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 그만해 제발

대한민국 아파트 공화국 Stop it. Stupid!

by 나비


2020년 올해,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서 처음 살아봤다. 내 성격에 비추어 어울리는 집을 고른다면 아파트는 썩 들어 맞지 않는다. 그러나 나도 엄마도, 동생도 선택할 수 있는 범위는 많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아파트를 골랐고, 나는 초여름, 엄마와 동생은 가을 무렵 각자의 보금자리로 거처를 옮겼다.

잠시 독립이란 걸 했을 때 내가 엄청나게 소음에 민감한 사람인 걸 알고 나서 난 무조건 탑층만을 고집했다. 엄마가 알아봐 준 이 집은 저층 아파트에 탑층, 동도 하나밖에 없는 단촐한 아파트였다. 저층 아파트 중에 6층 짜리는 처음 봤는데 내가 6층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 살게 됐다. 아직은 무릎이 튼튼하고, 집에서 나름 홈트도 하는 사람이기에 퇴근 후 집에 올라가는 길이 괴롭지는 않다. 그러나 일단 집에 들어오면 밖에 잘 나가지 않는다. 식구들도 내가 사는 집엔 잘 오지 않는다. 첫째 집에 티비가 없고, 둘째 엘리베이터가 없는 이유다. 집이라는 게 항상 편한 공간이어야 하는데, 내가 사는 집은 조금 불편하고 재밌는 집은 아닌 것이다. 나야 뭐, 덕분에 식구들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도 독립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


어제 엄마의 아파트에서 잘 일이 있었다. 엄마랑 사는 동생이 바로 윗 언니네 집에서 자는 바람에 엄마가 이사 간 후 처음으로 동생 방에서 잠을 자게 됐다. 전에 거실에서 한 번 잤을 때는 바닥이 좀 딱딱해서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윗집의 소음때문에 참 괴로웠다. 내가 사는 집은 잘 때 옆집에서 물 쓰며 나는 모터소리가 거슬리는 게 유일하게 힘든 소음이었는데 엄마 집은, 동생 방은 정말 상상 초월이었다. 전날에도 잠을 깊게 자지 못한 나는 10시에 침대에 누웠는데, 윗집에서 자정 무렵 씻기 시작했다. 마치 바로 위가 욕실같았는데 그렇지는 않고 욕실과 작은 방이 붙어 있는 구조다. 그럼에도 이건 바로 우리집 욕실에서 씻는 것처럼, 변기에 물내리는 소리, 뭔가 떨어뜨리는 소리, 샤워기에서 물 쓰는 소리가 다 들렸다. 이미 낮에도 윗집 아저씨가 말하는 소리가 들려서(상세한 내용은 안들리지만, 남자, 아저씨가 말하고 있음을 정확히 알 수 있음) 이 아파트 완전 날림이구나 했었다. 그런데 한밤중에도 이런 생활소음이라니. 참 심하다. 이건 윗집에 얘기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늦은 밤에는 씻지 말아주세요. 걸을 때 항상 조심해주세요. 물건을 잘 안 떨어뜨리면 좋겠어요. 창문을 살살 닫아주세요. 문도요. 아이들이 놀러오는 건지, 같이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걷고 뛰는 소리가 다 들리니 조심시켜 주세요. 이런 말을 어떻게 하는가? 집은 이 세상에서 제일 안락한 공간이 되어야 하고, 내 생활 방식을 내 뜻대로 해도 괜찮은 곳이어야 한다. 아랫집 사람때문에 자정 넘어 씻을 수 없다는 게 어느나라 법이 될 수 있겠는가?


