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공원
어제 설날, 엄마와 둘이 가족공원엘 갔다왔다. 사람이 많겠거니 했는데 예상보다도 훨씬 많았다. 한때 그들의 곁에 있던 사람을 추모하려는 걸음. 그렇게 보면 죽은 자들의 시간도 멈춰 있는 것 같지 않다. 산 사람들의 삶 속에 여전히 흘러가고 있으니.
엄마는 오래 전 떠나버린 남편을 추모하러 이곳에 왔다. 아빠로부터 흐른 엄마의 세월이 머리에 하얗게 내려앉아 마음이, 날카로운 것에 베었을 때처럼 뜨겁고 아프다. 이번에 산 꽃은 엄마에게 직접 붙이라고 했다.
"내가?"
추모관 안에 있는 사다리를 타고 엄마가 조금 높은 곳에 있는 아빠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봉안당에 꽃을 붙였다. 숨소리에서 엄마가 낮게 흐느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볼 때마다 아빠는 너무도 젊은 날에 갔고, 우리들은 너무 어렸고, 엄마에게 놓인 무게는 참담했다. 장갑 낀 손으로 유리벽을 닦는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아빠는 복 받은 사람이야."
이 소리를 아빠가 들으면 참 억울하겠지만, 아빠를 찾아 매일 늙어가는 아내가 있으니, 자식도 셋이나 놓고.
"거기서 엄마, 아빠랑 잘 지내고 있어. 나도 빨리 갈게."
"빨리 간다고 하면 안 되지. 잘 있다가 간다 그래."
아빠를 향해 건네는 엄마의 인사가 맘에 걸린다. 엄마가 빨리 가면 어떻게 해.
"그래. 잘 있다가 갈게."
딸의 마음을 읽은 엄마가 빙긋 웃는다. 안경을 벗은 눈이 빨갛다. 그렇게 추모관을 나와 이번엔 사돈 어르신을 찾았다. 사돈 어르신은 아빠가 있는 곳보다 훨씬 높은 곳에 계셔 마침 그곳에 계신 남자분에게 엄마가 부탁을 했다. 흔쾌히 꽃을 붙여주신다. 엄마가 사돈 어른께 인사하는 동안 남자분의 아내일듯한 분이 꽃을 한 번 더 단단히 붙이라고 한다. 참 감사한 마음이다. 가족공원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지금까지 얼굴 붉히는 일이 없었다. 먼저 가려고 밀치는 사람도 없고, 먼저 꽃을 붙이려고 아웅하는 손길도 없다. 다들 서로의 마음이 얼마나 짠할지 아는 것이다. 그제 시장에서 일이 생각나 어디든 이런 마음이면 좋겠다 싶었다.
다음엔 엄마의 형부, 내게는 이모부가 있는 추모관을 찾았다. 최근에 장소를 옮겼다고 했는데 한참을 찾아도 못 찾았다. 무릎이 아파서 와삭와삭한다는 엄마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저기 계속 둘러본다. 나는 이미 포기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제 가자, 엄마. 없어. 다음에 와."
못내 아쉬워하는 엄마와 함께 추모관을 나서는데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이 참 길다. 조금 걷던 엄마가 쉬자며 넓적한 돌 의자에 앉는다. 나보고도 앉으라며 바닥을 썩썩 닦는데, 까만 장갑에 먼지가 보인다.
"싫어. 먼지 잔뜩이야."
살짝 볼멘 소리로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우리도 셔틀버스 타고 갈까?, 방금 두 대왔으니 오래 안 기다려도 될 거야."한다.
"그래도 한참 기다려야 할텐데."
줄 서 있는 것도 싫지만, 버스에 탔을 때 자리 맡아놓고 자기들 가족 앉히려는 모습들이 떠올랐다. 내 표정만 보고도 엄마는 더 얘기 안 하고 그냥 걸어가자 한다.
"무릎 아프다며, 뭘 그렇게 찾아보려 했어?"
"나한테는 형부잖아. 아빠 없어서 내가 아빠처럼 따랐는데. 너한테는 이모부지만 엄마한테는 형부니까."
그 말을 듣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중했던 사람과의 기억이 그가 떠났다고 작을까. 나는 없고 엄마는 있는 걸 끝까지 헤아리지 못해서 머리를 숙였다.
"엄마, 업어줄까?"
"싫어. 무서워. 너 너무 높아."
"별로 안 높아."
"그때 살짝 업혔을 때 높았어. 무서워."
엄마의 팔짱을 꽉 낀 채 수많은 행렬 속에 끼어 신호를 건너고, 이날이 대목일 길가의 노점상에 멈췄다. 엄마는 올때부터 강아지 인형을 사려고 찍어두었다. '왕왕' 소리를 내며 앞으로 갔다, 뒤로가는 장난감이다.
"내가 개 준다고 장난감을 다 사고 참."
엄마는 기꺼이 반려견 장남감을 사는 자신이 신기하고, 우스운가보다. 그리고 옆에 따라와준 내가 고마운지 "풀빵 먹을래? 호떡 먹을래?"권한다.
"풀빵 먹자."
아저씨가 서비스로 하나 더 준 풀빵이 어쩜 이렇게 달콤하고 맛있는지, 가족공원에 소풍온 것 같았다. 풀빵 파는 내외분은 예전에도 본 분이었는데 두 분이 수화로 대화하는 게 인상적이서 이번에도 알아보았다. 늘 웃음이 많은 분들, 잘 되셨으면 좋겠다. 이번에 연휴를 보내면서 난 엄마에게나 타인에게나 짜증을 덜 내야겠다고 다짐했다. 함께 간 시장에서도 하나 붐비지도 않는 떡집에서 먼저 계산하려고 사람을 밀치듯 지나는 아주머니의 행동이 너무 거슬렸었다. 그럴때마다 난 짜증나고 엄마는 아무렇지 않아한다. 왜인가 생각해보니 이런 사소함을 자꾸 마음에 담고 그때그때 신경질을 내면 더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어차피 다들 가족공원에서 만날 사이인데. 얼굴 붉힌다고 달라질 일도 없다. 그들은 내가 짜증내는 거 신경도 안 쓰고, 괜히 사랑하는 울 엄마만 내 눈치 보게 만들뿐. 성질 좀 죽이고 엄마와 가족, 지인들 배려 하면서 살아야겠다. 사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