서 일부러 대문을 달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문이 예사 문이 아니다. 글을 하나하나 새겨 문을 만들었는데,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참이슬 소주'의 참이슬을 새긴 분이 글을 써주었다고 한다. 읽어보면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이다. 오경아 선생님과 참 잘 어울리는 시이다. 태생적으로 환경의 영향을 잘 받는 그녀는 도시에 살때 다른 사람보다 자주 아팠다고 한다. 그렇게 15년을 방송작가로 살았으니 이 속초에서의 삶이 얼마나 귀할까? 바다, 산, 돌담이 있는 육지의 제주 같은 속초에서 오경아 선생님이 더욱 건강하고 그 삶이 더욱 반짝이길 바란다. 




@오경아 정원학교

속초시 중도문길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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