문득 엄마가 이사하고 두달이 지난 시점부터 줄기차게 이런 걸 컴플레인 건 아랫집 여자가 떠올랐다. 자정 넘어 동생 방에서 눈이 벌개져서 있던 나는 그간 그 여자가 좀 심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오죽 했음 그런 컴플레인을 걸었을까 싶다. 아랫집 여자는 9개월된 아기를 키운다고 했다. 그날은 주말 아침이었다. 아침에 강아지를 목욕시키고 나서 인터폰 누르는 소리에 동생이 나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경비아저씨가 아랫집에서 조용히 해달라고 했단다. 동생과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오자마자 강아지를 목욕시켰고, 동생은 강아지를 드라이시키고. 끝. 쿵쿵 거리는 소리랄 게 강아지가 욕실에서 나와 주방으로 질주한 게 전부다. 그것도 한 번. 이미 아랫집 여자의 잦은 컴플레인으로 행동이 조심스러워진 동생이 두 번 하지 못하게 바로 억제한 터였다. 그러고나서 20분 후인가, 바로 경비아저씨가 온 것이다. 어떻게 이런 걸로 경비실에 전화를 하는지, 앞으로 불안해서 어떻게 생활을 하느냐며 동생에게 말했다. 결국 이사오고 처음으로 동생은 아랫집에 내려가보기로 결정을 했다. 나와 함께.

아기를 키우는 여자는 악의같은 건 전혀 없어보였고, 우리가 이사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려고 그렇게 컴플레인을 건 거라며.. 너희들이 이사오긴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고 했다. 흠- 나야 그 집에서 매일 생활하는 게 아니라서 그래 우리도 좀 조심하겠지만, 우리도 항상 최선을 다해서 조심하는 거니까 이해를 좀 해달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러나 이후 여자는 동생에게 몇 번 더 컴플레인을 걸었다고 한다. 밤에 자다가 사람이 걷는 소리에 놀라서 깼다거나, 아침부터 시끄럽다는. 그 얘기에 동생은 청소 중이었다고 답을 했단다. 청소기 돌리는 소리도 시끄러울까 주말에 한 번 하는 건데 그런 생활도 눈치를 봐야한다니 동생의 일에, 엄마의 아파트 살이에 적군이 나타난 것 같아 분개했었다.


그런데 어제 처음 엄마 집에서, 동생 방에서 제대로 된 한 밤을 보내고 나서 이건 우리의 잘못이 아님을 확신했다. 자정 넘어 씻는 윗집의 잘못은 더더욱 아니다. 그 상황에서는 나도 주먹으로 벽을 치고, 자다가 깬 억울함에 악 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실제 그렇게 했어도 마음이 편해지지는 않았을 거다. 일요일 아침 8시. 더 안자고 왜 일찍 일어냤냐는 엄마에게 그랬다. "엄마. 우리 옆집 모터 돌아가는 소리는 껌도 아니네. 난 이 집 살았으면 이사가자고 했을 거야. 아랫집 여자가 왜 그렇게 항의를 했는지 알 것 같아. 근데 이건 생활이잖아. 우리 윗집도 그 윗집의 아랫집인데 그 집이라고 소음 안 들리겠어? 근데 그냥 사는 거 아냐. 생활을 어떻게 고치라고 해? 집이 이런 걸."

"그래, 못 견디는 사람이 떠나야지. 나도 OO한테 2년 만 살고 빌라로 이사갈까 했더니 빌라는 싫다고 하더라. 휴. 이름만 있지. 날림이야. 날림."

그렇다고 새 아파트에 이런 문제가 없습니까. 그냥 우리, 주택에 살게 내버려두지. 뭔 놈의 재개발은 누굴 위한 재개발입니까? 가정마다 지붕 하나, 현관 하나 있는 집에서 사는 게 어떻게 사치가 되었나요? 현생에 덕을 잘 쌓으면 다음 생에도 사람으로 태어난다는데 저 아무 사람도 찾지 않는 초원에 아름드리 나무이고 싶소. 그 역시 개발되면 끝장이겠지만!


KakaoTalk_20201101_164052181.jpg 아파트에서는 감나무를 키울 수 없어




몇 십년을 우리집(단독주택) 작은 마당에서 뿌리 내리며 오고가는 사람 미소짓게 했던 감나무.

우리와 함께 나이든 나무에서 마지막 감을 가져온 엄마.

아파트 베란다에 널어둔 이 감을 보니 엄마도, 감도 짠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