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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 Aug 04. 2018

그녀는 삼계탕을 못 먹는데 복날은 어쩌죠?

@ 스페인 레스토랑 '숲으로 간 물고기'


이천십팔년 칠월, 그리고 팔월.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외친 말은 '덥다!'일 것이다. 나는 서울의 날씨가 39도를 넘었다는 소리를 난생 처음 들었다. 여름이 덥다기로서니... 홍천은 그 와중에 40도를 넘어 전국 최고 기온이 되었다. 얼마 전에 홍천을 다녀왔는데, 거기 계신 분들도 그런 말을 했다. '여긴 저녁되면 서늘한데 오늘은 이상하게 덥다'고. 이해가 안 가는 나날이지만, 견뎌야 하기에 모두 나름의 더위 쫓는 방법을 터득해가고 있는 것 같다. 부채 대신 손 선풍기가 등장하고, 남자는 지금까지 못봤지만 양산을 필수로 쓰고 다니는 여성도 많다. 나 같은 경우엔 선풍기도 양산도 번거로워 대신 챙이 넓은 모자를 챙긴다. 간단하게 썬크림만 바르고 모자를 푹 눌러쓰면 얼굴에 그늘이 생겨 좋다. 


복날과 삼계탕의 연결고리에서 헤매던 그녀

그나마 삼복더위 중 벌써 초복과 중복이 지난 것을 다행으로 삼는다. 말복마저 지나면 이 더위가 조금은 누그러지겠지 싶다. 예로부터 복날에는 몸보신을 위해 보양식을 먹었는데 어느날부터인가 삼계탕이 복날 필수식이 되었다. 세 번의 복날은 열흘에 한 번꼴로 지난다. 덕분에 삼계탕을 좋아하지 않아도 매해 복날에는 한 번씩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초복에도 중복에도 삼계탕을 안 먹었다. 그럼 말복에는? 

지인 중에 닭고기를 못 드시는 분이 있다. 지인은 복날과 삼계탕의 연결고리에서 매번 헤매며 적잖은 위로의 말을 들어야 했다. "복날엔 삼계탕을 먹어야 더위도 나고 힘이 나는 법인데... 왜 닭고기를 못 먹니?" 무심히 말들을 들어오다 지인이 무릎을 탁 치며 외쳤다. 아니, 왜? 복날엔 꼭 삼계탕을 먹어야 하느냐?! 

예전에는 복날에 개고기를 먹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고기 앞에 개를 붙여도 격분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집집마다 닭을 반려꼬꼬로 기르는 시대가 도래한다면 복날의 또 다른 대체 식품이 생기겠지? 그러니, 지인의 지금의 일탈은 복날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역사적은... 그만두고, 어서어서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갑시다. 그곳이 어디라고요? 

"숲으로 간 물고기랍니다."


사설이 엄청나게 길었지만 복날을 앞두고 몸을 든든하게 해줄 특별한 보양식을 즐기기로 했다. '숲으로 간 물고기'는 홍대역 6번출구에서 걸어서 가거나,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만 더 가서 동교동 삼거리에 내리면 바로 코앞이다. 나는 처음가본 평화공원도 지척인데-공원을 지나쳐야 하는데 길을 잘못들어- 주변으로 주인장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는 샵들이 많아 다음에 또 와야겠다 싶었다. 숲으로 간 물고기는 스페인 요리 전문점으로, 이제는 대중적이라고 불러도 좋을 감바스, 빠에야를 비롯해 해산물, 양갈비 등을 주력으로 한 코스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워낙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고 재능이 있던 주인장은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레스토랑 운영을 시작했다고 한다. 스페인 유학을 하지도 않았다는데 그의 요리는 현지인도, 또 스페인에서 유학생활을 한 한국인에게도 어필하는 맛을 낸다. 레스토랑 안에는 다양한 서적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많은 것이 요리 서적이다. 주인장의 요리를 책으로 배웠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닌 것 같다. 지식과 경험, 인내를 버무려 삶의 원동력을 삼는다. 


전라도 올게쌀의 빠에야 얼마나 맛있겠요

빠에야는 볶음밥과 비주얼이 비슷해 익숙했는데 생각보다 요리 시간이 오래 걸린단다. 새우 머리의 내장을 갈아만든 소스만 만드는 데 4시간이 걸리고 때에 따라서는 하루도 걸린다. 또, 식감을 좌우하는 쌀은 전라도 올게쌀을 사용한다. 올게쌀은 찐쌀이다. 덜 여문 벼를 미리 거두어 쪄서 말린 뒤에 찧은 쌀을 일컫는다. 일반 쌀로는 빠에야의 특징을 잡는데 한계를 느낀 주인장은 우연히 휴게소에서 올게쌀 맛을 보고, 이거다 싶었단다. 재료 본연의 맛에 음식의 맛이 있다고 여기는 주인장이다.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신념 아닌 신념이다. 덕분에 사계절 요리 맛은 늘 변화한다. 주인장의 손맛이야 동일하지만, 어떤 날의 상추는 달고 또 다른 날은 생육환경에 따라 씁쓸함이 배가 될 수도 있다. 그에 따라 첨가하는 소스도 변화를 주기에 일주일 전에 와서 먹는 샐러드와 오늘의 샐러드 맛은 다르다는 이유다. 

계절샐러드부터 시계방향으로 뽈뽀(문어, 감자요리), 빠에야, 감바스와 치아바타

각 음식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 천천히 오래 음미했다. 위장에 애써 자리를 남겨둔 때에 보양식을 대체할 요리로 민어 소금구이를 대접받았다. 민어는 여름철 보양식으로 잘 알려진 생선이다. 늘 도미를 이용해 소금구이를 한 주인장도 오늘 처음 민어로 요리를 했다. 두꺼운 천일염을 덮은 민어는 김장김치의 삼투압 작용처럼 소금의 적절한 짠맛이 담기고, 밖으로 열기가 새어나갈 틈이 없어 껍질안쪽부터 내장 안쪽까지 골고루 익는다. 레몬과 허브의 은은한 향이 전체적으로 잘 베어든 고기를 한 입하니, 부드러운 식감에 상큼한 향이 입안을 즐겁게 한다. 식으면 또 본연의 맛이 더 살아난다는데 좋은 버터를 쓴 빵처럼 크리미하고 포실하다. 

민어 소금구이 (이날 주인장은 민어보다 껍질이 더 얇은 도미가 소금구이에 더 잘어울린다고 판단했다)

조금 심심하다 싶으면, 자꾸만 손이 가는 새우, 마늘, 올리브 오일로 요리한 감바스를 살짝 곁들인다. 그럼 또 다른 맛이 난다. 한국 요리에 장맛을 빼놓을 수 없는 것처럼, 스페인 요리도 눈에 보이지 않는 맛에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최대한 현지와 가까운 요리의 맛을 구현하지만 그것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고, 보급되는 식재료의 특성을 스페인 요리에 조화롭게 사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복날에 삼계탕도 좋지만 다른 보양식을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제철 재료의 가치를 중요히 여기는 손맛을 만나길 바란다. 그곳이 어디든 삼복 더위를 보내는 시원한 그늘 자락이 되어주리라.  


@ 숲으로간물고기 

예약제로 운영하며, 개인 쿠킹 클래스도 진행한다. 

T. 17:30~22:00

C. 02-336-1050

A. 서울 마포구 신촌로 48

facebook@yummyyummys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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