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정리할 삶의 예행연습같아
몇 십 년을 가족과 살다 처음으로 전셋집을 마련해 혼자 살게 되었다. 가구와 가전은 모두 새롭게 장만해야하니 옮길 집에 가져갈 것은 책과 주방식기, 옷, 신발 정도다. 그중 제일 무게가 많이 나가는 책은 한 번 알라딘 중고 서점에 백팩을 지고 나가 정리를 했다.
"엄마, 이런 책 왜 샀어. 나 안 읽는데."
중학교 다니던 내가 볼 멘 소리로 엄마에게 투정을 부렸다. 책장 맨 아래칸을 차지한 전집은 대학논술전형을 위해 나온 책으로 깊이도 있고 그만큼 값도 비쌌다. 당시 엄마는 힘들게 번 돈으로 저 책을 샀고,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책들이 딱 봐도 참 벅차서 엄마의 정성은 나중이고 투정부터 부렸다. 그때 집안 살림을 생각하면 엄마도 책값을 치루며 고민이 없지는 않았을텐데 아마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울집이고 옆집이고 동화책이며 위인전이며 닥치는대로 읽었으니 이 책도 그러려니 했을테다. 그러나 나는 한석봉 같은 효자는 못되려는지 엄마의 정성을 알면서도 몇 권의 책을 제외하곤 가끔 책을 닦아주는 것 외에 새 것으로 두었다. 어른이 되어 이제는 엄마 곁을 떠나-사실 집에서 5분 거리- 이사를 가는 시점에 전집을 바라본다. '효도하겠다'는 미래형... 마음이 씁쓸하지만 어딘가에 나 대신 누군가 잘 읽어주길 바라며 밖에 잘 묶어 내놓았다.
"엄마, 책이 벌써 사라지고 없어. 엄마 저 책 힘들게 일해서 사준 건데."
"그래도 안 읽으면 버려야지. 저걸 어떻게 가져가."
나는 괜스리 겸연쩍어서 동생이 왔을 때 저 말을 한 번 더 했다. 속으로 즐겨 읽던 인현왕후전은 놔둘 것을 그랬나 싶었지만, 그렇게 추억이라며 한 권씩 챙기다보면 못 버릴 것이 많아지기에 빠르게 미련을 접기로 했다.
회사에 신간으로 들어온 김영하 작가의 여행에세이에 책과 관련된 구절이 잠시 언급된다. 해외로 머물기 전 세간살이를 정리하는 장면인데 내 상황과 다를 바 없어 남아있는 책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읽었는데 기억에 남지 않는 책은 정리한다. 안 읽히는 책도 정리한다. 한 번 더 읽고 싶은 책은 가져간다. 힘들었던 내게 영향을 준 책은 가져간다. 덕분에 책장은 이가 빠진 듯 훵한데 정리한 것이 무색하게 쌓아놓으니 또 많다. 어휴. 짐스러워. 삶의 무게여.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책을 안 사본 지도 꽤 되었고, 회사에 신간도 들어오니 더 이상 책을 모으는 일은 하지 않으리!
책들 사이에는 십 수 년을 글 작업을 하며 모아둔 포트폴리오도 제법이다. 여러 매체의 잡지와 입찰제안서, 거슬러 올라가 대학시절 리포트도 잘 간직되어 있다. 문밖에 파지를 보면 물어보지 않아도 살아온 세월을 대번에 알 것이다. 시, 소설, 아동문학... 문예창작과를 거쳐 이것도 만들고, 저것도 만들고요. 그마나 포트폴리오들은 한 권, 많으면 두 권이라 파지로 통째로 내놓으면 되는데... 지난 흔적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곤란하기는 물론 내 가슴을 후벼 판 것이 등장했다. 일기장. 고등학생 때까지 쓰던 일기는 오래전 버렸고 스무살 때부터 써온 일기장이 십수권이 넘어 있었다. 당시 일기를 쓸 때만 해도 언젠가 이 페이지들을 펼쳐서 어딘가 활용하게 될 줄 알았다. 꿈보다 해몽을 하며 살아야지, 암요. 그러나 썼던 일기를 다시 넘겨보는 일은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 지난 일기는 잊었던 기억을 상기하기에 딱 좋았다. 왜곡된 기억도 포함. 잊힐 것은 때론 빠르게 잊혀야 한다. 억지로 잊어주어야 하는 것도 있고. 그럼에도 내 기억. 좋았던, 싫었던 모든 어제의 기록을 하나하나 찢어버리는 일은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단지 이사를 가는 것뿐인데 삶을 정리하는 것만 같다. 최근 몇 년간은 일기를 꼬박꼬박 쓰지 않았다. 블로그와 브런치처럼 웹에 공개든 비공개든 속마음을 쓸 수 있기에 종이에 글 쓰기가 멀어진다. 손글씨를 안 쓰니 필체 또한 개발새발이라 이십대에 내가 참 글씨를 잘 썼구나 새삼스러웠다. 최근 일기에는 정서가 독립하고 싶은가.. 글이 왜 자꾸 날아가죠.
일기를 쓰는 건 지금도 참 좋은 거라고 여기지만, 일기장을 버리는 일이 이렇게 멜랑꼬리할 줄은 몰랐다. 어쩌면 죽기 전에 정리할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할머니가 되면 정리할 줄 알았나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내련다. 이십대 쓰던 일기장을 하나하나 찢어버렸다. 봉지로 한 가득. 어제는 삼십대 쓰던 일기장을 박스로 발견했다. 손가락이 아파라 찢다가 도저히 못하겠다 싶어서 불에 태워버릴까 했는데 엄마가 집에 불난다며 물에 담궈 놓으란다. 아주 좋은 방법이라며 종일 물에 담궈놓고 오늘 출근했는데 동생 왈 “언니, 볼펜으로 쓴 일기는 그대로다. 그냥 찢어버려.” 헐. 이 생명력 강한 녀석들. 물에 살짝 번져 더 선명해졌을 볼펜으로 쓴 페이지가 눈에 선하다. -우리 가족은 남의 일기에 관심이 없다. 나 조차도 다시 안 읽는데 뭘-
예전에는 작은 방 하나도 내 방이 생긴 것에 기뻐하며 가구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보고 설레었는데 방이 두 개 이상이나 되는 집이 생겼는데도 나는 왜 하나도 기쁘지 아니한가. 새로 가구도 샀는데 저 가구를 어디 놓을지 그것만 고민되고 왜 하나도 설레지 아니한가. 나는 나 자신을 꾸미는 것 외에 옷을 직접 수선한다든다, 그릇에 꽃을 그리는 일에 관심이 없는 인간이다. 빌트인 가구가 되어 있는 오피스텔이 더 체질에 맞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집이 내 집이 아니고, 군데군데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많은데도 참고 써야하는 데 있을 수도 있다. 아, 주방 건조대는 정말 참혹했다. 상부장에 건조대 다리를 우악스럽게 박아놓았는데 떼어버리고 싶은 걸 집주인이 그냥 쓰라고 해서 참았다. 흉물스러운 것은 욕실에도 있다. 샤워기가 두 개인데 하나는 샤워기만 있다. 헤드도 호스도 없는 저것은 떼어버리면 안 되냐고 했는데 그냥 두란다. 못을 빼면 그 안에 물이 들어간다고.. 실리콘으로 메우면 되는 걸요. 안방 베란다 천장에는 그 어떤 세입자도 쓰지 않아 삐그덕 거리는 건조대가 삐닥하게 내려와있다. 그것을 보고 건조기를 사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집이 내 집이 아니니 다 감내해야 한다. 본가에서 아주 가깝지만 온전히 홀로 사는 나의 집. 물에 담궈놓은 일기처럼, 바락바락 찢어버린 일기처럼 어제는 회복되지 않고, 엄마와 가족과 자연스럽게 살았던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테지만, 지금까지 그런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살면 그뿐. 새 집에서 새로운 추억을 쌓고 버리고 쌓고 버리면 족하다.